지난 가을날, 하루 일과를 마치고 조용히 생각에 잠겨 있을 즈음, 익숙한 전화번호로부터 연락이 왔다. 형수님이었다. 핸드폰을 통해 들려오는 형수님의 목소리는 많이 떨리고, 많이 울어 건조하기까지 했다.
평소 차분하고 내성적인 성격이라, 좋지 않은 소식임을 알아채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형수님은 한숨을 돌린 후에야 말을 이어갔다. 형이 일하다가 다쳐서 응급실에 있다고 했다. 형수님은 평소에도 과장되게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서, 많이 다쳤겠구나 생각하며 최대한 차분하게 들으려 애썼다.
하루 전, 회사에서 일하던 중 낙상으로 머리, 허리, 발 부위에 심한 부상을 입고 인근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검사를 받았으며, 시급한 수술이 필요해 수술 일정을 잡고 대기 중이었다. 형수님은 경황이 없어서 응급실에 도착한 다음 날에야 연락을 주셨다.
병원에 도착해 형을 만나고 싶었지만, 보호자 외에는 면회가 어려워 형수님만 뵐 수 있었다. 형수님에게 어떻게 말을 건네야 할지 너무 힘들었다.
우리는 가장 힘들고 외로운 순간에 마음을 다하는 위로가 필요하다. 하지만 어떤 말을 건네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 어설픈 위로는 오히려 부담이 되거나 원치 않는 상처를 줄까 걱정된다.
가장 진정성 있고 마음을 담은 위로는 누구로부터 받을 수 있을까? 가족이다. ‘가족’이라는 또 다른 이름은 곧 ‘위로’이다. 형수님은 가장 힘들고 기대고 싶은 순간, 누구를 떠올렸을까. 형수님은 어릴 적부터 외롭게 자라서 가족에 대한 갈망이 컸다.
가족은 쉽게 깨지고 조각날 수 있는 모래로 만들어진 유리 같은 존재를 강하고 튼튼하게 만드는, 얽히고 이어진 끈이다. ‘나’라는 존재는 일평생 진심으로 아껴주고 응원해 주는 ‘가족’이라는 커다란 존재가 있기에, 드넓은 해변에 있는 작은 모래알도 빛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형수님에게 가볍게 인사하고, 따뜻한 음료를 건넨 뒤 조용히 옆에 앉았다. “모든 게 괜찮을 거예요. 걱정 마세요.”라는 말보다는, 그냥 곁에 앉아 있는 위로를 선택했다. 형수님이 먼저 이야기를 꺼내길 기다렸다. 때로는 상황에 따라, 건네는 한마디 말보다 곁에 함께 있는 그 자체가 더 깊은 위로가 된다. 생각하고 싶지 않은 기억을 꺼내게 하는 말은, 고통의 돌 하나를 더 올려놓는 상처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튿날, 형은 급하게 수술에 들어갔다. 수술실에서 나오면 잠깐이라도 형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기다림의 시간은 무겁고 두려웠다. 수술 전 검사 결과에 대한 의사 선생님의 소견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심할 경우 두 발로 걷는 것이 어려울 수도 있다고 했다.
형은 생각보다 많이 다쳤다. 머리는 작은 골절과 충격으로 눈과 얼굴 주변이 심하게 부어 있었고, 척추는 인대 파열과 골절이 있었다.
우리에게는 끝도 없이 어둡고 좁고 긴 터널을 지나는 시간이었다. 정말 참기 힘들었다. 처음이었다. 형의 얼굴이 너무 보고 싶었다. 중학교 시절, 형이 기분이 좋지 않으면 나와 동생은 어머니 가게에서 시간을 보냈고, 이런저런 일로 많이 맞아서 형과 함께 있는 시간이 싫었다. 이런 기억들은 대전으로 고등학교를 진학하면서 조금씩 잊혔다.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이나 물건의 소중함을, 바쁜 일상 속에서 ‘그리움 스위치’를 꺼둔 채 살아간다. 그러다 가끔, 필요에 의해 그 존재를 꺼내 확인하곤 한다.
긴 터널을 지나 마침내 형을 만났다. 형은 마취 때문인지 말을 알아듣기 어려웠고, 극심한 통증에 힘들어하고 있었다. 형수님이 곁에 있어 참고 눌러 두었던 감정이 한꺼번에 솟구쳐 올라 결국 울고 말았다. 얼굴 위로 흐르는 눈물보다 마음속에서 쏟아지는 눈물이 더 깊고 뜨거웠다. 다 쏟아내고 싶었지만, 참아야 했다.
형수님과 내가 안쓰러웠는지, 선생님은 다가와 말을 건넸다. “걱정했으나 다행히도 수술 경과가 좋아 시간이 걸리더라도 재활치료를 받으면 다시 걸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정말 ‘운이 좋았다’는 말도 덧붙였다.
많은 사람들은 이른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여름엔 너무 덥고 겨울엔 너무 추운 환경에서 묵묵히 일한다. 주말도 쉼과 거리가 멀다. 그동안 힘든 삶 속에서도 성실히 살아온 형의 삶이 안겨준 ‘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형의 깊고 아픈 시간이 자칫 소홀해지던 가족에게 소중한 깨달음을 주었다. 이제는 그 선물을 소중히 간직하며, 그리움의 스위치를 꺼놓은 채 기다리고 망설이는 바보가 되지 않으려 한다. 어머니, 형, 동생의 목소리가 듣고 싶을 때는 바로 연락하고, 만나러 간다. 서로 위로받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땐 꺼내어놓고, 재잘재잘 수다를 떨며 밝고 즐거운 웃음꽃을 피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