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입견 (先入見)
어떤 대상에 대하여 이미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고정적인 관념이나 관점.
(출처: 네이버 국어사전)
나는 커피를 좋아한다.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일에 집중하거나, 마음을 정리해야 할 때면 어김없이 카페로 향한다. 따뜻한 커피 한 잔이 주는 위로가 좋다. 하지만 가끔은 몸과 마음의 건강을 생각하며 진한 쌍화탕을 찾고 싶을 때가 있다. 그래서 종종 들르는 전통찻집이 있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서자, 찻집 한 모퉁이에서 사장님이 전통차에 들어가는 여러 가지 약재를 정성스레 다듬고 계셨다. 옆에는 이미 다듬어 말려 두고 있는 약재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궁금증이 올라와 조심스레 물었다.
“차에 넣는 약재네요. 여기 있는 약재는 모두 국내산인가요?”
사장님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셨다.
“많은 분들이 국내산이면 무조건 좋은 줄 아세요. 그런데 꼭 그렇지만은 않아요. 오히려 중국산이 더 품질이 좋은 경우도 있답니다. 약재는 토질이 맞아야 좋은 약재가 나와요.”
그 순간, 나는 약재에 대해 아무런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던진 질문이 얼마나 편협했는지 깨달으며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좋은 약재는 좋은 토양에서 자란다. 적당한 햇살과 물, 바람, 그리고 사람의 성실한 땀이 더해져야만 풍성한 수확으로 이어진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사람도 다르지 않았다.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저마다의 ‘토질’을 가지고 세상에 나온다. 좋은 가정환경, 따뜻한 가족, 안정된 배경은 사람이 자라나는 데 필요한 비옥한 토양이 된다. 그런 환경 속에서 자란 이는 사회에 잘 어울리며 자기 역할을 다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모든 이가 좋은 토양에서 성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다행히도, 사람은 약재와 다르다. 반드시 좋은 토양에서 자라야만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마음가짐과 행동으로 부족한 것을 채울 수 있다. 삶은 언제든 새로 다져 나갈 수 있다. 그러니 남과 비교하지 말자. “누구는 어떻고, 누구는 어떻게 살더라”라는 말은 부질없다. 비교는 행복을 앗아가고, 나답게 살아가는 힘을 잃게 만든다.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다. 부모의 지나친 비교 속에서 힘겨운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이 있을지 모른다. 남들이 다니는 학원, 남들이 선호하는 학교, 남들이 좋아하는 직업을 억지로 강요할 필요는 없다. 아이들은 저마다 다른 꿈을 꾸고, 저마다 빛나는 재능을 지니고 있다. 어른들은 그저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좋은 토양을 마련해 주고, 묵묵히 기다려 주면 된다.
전통찻집에서 사장님과 나눈 대화는 내 삶을 되돌아보게 했다. 지금껏 나는 얼마나 많은 선입견과 편견에 갇혀 살아왔던가.
선입견 없이 본다는 것은 두 눈을 크게 뜨고 본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통찰력 있는 지혜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선입견은 우리가 본질과 진실을 온전히 보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높은 장벽이다.
그릇된 선입견 때문에 삶 속에 숨어 있는 보석 같은 진실을 놓치고 돌아서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내 안에 있는 지혜의 눈을 감지 않고 열어 둘 때, 우리는 비로소 세상을 꿰뚫어 보는 혜안을 얻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