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아빠 생각보다 든든한 아들

by 독립사회복지사

큰 아이의 길고 긴 고등학교 여정을 마무리하는 수능이 끝난 지 이틀 뒤, 우리는 일본 오사카로 3박 4일 여행을 떠났다. 애초에는 아빠와 아들, 둘만의 여행으로 계획되었지만, 내 동생이 함께하기로 하면서 세 남자의 조금은 엉성하지만 묘하게 든든한 여정이 시작되었다.


세 사람 중 해외여행 경험이 있는 이는 나뿐이었다. 동생과 아들은 모두 첫 해외여행이었다. 특히 동생은 비행기조차 처음이었다. 아들은 고등학교 수학여행에서 한 번 타본 경험이 있어 동생을 ‘촌놈’이라고 놀렸지만, 나는 어쩐지 형으로서 조금 미안했다.


의외로 여행지 선정은 단숨에 끝났다. 이 여행의 목적이 ‘많이 보자’가 아니라 ‘맛있는 음식을 많이 먹자’였기 때문이다. 평소에도 모임의 식사 장소를 도맡아 정하던 동생은 일본에 가면 초밥 오마카세, 소고기 오마카세, 텐동, 라멘을 꼭 현지에서 먹어 보고 싶다고 했다. 아들도 맛집 중심의 여행을 좋아했기에 자연스레 뜻이 모였다.


우리는 ‘맛있는 여행’을 위해 자연스럽게 역할 분담을 했다. 동생과 아들은 먹고 싶은 음식을 고르고 맛집을 검색하고 예약했다. 나는 해외여행 경험자라는 이유로 항공권과 숙소, 교통, 환전 같은 굵직한 준비를 맡게 되었다. 부담은 있었지만, 여행을 준비하는 두 달 동안 단톡방에서 오간 잡다한 이야기들과 가벼운 농담들이 더없이 즐거웠다. 오랜만에 나눈 소소한 대화들이 유난히 따뜻하게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여행을 다녀온 뒤에도 단톡방의 메시지와 사진들을 하나하나 다시 들여다보았다. 그중 한 장의 사진에서 오래 남을 에피소드가 떠올랐다.


우리의 여행은 첫날부터 우왕좌왕으로 시작되었다. 그 사진은 삼일째 오사카성으로 향하던 길, 낯선 지하철 입구에서 동생과 아들이 찍은 인증숏이었다. 오사카성까지는 어렵지 않게 갔지만, 문제는 초밥 오마카세를 먹고 우메다에서 난바로 돌아오는 길에 일어났다. 지하철 문이 닫히려는 순간, 아들이 서둘러 뛰어오다가 간발의 차이로 문을 통과하지 못한 것이다. 나는 마치 영화 속 장면처럼 닫혀가는 출입문 사이로 입술을 가까이 대고 크게 입 모양을 만들며 외쳤다.


“난바역이야. 난바역...!”


고3 아들인데 뭘 그리 걱정하냐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아들은 동생의 eSIM 데이터를 공유해서 쓰고 있었고, 손에는 현금도 없었다. 지하철은 이미 문을 닫고 출발했고, 나는 초조함이 폭발할 듯했으며 마음은 순식간에 뒤죽박죽이 되었다. 순간, 서둘러 타자고 했던 동생이 괜히 원망스럽기도 했다. 다행히 환승역이 없는 구간이어서 우리는 다음 역에서 내려 다시 돌아오는 열차를 기다렸다. 잠시 뒤, 마침내 두 칸 뒤에서 내려오는 아들과 마주했다. 짧았지만 묘하게 긴 ‘상봉’이었다.


나는 열차가 멈추자마자 거의 뛰다시피 하며 아들에게 다가갔다.


“괜찮아? 아빠가 걱정 많이 했어.”


아들은 의젓하게 서 있었다. 마치 별일 없었다는 듯, 오히려 내가 과하게 걱정한 사람처럼.


“아빠가 말했잖아. 난바역이라고.”

“목소리가 안 들려서…”

“목소리는 안 들렸어. 근데 아빠 입 모양 보고 알았어. 그래서 괜찮았어.”


옆에서 동생이 웃었다. 나도 민망해서 피식 웃었다.

동생은 지하철을 기다리며, 이제 조카가 형보다 더 크고 생각도 컸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아들은 어린 시절부터 우유를 잘 먹어 키가 훌쩍 자라 180cm가 넘는다. 거기다 고등학교 내내 스포츠형 머리를 고수해, 다른 친구 어머니들이 ‘어울리지 말라’고 말했을 정도로 듬직한 외모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아빠 눈앞에서는 달랐다. 아직은 손이 더 가고, 세심한 보살핌이 필요하며, 세상이라는 물속에서 제대로 헤엄치려면 조금 더 준비가 필요한 아이였다. 첫 직장, 첫사랑, 결혼… 인생의 여러 변곡점 앞에서 여전히 버겁고 어설플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 여행은 아빠 생각에 작지만 커다란 균열을 냈다.

아들은 이미 아빠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단단하게 자라 있었다.

스스로의 삶을 스스로 책임질 만큼, 조용히, 묵직하게 성장해 있었다.


그걸 몰랐던 사람은 오직 아빠뿐이었다.


20251118_155210.jpg 오사카 성을 담는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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