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형과 동생 사이에 끼어 있는 둘째이다. 삼형제가 가까운 거리에 살아서 자주 모여 밥이나 차를 마신다. 그날도 삼형제가 저녁 식사와 소주 한잔을 곁들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동생이 병원에서 죽다가 살아났던 작은 기적 같은 이야기를 꺼냈다.
동생은 30대 중반에 만났던 여자친구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이성과의 인연을 원하지 않았다. 사람 때문에 그렇게 힘들어하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게다가 확인되지 않은 병명으로 한 달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링거로부터 들어오는 수액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마시는 물조차 목 넘김이 쉽지 않아 구토를 반복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동생의 좋았던 체구는 사라지고 점점 말라갔다.
병원에서는 여러 가지 정밀검사를 했음에도 동생의 정확한 진단이 나오지 않았고, 상황은 점점 악화되었다. 진단이 어려워 제대로 된 치료가 쉽지 않았다. 정말 이대로면 동생을 떠나보낼 수도 있겠다는 불안한 생각이 휩싸였다. 우리 가족은 말을 아끼며 무거운 침묵 속에서 단단한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다. 가족에게 대책도 없이 흘러가는 시간은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나는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에 의료 분야에 계신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 소개를 받아 대전에 있는 대학병원으로 동생을 옮겼다. 담당 선생님은 동생이 앓고 있는 당뇨가 원인일 수 있다고 판단하며 관련 치료를 권했다. 그러나 이곳에서도 정확한 진단을 확인할 수는 없었다. 힘들고 안타까운 하루하루였다. 그러다가 병원을 옮기고 나서 일주일쯤 지나자 기적처럼 동생의 몸이 호전되기 시작했다. 가장 큰 변화는 ‘죽’을 먹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면서 동생은 어느 정도 좋아진 몸 상태로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삼형제의 맛있는 저녁 식사와 기분 좋게 올라오는 취기 속에서 동생은 말을 이었다. 병이 호전되지 않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주변을 하나하나 정리하며 담담히 죽음을 받아들이고 있었다고 했다. 이어서 형과 내가 몰랐던 동생의 슬픈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것은 동생의 자살 시도였다. 형과 나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몸과 마음이 지쳐가던 동생은 추운 겨울날, 다리에서 뛰어내리는 자살을 시도했다고 했다. 슬프고도 무거운 사연에 형들은 침묵 속에서 눈물을 감출 수 없었다. 그 힘든 상황을 몰랐다는 미안함과 부끄러움이 격랑의 파도처럼 밀려왔다. 특히 나의 부끄러움은, 내가 사회복지사로서 자살과 고독사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동생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아무도 몰랐고, 따뜻한 위로가 없었기에 혼자서 견뎌냈던 외로움의 크기는 가늠할 수 없었다. 외로움은 담배 15개피, 술 6잔과 맞먹는 악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마음을 다해 사랑했던 여자친구와의 이별, 원인 모를 병으로 홀로 아파했던 시간들…. 아마도 깊고 지독한 외로움과 통증 속에서 몸과 마음이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렸을 것이다.
때때로 형들이 동생의 건강한 삶을 걱정하며 잔소리를 하면, 동생은 이렇게 말한다.
“그날 이후로 나의 삶은 덤이야. 그래서 나는 하고 싶고, 먹고 싶은 것들에 대해 망설이고 싶지 않아.”
삶에는 두 번이 없다. 그 이후로는 동생에게 특별한 일이 없어도 자주 안부를 묻고, 시시콜콜한 대화로 챙기려 노력한다. 물론 때로는 사소한 일로 말다툼도 한다. 그래도 좋다. 우리는 종종 사랑하는 사람의 아픔을 너무 늦게 알아차리고, 미안함을 후회로 남긴다. 살아 있어야 우리가 서로의 얼굴을 보며 웃고, 때로는 울 수도 있지 않은가. 바쁘고 힘든 각자의 일상을 보내다가도 만나서 맛있는 밥 한 끼와 소주 한잔을 나누는 시간이 우리에게는 무엇보다 큰 위로가 된다.
살아주어서 정말 고맙다.
그리고 많이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