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은 나의 존재를 가장 잘 알고 있는 불편한 친구다. 다른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존재를 부정할 수는 없다. 이명과의 대화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때로 비와 함께 쏟아지는 폭우 같기도 하고, 때로는 늦은 밤 시골에서 크게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 같기도 하다. 가끔은 다양한 소리와 함께 두통, 수면장애라는 불편한 선물을 주기도 한다. 그러다 내 몸이 많이 지쳐 있다고 느껴지면, 미안한 마음이라도 있는 듯 조용한 소리로 다가오기도 한다.
불편한 친구로 함께 지내는 이명은 자기 멋대로, 양해도 구하지 않고 예의 없이 말을 걸어온다. 그러다 혼자 지루하거나 지치면 슬며시 거리를 두기도 한다. 나 역시 화가 나 과감히 밀어내고 싶지만, 물리적으로 막아낼 방법이 없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일 뿐이다.
시간이 쌓일수록 나는 불편한 동행에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음을 느낀다. 그래서 억지로라도 이명의 좋은 점을 찾아보기로 했다. 의외로 몇 가지가 있었다.
첫째, 이명은 매번 나의 건강 상태를 체크하고 알려 준다. 두 귀 속 울림의 강약으로 매우 정확하게 신호를 보낸다. 그리고 이렇게 경고한다.
“바보야! 지금 너는 이제 쉼이 필요해.”
“나는 분명히 너에게 경고했어. 봐봐라. 내 말을 듣지 않으면 탈이 날 거야. 아파도 모른 척하면 안 돼. 아프면 너만 서운해.”
둘째, 이명과 지내면서 달라진 일상이 있다. 되도록 자정 전에 잠자리에 들고, 아침에 눈을 뜨면 10분 정도 가볍게 명상과 스트레칭을 한다. 또한 지인과 함께하는 술자리에서는 과음에 대한 경각심도 생겼다. 건강을 생각하는 습관이 자연스레 자리 잡은 것이다.
셋째, 다른 사람의 이야기와 멀리서 들려오는 자연의 소리에 더욱 겸손해졌다. 좁거나 막힌 공간에서는 경청이 쉽지 않지만, 그래서인지 대화에 더 귀 기울이고 집중하게 되었다. 그 덕분에 소통의 깊이가 더해졌다. 또, 자연이 들려주는 빗소리, 풀벌레 소리, 바람 소리에 더욱 집중하게 되었다.
사람의 삶은 우렁찬 울음과 불꽃같은 소리로 세상과의 만남을 시작하고, 힘없는 침묵과 조용한 마지막을 남기며 사라진다. 그러나 사라진 후에도 존재는 누군가의 기억과 기록으로 남는다. 가족과 지인, 책, SNS 속에서 우리는 크고 작은 흔적으로 발견될 것이다.
어쩌면 생전의 작은 ‘나’라는 존재를 가장 잘 알고 기억해 주는 친구가 이명일지도 모른다. 불편함을 주지만, 지극히 가까운 관계에서 얻게 되는 이해와 연결은 내게 소중하다. 언젠가 이런 생각을 해 본 적도 있다. “이명은 내가 무지개다리를 건널 때까지 곁을 지켜보는 친구가 아닐까?”
“친구는 나의 슬픔을 그의 등에 지고 가는 사람이다.” 이 말처럼, 친구는 깊고 무거운 슬픔을 함께 나누는 존재다. 오늘도 이 친구와 함께하는 나의 하루는 특별하다. 불편한 친구로서의 역할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수용하면서 더불어 살아가고자 노력한다.
그래도 시간이 흘러 언젠가 좋은 기회로 이명과 이별할 수 있다면, 미련 없이 놓아줄 것이다. 모든 인간관계에는 좋음과 나쁨이 있고, 원하지 않아도 헤어짐이 찾아온다. 만약 이명과 헤어진다면 또 다른 변화가 있을 것이다. 다만 지금은 불편한 동행으로 인연을 이어가고 있을 뿐이다. 오늘도 이 친구와 하루를 시작한다.
잘해 보자, 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