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따뜻한 마음 약이 필요한 사람

by 독립사회복지사

새로운 도전으로 하루하루가 바쁘고 힘든 나날들이 있었다. 그런 시간이 눈덩이처럼 쌓여 조금씩 가라앉고 있을 즈음, 언제나 응원해 주던 후배가 떠올랐다. 후배는 동생의 옛 직장 동료이기도 했다.


내 기억 속의 그는 늘 밝은 미소와 제법 굵은 목소리를 지닌 사람이었다. 한동안 만나지 못한 미안함이 마음 한편에 쌓여 가고 있었는데, 마침 동생이 자리를 만들어 저녁 식사를 하게 되었다. 세 남자는 가벼운 안부를 나누며 각자의 삶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수다 보따리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술병이 식탁 위에 하나둘 늘어 가다 잠시 속도가 늦춰졌고, 대화의 주제는 자연스럽게 지금의 일과 앞으로의 계획으로 옮겨 갔다. 후배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아내와 함께 자영업을 시작했다고 했다.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아내가 운영하는 카페 오픈을 돕고, 오후에는 보험과 부동산 일을 하며, 저녁에는 지역사회 자원봉사 활동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고 했다. 꽉 들어찬 그의 스물네 시간 이야기를 듣다 보니, 문득 비교하게 되는 나 자신의 일상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가게는 고정 손님도 있었고 단체 주문도 들어와 초반에는 괜찮았다고 했다. 하지만 해마다 오르는 인건비와 가파르게 상승하는 재료비 앞에서 수익을 유지하는 일은 점점 버거워졌다고 한다. 운영에 대한 부담과 고민이 쌓이던 중, 또 다른 어려움이 찾아왔다. 부부의 건강에 이상 신호가 나타난 것이다.


그 때문이었을까. 사소한 다툼과 갈등이 잦아졌다. 가게 일에서 비롯된 스트레스와 점점 나빠지는 컨디션 속에서, 서로에게 위로의 말 한마디를 건넬 여유조차 사라져 갔다.


무거운 대화가 이어지던 중, 후배가 먹고 싶다며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우리는 말없이 술잔을 세게 부딪치고 한 번에 들이켰다. 동생이 화장실로 자리를 비운 뒤, 테이블 위에는 잠시 침묵이 내려앉았다.


나는 그 침묵을 깨고 싶어 후배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그리고 그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정말 힘들었겠다. 너는 남편으로, 아버지로 최선을 다했어.”


그 말에 후배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형님, 저는 새벽부터 밤까지 정말 열심히 살아왔어요. 쓰러지지 않으려고 버텼어요. 그런데 이제는 조금씩 지쳐가요. 다 내려놓고 싶어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답답해요.”


나는 잠시 말을 고르다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지금은 많이 지쳐 있잖아. 가까운 사람들을 돌보기 전에, 먼저 너 자신을 돌봐야 해. 몸과 마음이 조금 나아지면, 가까운 사람의 마음도 보일 거야.”


우리는 종종 가까운 사람을 돌보는 데 온 힘을 쏟다가 정작 자신의 몸과 마음을 놓치곤 한다. 그런 시기에는 대화 속에 방어와 부정이 앞서고, 경직된 분위기 속에서 의도치 않게 서로에게 가시 같은 상처를 남긴다.


가시가 깊이 박히면 쉽게 뽑을 수 없다. 아물지 못하는 상처로 남기 전에 약이 필요하다. 비싸고 단번에 낫는 약이 아니라, 서서히 스며드는 따뜻한 약. 그리고 기다림. 계절이 다시 바뀌면 상처는 조금 더 단단하게 아물 것이다.


후배의 짧지만 밀도 높은 이야기를 듣고 나니 생각이 많아졌다. 오히려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자주 만나지 못했던 사이였지만, 자신의 아픔과 현실을 꺼내 보여 주었고, 나는 그 이야기를 끝까지 들을 수 있었다.


겨울바람과 추위가 망설여졌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걸어가기로 했다. 복잡하게 얽힌 생각들을 비워 내고 싶었다. 얇은 코트 사이로 차가운 공기가 스며들었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은 따뜻했다.


우리는 저마다 정해 둔 거리를 유지하며 사람들과 어우러져 살아간다. 관계의 이음은 상호작용이고, 언제나 나로부터 시작된다. 그것은 파이프와도 같다. 땅속 깊이 묻혀 이어진 파이프보다 더 복잡한 구조다. 내 파이프가 튼튼하고 연결부가 매끄러워야, 따뜻한 마음이 상대에게 흘러간다.


삶은 끊임없이 숙제를 내준다. 우리는 그 숙제를 조금씩 풀어 가며 살아간다. 대신 풀어 줄 사람은 없다. 주체는 언제나 나 자신이다.


그 길은 가파르고 울퉁불퉁하다. 걸음마다 고통이 따르지만, 그 끝에는 완성의 순간과 성취감, 그리고 또 다른 동기가 기다리고 있다. 때로는 막막해 멈춰 설 수도 있다. 잠시 멈추어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피하지 않고 숙제와 마주하는 일이다.


나 역시 오늘도, 주어진 숙제를 풀어 가며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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