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신호를 무시하지 않기로 했다

by 독립사회복지사

건강은 언제나 조용히 무너지고, 어느 날 갑자기 신호를 보낸다.


정기적으로 건강검진을 받는 병원으로부터 Web 발신 문자가 왔다. 건강검진을 마치면 보통 결과를 문자로 보내오곤 해서 별다른 생각 없이 문자를 확인했다.

‘혈액검사에서 일부 검사 수치가 상승하여 내원하셔서 진료를 보시기 바랍니다.’


그냥 단순하게 진료를 받고 며칠 약을 먹는 정도로 생각하고 잊고 지냈다. 기억에서 잊힐 즈음, 카카오톡으로 건강검진 결과를 받았다. 파란색 ‘정상’보다 주황색 ‘주의’가 다소 많아지자 건강에 대한 걱정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리고 머릿속의 불안감은 적중했다. 끝에서 두 번째 칸에 삼각형 모양의 빨간색 ‘위험’이 선명하게 보였다.

뇌 속 깊숙이 박혀버린 탓인지 걱정이 빙빙 맴돌기 시작했다. 부정적인 이미지를 지워보려 ‘괜찮아’, ‘딱 여기까지만 걱정하자’ 스스로 다잡아 보았지만, 걱정은 큰 산 앞에서 점점 작아지는 사람처럼 나를 압도했다. 훌훌 털어버리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더 늦기 전에 병원에 다녀오는 것이었다.

예약이 안 되어 최대한 빠른 날로 잡아 병원에 갔다. 늦은 오후라 그런지 진료 대기실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고, 진료 순서 모니터에 바로 내 이름이 또렷하게 올라왔다. 담당 선생님이 휴진이라 다른 선생님의 진료를 받게 되었다. 흰색 마스크를 쓴 선생님은 다소 긴장한 나를 향해 무표정하게 말했다.


“이번 혈액검사에서 수치가 높은 항목이 하나 있어요. 수치를 낮추려면 계속 약을 드셔야 합니다.”


선생님의 말이 끝나자마자 물었다.

“선생님, 약을 먹지 않고 운동이나 식생활 개선만으로는 어려울까요?”

“많은 분들이 그렇게 질문하세요. 가능성이 없지는 않지만 쉽지는 않습니다. 지금은 약을 드시면서 운동과 식생활을 함께 관리하시고, 한 달 후에 다시 검사해 보죠.”


나는 풀이 잔뜩 죽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선생님.”


터벅터벅 걸어 주차장에 도착했다. 차에 앉자 문득 집에서 일하는 책상 옆에 줄줄이 놓여 있는 약봉지들과 갈색 플라스틱병에 담긴 영양제가 떠올랐다. 언제부터인가 바구니에 약봉지가 도미노처럼 늘어났다. 이제는 헷갈리지 않으려 약봉지의 빈 여백에 굵은 네임펜으로 아프고도 슬픈 이름들을 적어 두어야 했다.

아마도 나이가 하나둘 쌓일수록 더 많은 약과 씨름하게 될 것이다. 자연스럽게 몸은 약을 찾게 되고, 의존도도 깊어질 것이다. 아니, 이미 시작되었다. 그러고 보니 정말 알고 싶지 않았던 병원 이름들도 머릿속에 적지 않게 자리 잡고 있다.


나름 헬스장과 산책로에서 운동을 자주 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되었을까?’

질문의 답은 나의 일상 속에 있었다.


강의로 전국 방방곡곡을 떠돌다 보니 출장이 잦아졌고, 장거리 운전과 연이은 이동으로 하루 혹은 이틀을 홀로 보내는 날들이 생겼다. 강의가 열리는 곳곳의 아름다운 자연과 사람들과의 만남은 막혀있던 마음을 위로해 주었다. 하지만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잠깐 쉬고, 편도 네 시간이 넘는 여정 속에서 마주하는 검은 아스팔트와 노란색, 흰색 경계선들은 지루하고 힘들고 쓸쓸했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빼빼로 밤’도 한몫했다. 밤은 낮에 보이던 푸른 숲과 바다를 어둠 속에 집어삼킨다. 그 어둠에 홀로 덩그러니 둘러싸여 있으면 외롭고 심심해진다. 가끔은 그 시간을 피하고 싶어 ‘술’과 ‘야식’이라는 친구와 함께 있었다. 결국 건강은 외로움에서 비롯된 슬프고 아픈 감정이 조금씩 썩어가는 과일과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완벽한 건강은 없다. 사람은 멈출 수 없는 시간 속에서 몸의 노화를 받아들이며 살아가고, 그에 따라 건강 신호등의 불빛도 바뀐다. 건강을 유지하고 관리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육체적인 비용뿐만 아니라 마음의 비용까지 치를 각오가 서 있어야 가능하다. 몸에 달고 편하고 쉬운 건강은 빨간 사과 속에 숨어든 병든 벌레와도 같다. 나의 건강은 쉽지 않은 일상의 반복을 습관화하는 과정이다.

나는 병원에서 적지 않은 충격을 받은 이후 운동과 식생활 개선을 위해 노력과 비용을 내고 있다.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번 건강 이상 신호가 없었다면, 언젠가는 아무리 큰 노력과 비용을 들여도 건강한 신호를 받지 못한 채 건널목을 건너야 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나름대로 의사 선생님들의 건강관리 조언을 정리했다. 대단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행동으로 옮기고 습관화하기는 쉽지도 않다.

좋은 운동을 하고,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사람을 만나고,

좋은 생각을 하며 살아야 한다.

좋은 운동은 땀이 나고 심장이 뛰는 운동이다.

좋은 사람은 웃음이 많고, 나에게 그늘과 쉼을 내어주는 나무 같은 사람이다.

좋은 음식은 몸이 반기는 음식이며, 꾸준히 즐길 수 있는 음식이다.

좋은 생각은 걱정과 두려움을 애써 붙잡지 않고 지나치게 하는 것이다.

두 번을 사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몸이 보내는 신호 앞에 멈춰 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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