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길 끝에서 사회복지사가 되기까지

by 독립사회복지사

사회복지사로 일하기 전, 나는 가족과 지인들이 고개를 갸웃하던 민간 IT계열 기업에서 기획 업무를 맡고 있었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 이른바 IMF 사태를 계기로 회사는 허무하게 문을 닫았다. 경영진은 손을 놓았고, 직원들은 서로를 붙잡고 끝까지 버텨보려 했지만 결국 우리는 마지막 벼랑 끝에 서게 되었다.

살길을 찾기 위해 동료와 함께 벤처기업 창업을 준비했다. 1년이라는 시간을 쏟았지만, 지인의 탐욕은 모든 것을 앗아갔다. 나는 순식간에 무일푼이 되었고, 차가운 길 위로 내던져졌다. 불행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불안한 몸에 폐결핵이 찾아왔다. 단 1분도 기침이 멈추지 않아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것조차 힘들었다. 돈도, 건강도 잃었다. 손에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세상에 혼자 버림받았구나.’


그 생각은 깊은 상처가 되어 남았다. 그 상처는 지금도 가끔 받는 건강검진 X선 흉부 촬영에서, 폐에 옅은 구름처럼 흔적으로 남아 있다.

아픈 몸에 빈털터리인 나는 갈 곳이 없었다. 결국 자존심의 종착지라 여기며 외면하고 싶었던 곳, 어머니와 형이 살고 있는 조치원으로 내려왔다. 작은 식당을 운영하던 어머니와 형은 아무 말 없이 나를 받아주었고, 묻지 않은 채 기다려 주었다. 형 집의 작은 방에서 한 달 동안 나는 거의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어둠과 함께 하루를 보냈다. 가끔 형이 쥐여 준 용돈으로 소주 한 병을 사기 위해, 어둠 속을 더듬듯 밖으로 나왔다.


어느 날, 숨이 막히듯 답답해 아파트 복도 난간에 섰다. 먼 곳을 바라보다가 무심코 주머니를 뒤졌다. 큰 손바닥 위에 남은 것은 10원짜리 동전 하나였다. 그것이 내 전부였다. 버티는 것이 너무 힘들어 이 나라를 떠나고 싶었다. 그러나 실패자로 도망치는 것도 두려웠고, 무엇보다 가족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생각에 결국 남기로 했다.


치료를 마치면 조치원에 머물 생각은 없었다. 다시 서울로 올라갈 계획이었다. 폐결핵은 6개월간 보건소 약물치료를 통해 완치되었다. 건강도 중요했지만, 당장 눈덩이처럼 불어난 채무를 정리해야 했다. 막 출범한 신용회복위원회를 찾아가 채무조정을 신청했고, 여러 은행과의 조정 과정에서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다행히 통과되었다. 숨을 고를 수 있었다.

곧바로 생계가 필요했다. 온라인 구인·구직이 지금처럼 흔하지 않던 시절, 생활정보지 ‘교차로’를 통해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내 삶의 방향을 바꾸어 준 사람을 만났다. 지점장님이었다. 사람은 사람에게 상처를 받기도 하지만, 길을 잃었을 때 방향을 가리켜 주는 사람 또한 사람이다. 지점장님은 힘든 날이면 저녁 시간을 내어주었고, 소주 한 잔과 함께 내 삶을 조용히 들어주며 진심으로 응원해 주었다. 어느 날 점심을 먹다가 아동·청소년 관련 자원봉사를 함께하자고 제안했다. 나는 망설임 없이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우리가 몸담고 있던 지역 생활정보지는 머지않아 온라인의 물결에 밀려 직업으로서의 매력을 잃어갔다. 다시 서울로 올라가야 하나 고민하던 그때, 한발 먼저 회사를 떠난 지점장님이 중국에서 부동산 개발 사업을 하는 지인의 회사 입사를 제안해 주었다. 당시 중국은 호황기였고, 언론에도 자주 오르내리던 시기였다. 서른두 살 늦은 봄, 나는 다시 한번 선택의 기로에 섰다.


휴가를 내어 중국 칭다오로 갔다. 면접을 마치고 호텔 방 침대에 누워 천장에 매달린 실내등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머릿속은 복잡했고, 가족이 떠올랐다. 주거와 교육, 의료에 대한 걱정이 꼬리를 물었다. 그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나는 무엇을 할 때 행복하고 재미가 있었는가?’


답은 놀랍도록 분명했다. 지점장님과 함께했던 자원봉사 시간, 지역사회 아이들과 보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아이들과 웃고 떠들던 장면, 그 곁에서 일하던 사회복지사들의 모습이 또렷하게 겹쳐졌다. 가슴을 짓누르던 돌덩이가 치워진 듯 숨이 트였다.

우리는 인생에서 수없이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 사이에 선다. 나는 ‘하고 싶은 일’을 선택했다. 몇 년이 될지, 평생이 될지 알 수 없는 직업을 고르는 일은 언제나 어렵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재미와 즐거움이 없는 선택은 삶을 서서히 지치게 만든다는 사실이다. 알고도 ‘해야 할 일’만을 선택하는 삶은, 어쩌면 스스로를 망가뜨리는 가장 빠른 길일지도 모른다.

돌이켜보면 나는 참 운이 좋았다. 직장에서 아버지 같은 멘토를 만났기 때문이다. 이제 막 걸음을 떼는 아기는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누군가의 손이 필요하다. 다 큰 어른도 새로운 길 앞에서는 다르지 않다.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그것은 부끄러움이 아니라 살아가기 위한 지혜다.

누구나 선택 앞에서는 두렵고 불안하다. 다만 그 두려움 앞에서 멈추지 않고 한 걸음 지나갈 수 있는 용기, 그 용기가 삶을 다음 장으로 데려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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