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이어 비가 내리는 날씨에 외출을 망설이다가 결국 밖으로 나섰다. 마땅히 할 일이 없어서 가까운 셀프 세차장에 들러 아방이를 가볍게 씻겨주고, 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메타세쿼이아 숲길을 걷고 싶어졌다. 마음처럼 텅 빈 텀블러에 편의점에서 따뜻한 커피를 가득 채우고 출발했다.
생각보다 짧았던 메타세쿼이아 숲길이 아쉬워서, 근처의 작은 강변 산책길로 향했다. 그 길에는 여전히 꽃들이 만발해 있었다. 지난해 겨울, '다시 오겠다'는 약속을 잊지 않았다는 듯이 화초양귀비, 개불알꽃, 유채꽃, 수선화, 제비꽃, 괭이밥꽃, 나팔꽃, 금계국이 피어 있었다. 이제는 그들의 이름을 하나둘 기억하게 되었다. 아직도 이름조차 알지 못한 채 스쳐 지나가는 꽃들이 많지만. 오랫동안 정해진 시간에 반복되는 출퇴근 속에서는 사계절을 따라 피고 지는 꽃들을 만날 수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모든 꽃에는 이름이 있지만, 나는 그 이름들을 알지 못했다. 스무다섯 해의 익숙함을 내려놓은 후에야 비로소 주변을 자세히 살피게 되었다. 관심을 두고 인사하듯 바라보며, 그제야 스쳐 지나갔던 꽃들과, 하늘과, 바람과 다시 만났다.
이따금 지인과의 만남에도 이동의 편리함을 주는 자동차를 쉬게 하고, 시간을 들여 걷거나 버스를 타기도 한다. 자동차는 우리에게 많은 혜택을 주지만, 그만큼 자연과 나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을 앗아가기도 한다.
문득 떠오른 유튜브 강연의 말이 있다. “자연과 주변의 변화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마음이 건강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실제로 그런지 궁금해서 강의 중 교육생들에게 묻곤 한다. 손을 드는 이는 많지 않다. 안타깝다. 일에 치여 삶을 다독일 여유조차 없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때때로, 나와 자연의 변화를 바라보자.
때때로, 내 주변 사람들을 바라보자.
가까운 사람들은 어떻게 지내는지, 어떤 고민을 안고 있는지, 행복한지 살펴보아야 한다. 힘들고 지쳐 있다면, 그 손을 뿌리치지 말고 단단히 잡아 주자. 자연과의 만남을 주선해, 마음 건강을 되찾을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것도 중요한 역할이다.
산책길은 구불구불 유연한 곡선으로 이어진다. 아마도 길가에 핀 꽃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라며 안내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걷다 보니 흔들의자에 쓰인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인생은 여행이다.”
여행은 발길 닿는 곳곳마다 새로운 길, 새로운 꽃, 새로운 나무, 새로운 하늘을 보여준다. 그로 인해 마음이 따뜻해지고, 머릿속이 맑아진다. 인생에서 마음의 안식을 얻는 방법은 어쩌면 이렇게 자연과 만나고 교감하는 것이 아닐까.
가끔은 자연과 만날 기회를 나에게 허락하자.
가끔은 나의 마음을 돌볼 시간을 만들어 보자.
여행으로 자연이 준 길을 따라가다 보면, 그 끝에서 진짜 나의 인생과 마음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