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죽기 전에 해볼 일

by 독립사회복지사

봄이 무르익어 가는 4월, 옹진군청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주무관님은 7개의 면 지역에서 강의를 해달라 요청하면서 그중 6개 면이 섬으로 되어 있어 배를 타고 이동해야 한다고 했다. 잠시 망설였다. 뱃멀미는 없지만, 장거리 이동이 부담스러웠다. 백령도와 연평도는 육지에서 가장 먼 곳이라는 생각이 먼저 떠올랐다. 고민하던 중,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죽기 전에 백령도와 연평도를 갈 수 있을까? 그래! 결정했어. 한번 가보자!’ 마음먹고 주무관님에게 함께하겠다고 말했다.


주무관님은 기뻐하며 말했다.


“고맙습니다! 강사님. 옹진군은 강사님 섭외가 쉽지 않아서 걱정이 많았습니다.”

나는 그제야 강사들이 기피하는 이유를 배편으로 먼 거리를 이동하는 어려움으로만 생각했던 게 아닐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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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시작한 영흥면은 예전에는 섬이었지만 지금은 다리가 놓여 ‘섬 아닌 섬’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 방문한 덕적도부터는 드넓은 바다와 커다란 배와의 긴 여정이 시작되었다. 백령도와 연평도를 제외하면 대부분 왕복 2시간 거리였지만, 강의 일정을 맞추려면 이른 아침 배를 타고 오후 배로 돌아와야 했다. 육지에서는 버스나 기차를 놓쳐도 다음 교통편을 기다리며 마음의 여유를 찾을 수 있지만, 섬은 그렇지 않았다. 배를 놓치면 더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 그래서 강의 전날, 인천연안여객터미널 인근에서 잠을 청하며 배를 놓칠까 봐 생긴 불안감을 덜곤 했다.


어느 날은 짙은 안개로 터미널에서 3시간을 기다렸다. 주무관님은 이런 대기 상태가 익숙하다고 했다. 눈으로 보기에는 항해에 무리가 없어 보였는데, 바다는 인정사정이 없었다. 커다란 자연 앞에서 인간은 무력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는 조급함을 누르고 기다림이 필요했다.


주무관님은 터미널에서 대기 시간이 잦은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세월호 사건 이후로 배의 안전 문제가 강화되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잊고 있었던 세월호 사건의 아픈 기억이 떠올랐다. ‘그래, 조금 기다려도 괜찮아. 그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더욱 조심하고 안전을 챙기는 것이 더 중요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도 떠올랐다. 그때 조금 더 어른들이 안전을 챙기고 확인했더라면, 그 누군가의 엄마, 아들, 딸, 부모님을 그렇게 멀리 떠나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섬 여행지라면 제주도가 떠오른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옹진군의 아름다운 섬들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나 역시도 백령도와 연평도 정도만 뉴스를 통해 알고 있었다. 특히, 연평도는 2002년 연평해전과 2010년 연평도 포격사건으로 기억되고 있다. 연평도를 방문하면서, 우리나라가 아직 종전이 아닌 휴전 중이라는 현실을 다시금 떠올렸다. 오래전 영화 ‘연평해전’을 보면서, 해전 중 벌어진 참혹한 상황과 장병들의 숨겨진 이야기에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이 땅에 다시는 전쟁이 없기를 간절히 바란다.


연평도에는 포격 사건 일부 현장을 그대로 보존해 둔 체험관이 있다. 고향이 연평도인 해설사는 그날의 상황을 진지하게 전했다. 그러다 진지함 속에서 웃음 섞인 이야기를 꺼내 주셨다. 북한의 포격으로 집을 잃은 주민이 정부로부터 5천만 원을 지원받아 집을 새로 지었다고 한다. 마을 어르신 한 분이 그 이야기를 듣고 “왜 우리 집은 포격하지 않은 거야. 집을 새로 지을 수 있었잖아.”라며 농담을 하셨다고 한다.


연평도는 꽃게로도 유명하다. 7월은 꽃게 철의 끝물이라 아쉬웠지만, 주말에 삼 형제 모임이 있어서 연평면행정복지센터 공무원을 통해 꽃게를 주문했다. 그러나 주문이 많아 깜빡하셨는지 연평 꽃게를 만나지 못했다. ‘다음에는 꼭 만나리라.’ 다짐했다.


백령도는 왕복 8시간이 걸리는 먼 거리의 섬이다. 마침내 섬에서 1박을 하게 되었다. 백령도의 맛집을 검색해 보았다. 머릿속에는 싱싱한 회나 꽃게, 조개 요리가 떠올랐지만, 의외로 냉면과 칼국수를 만드는 식당이 유명했다. 문득 예전에 다녀왔던 마라도의 짜장면 집이 생각났다. 며칠간의 섬 여행에서 짜장면, 짬뽕, 볶음밥을 많이 먹었다. 대부분 섬의 맛집은 왜 중국집일까? 궁금했다. 백령도도 다르지 않았다.


백령도에는 바다 너머 북한 땅을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심청각'이라는 곳이 있다 하여 강의 후 찾아갔다. 그곳에서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백령도와 북한 사이에 있는 바다가 그 유명한 심청이의 ‘인당수’라고 했다. 어릴 적부터 심청전을 많이 보아 잘 알고 있었지만, 심청이가 빠진 인당수가 정말 백령도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곳은 밤에 수많은 별빛을 감상할 수 있는 명소이기도 하다.


다음 날 7시에 인천으로 돌아가는 배를 예약해 두었기에 숙소에서 일찍 일어나 짐을 꾸렸다. 작은 창으로 백령도의 숲과 논밭이 보였다.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던 중, 신기한 장면을 보았다. 논밭 위로 갈매기, 까치, 참새가 함께 날고 있었다. 논밭의 그림을 갈매기가 망치는 것일까, 아니면 완성시키는 것일까? 자연이라는 작가는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에게 해석의 기회를 남겨둔다. 백령도의 주민들은 대부분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지 않고 논밭에서 작물을 키우며 살아간다고 한다. 알고 있던 상식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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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로 이동하는 여섯 개의 섬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섬은 자월도였다. ‘자줏빛 달이 머무는 섬’이라는 뜻의 자월도는 제법 걸어서 돌아볼 수 있는 섬이었다. 혼자서 둘러보며 걷기로 했다. 아직 여름이 오지 않았지만, 섬을 둘러싼 모래해변은 제법 뜨거웠다. 해변에 있는 소나무가 만들어준 그늘 사이를 걸으며 푸른 소나무와 바다, 금빛 모래와 이웃 섬들이 어우러진 자월도의 아름다움에 감탄했다. 모든 요소가 조화를 이루어 어우러질 때 비로소 아름다움이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월도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싶었지만, 다음 일정이 있어 발걸음을 돌렸다.


버킷 리스트란 죽기 전에 한 번은 해보고 싶은 일을 말한다. 옹진군의 섬들은 나의 버킷 리스트에 없었다. 그러나 한 통의 전화로 이 여정은 시작되었고, 나는 어느새 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일이 되었다. 예상치 못한 섬과의 만남으로 오랜만에 설레고, 기다리고, 기뻤다. 마치 새로운 인연을 만나기 위한 즐거운 시간처럼. 벌어지는 모든 일들이 새로운 만남이었다. 이 글을 써 내려가는 지금도 그때의 시간을 되돌아보며 나는 입가에 미소를 짓고 있다. 가끔 힘들어하는 지인에게 “어깨에 짐이 많으면 가벼운 배낭에 넣어 바다나 산에 버리고 오세요.”라고 말해주곤 한다.


두 달 동안 영흥도, 덕적도, 자월도, 백령도, 대청도, 연평도, 북도 이렇게 7개 섬을 만났다. 그리고 옹진군에서 보이지 않는 어려운 이웃을 찾고 보살피는 아름다운 주민과 공무원을 만났다. 쉽지 않은 여정을 끝내면서 왠지 모를 짙은 아쉬움과 함께 '다시 올 수 있을까?'라고 나에게 질문했다. 그러나 마음속에 답을 주었다. '다시, 오자.' 우리가 떠나는 걸음은 돌아오는 걸음의 시작이다. 그래서 뒤를 돌아볼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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