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아이가 태어나고 두 해가 되기 전, 나는 사회복지사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지금은 사회복지사의 처우나 근무 환경이 예전보다는 많이 나아졌지만, 내가 자원봉사를 3년 넘게 하다가 시작하던 당시에는 참 열악했다. 한 가정의 가정으로서는 쉽사리 선택하기 어려운 직업이었다.
매일 줄어드는 통장 잔고를 보며 걱정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가장으로서의 무게가 무거워서였을까, 아니면, 앞으로 펼쳐질 삶이 두려워서일까. ‘내게 맞지 않는 길일까?’하는 생각에 서울로 이직을 고민한 날들도 있었다. 그 시간들은 마치 구릉이 천천히 산이 되는 과정 같았다.
어느 날, 조금 늦게 퇴근에 집에 도착했을 때, 아이는 벌써 잠자리에 들어 있었다. 멍하니 아이를 바라보다, 문득 가슴속에 가득한 감정들이 올라왔다. 머릿속은 복잡했고, 어디에도 마음 붙일 곳이 없어 답답함이 밀려왔다. 결국 집에 더 이상 머무를 수가 없었다. 목적지를 정하지 못하고 집을 나섰다. 시골 아파트 인근에 살아서 저녁에 딱히 갈 곳이 많지 않았다.
배도 고프고 마음도 허해서 재래시장 안에 있는 폐계닭 닭갈비가 떠올랐다. 육질이 부드러운 닭갈비와는 달리 질기고 맵다. 처음 먹고 나서 다시는 오지 못하겠다고 다짐했지만, 왠지 그날따라 그 거친 맛이 당겼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 조용히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혼자 술을 마시며, 1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소주 두 병을 비웠다. 어느새 식당에 나 혼자만 남아 있었다. 외로웠고, 누군가 다가와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넸다면, 나는 꾹 눌러왔던 눈물을 쏟았을지도 모른다.
그때, 주인아주머니가 내게 다가왔다.
"젊은이, 주민등록증을 보여 줄 수 있을까? “
순간 당황했다. 아무리 어려 보여도 미성년자는 아니고, 이미 소주를 두 병을 마신 후였다.
"무슨 일 있으세요?"라고 묻자 아주머니는 말했다.
"총각이 혼자 와서 술을 많이 마시길래 지켜보고 있었어. 그런데 아무래도... 세상을 등질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말이야. 안 되겠다 싶어서 그래. 괜찮아?”
그 말에 참아왔던 눈물이 흘러내렸다. 주인아주머니의 걱정 어린 말 한마디에, 마음속 깊이 얼어붙어 있던 외로움이 눈물과 함께 녹아 버렸다.
"괜찮아요. 아주머니, 이 동네 아파트에 살아요. 그냥... 요즘에 조금 힘든 일이 있어서요. 정말 감사합니다."
사람은 돈이 없어서 외롭고, 나이가 들어 아파서 외롭고, 혼자 남겨져 외롭다. 그렇게 외로움의 무게를 안고 버티다가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특히 겨울철 꽁꽁 얼어버린 두꺼운 얼음덩이 속에 만년설에 갇힌 외로운 삶은 돈 없고, 아프고, 쓸쓸함에도 그 누구에게도 위로받지 못할 때이다.
나는 그날, 질기고 매운 닭갈비와 무뚝뚝한 소주로부터 위로를 받고 싶었다. 하지만 결국 나를 위로한 건, 아주머니의 따뜻한 마음이 담겨 있는 말 한마디였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아주머니에게 깊이 인사를 드리고, 한결 가벼워진 마음과 발걸음으로 집을 향했다.
살다 보면, 홀로 외로움을 견디고 버티는 사람을 만날 수가 있다. 그럴 땐, 주저하지 말고 고 따뜻한 한마디를 건네기를 바란다.
"괜찮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