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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담 May 13. 2016

강변 꼼장어 불판 위에서 꼼장어는 익어가고

#신 #죽음

강변 꼼장어 불판 위에서 꼼장어가 익어갈 때, 무신론자와 마주 앉아 신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신은 존재하지 않고 만약 존재한다면 분명 변태일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나는 신이란 지극히 개인적인 존재라서 믿는 사람의 마음속에 존재한다고 반박했다. 소주잔이 분주하게 오갔고 신도 분주히 존재와 비존재 사이를 오갔다. 오리무중인 신의 행방에 신자와 무신자는 서로 목소리를 높였지만, 겨우 높아진 것은 혈중 알코올 농도뿐이었다.


불판 위에서 노릇노릇 익어가는 꼼장어를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자니 어쩐지 발밑이 뜨거워지는 기분이었다. 만약 신이 있다면, 그분이 보시기에 우리는 불판 위에서 익어가는 꼼장어처럼 보일 것이다. 큰놈이든 작은놈이든, 쫄깃쫄깃한 놈이든 물컹물컹한 놈이든, 설익은 놈이든 바짝 익은 놈이든, 꼼장어는 젓가락에 집혀 불판을 뜨는 그 순간까지 몸뚱이를 익히며 생명의 물기를 잃어간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매 순간 생의 스위치를 하나씩 내리며 죽어 없어질 그 순간을 향해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 이런 꼼장어 같은 것들이 꼼장어를 앞에 두고 신을 운운했다고 생각하니 발밑이 더 뜨거워지면서 술이 오른다.


기왕 술에 취한 김에 조금 더 떠들어야겠다. 말하자면 이런 것이다. 사람은 모두 죽는다. 그것은 신자와 무신자 모두 마찬가지이다. 신을 믿지 않는다고 하여 일찍 죽는 것이 아니고, 신을 믿는다고 하여 죽음을 면제받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언젠가는 반드시 죽는다. 그래서 무신자는 신이 무능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신은, 세상 무엇보다 자명하지만 망각하기 일쑤인 그 사실을 인식하는 순간 존재를 드러낸다. 만약 인간이 죽지 않고 영원한 삶을 살았다면 아마 신은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이를테면, 신이 존재하고 우리의 죽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죽음이 있은 후에 신은 존재하는 것이다.


죽음이라는 압도적인 진리 앞에서 인간은 어떤 초월적인 존재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초월적인 존재에 대한 믿음에서 인간은 위안을 얻었을 터이고, 메시아에게 그 믿음을 투영시킴으로써 종교가 형성되었을 것이다. 종교가 있기 전에 믿음이 있었고, 믿음이 있기 전에 신이 있었으며, 신이 있기 전에 죽음이 있었다. 따라서 신을 믿는 것과 종교를 갖는 것은 비슷하지만 같은 말이 아니다. 신을 믿지만 종교가 없는 사람이 있고, 종교가 있지만 신을 의심하는 사람이 있다. 신이 진리라면, 종교는 그 세계를 인간의 머리로 해석한 현실이다. 그래서 현실에는 무수히 많은 종교가 존재한다. 진리의 세계를 온전히 이해하기에는 인간이 너무나 미약한 존재이기 때문이리라.


이렇게 미약한 인간들은 교회에 가고 절에 가고 모스크에 가서 신에게 기도한다. 본인의 행복과 가족의 건강 같이 소박한 것으로부터 세계 평화와 빈곤퇴치 같은 거창한 것까지 신이 이루어주기를 빈다. 그러나 이 모든 기도는, 실은 자신이 언젠가는 죽을 것이라는 명명백백하지만 까먹기 쉬운 그 사실을 끊임없이 자신에게 되뇌는 것이다. 기도는, 압도적인 죽음의 세계 앞에 당당하고 후회 없이 살게 해달라고 초월적인 존재에게 간절히 기대는 것이다. 나는 언젠가는 죽을 것이므로 현재의 삶에 더욱 충실하겠다는 결의이고 다짐이다. 그것은 죽은 뒤 본인의 거처랄지, 행방이랄지를 고민하는 것과 전혀 다른 문제이다. 신은 죽음을 관장하는 존재가 아니라,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시간 동안 손을 잡아 주는 존재이다.


사람은 누구나 혼자 죽는다. 죽음 앞에 사람은 누구나 공평하고 누구나 고독하다. 개별적이고 고독한 죽음 앞에 손을 내밀어주는 것은 신 밖에 없다. 따라서 믿는 자의 가슴속에 신은 존재한다. 누구나 개별적으로 죽기 때문에 신도 개별적으로 존재한다. 그러나 개별적인 죽음은 모든 인간에게 보편적이기에, 신은 보편적인 존재이다. 죽음이 압도적인 만큼 신도 압도적이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우리는 강변 꼼장어 불판 위에서 익어가는 꼼장어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다. 꼼장어는 익으면서 먹음직스러운 외관과 달콤한 향기로 우리의 식욕을 자극한다. 우리의 몸속으로 들어와서는 고단백 몸뚱이를 분해하여 우리의 정력 향상에 이바지한다. 우리네 삶도, 언젠가는 죽어 없어질 이 한 몸을 불살라 누군가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이바지하는 것, 뭐 그런 것이 아닐까. 신은 우리에게 불멸의 삶을 주지 않았지만 꼼장어와 소주를 주셨으니, 이만하면 신은 분명 존재한다고 그냥 믿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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