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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담 May 13. 2016

나는 춤추며 살기로 했다

#Radiohead #Thom Yorke

나의 삶을 둘로 나눈다면,

단언컨대, 그의 춤을 보기 전의 삶과 본 후의 삶으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라디오헤드의 보컬 톰 요크는 첫 곡 Lotus Flower가 흘러나오자마자 춤을 추기 시작했다. 딱히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그저 몸짓에 가까운 막춤이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오징어춤'이라고 부르는 모양이었다. 그의 춤은 일반적인 관점에서 분명 그 무대와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그들은 진지하고 심오한 음악을 하는 록밴드였다. 록밴드의 보컬이 노래를 하면서 그런 우스꽝스러운 춤을 춘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가. 그는 공연 내내 잠시도 쉬지 않고 춤을 추었다. 그 춤은 내가 무대 위에서 본 춤 중에 가장 형편없었다. 그러나 내가 본 그 어떤 춤보다도 아름다웠다.


톰 요크의 일명 '오징어춤'은 오징어도 아니었고, 춤도 아니었다. 그는 분명 춤을 추고 있었지만, 춤을 추는 것이 아닌 것도 같았다. 보통 춤을 추면 어떻게 해서든 자신의 몸을 크게 하여 무대를 꽉 채우려고 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어쩐지 그는 춤을 출수록 점점 더 흐릿해져 갔다. 그의 춤은 누군가를 향해 있지 않았다. 관중은 그의 춤에 열광했지만, 관중의 환호는 그의 몸짓에 가닿지 못했다. 그의 춤은 오로지 그의 음악만을 향해 있었다. 그것은 무대 위에 있는 자신을 지워 없애기 위한 일종의 의식처럼 보였다. 그는 그렇게 음악 속으로 완벽하게 사라져버렸고 무대 위에는 오로지 음악만이 남았다. 그 압도적인 무아지경의 향연 앞에, 나는 망연자실했다.


그래서 나는 이제부터, 춤을 추며 살아가기로 했다.

Radiohead - Lotus Flower

태초에 음악이 있었다. 그 음악을 처음 들은 사람은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춤을 추기 시작했다. 음악에 맞추어 몸을 움직이다 보니 어느 순간, 자신이 누군지, 어디에 있는지, 또 무엇을 하려고 했었는지 다 잊어버렸다. 이어 더위가 사라졌고, 배고픔이 사라졌고, 두려움이 사라졌고, 욕망이 사라졌으며, 결국에는 춤추고 있는 자신마저 사라졌다. 자신이 원래 존재했던 것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태초에, 음악만이 있었다.


무아(無我), 무아의 경지, 무아지경은 흔히 오르가슴에 비유된다. 오르가슴에 이르기 위해서는 자신을 비워야 하기도 하고, 자신을 비우는 일 자체가 대단한 즐거움이기도 한 까닭이다. 춤을 추는 것은 자아를 지우는 가장 쉽고 빠른 방법이다. 자아가 있던 곳에 음악을 채워 넣으면 그만이다. 이 도시에는 음악이라면 얼마든지 있기 때문에, 원하면 언제 어디서든 채워 넣을 수 있다. 춤을 추는 것은 도심 속에서 하는 명상이고, 오르가슴의 황홀경을 부르는 주문이다.


라디오헤드의 공연을 보면서 나는 나의 삶이 조금씩 바뀌어 가고 있음을 예감했다. 나는 비로소, '잡초가 무성한 나의 마음속 공터(An empty space inside my heart where the weeds take root)'에서 방황하던 허상들을 풀어줄 수 있었다. 그 허상을 만들어내기 위하여 얼마나 애썼던가, 그 허상에 못 미치는 나의 실제 모습에 또 얼마나 좌절했던가. 이제부터 나는 춤을 추며 살리라. 음악 속으로 나를 지워 없애고 춤을 추면서 살리라. 춤을 추는 것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을 떠나보내는 황홀한 심사이어니. 아아, 황홀한 무아의 세계로 나는 춤을 추며 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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