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 #달리기
작가 김연수는 "가장 천천히 뛴다고 생각하면 가장 빨리 뛸 수 있어"라는 문장을 읽고 매일 달릴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모바일 App을 이용하여 달리기 기록을 측정하는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이 조언은 매우 유효하다. 처음 달리기를 시작할 때 욕심이 달리는 몸보다 앞서가면 5분도 안되어 숨이 차오른다. 얼마 달리지도 않았는데 숨이 차오르기 시작하면 그 달리기에서 좋은 기록을 기대하기 힘들다. 그러나 슬렁슬렁 천천히 간다는 마음으로 달리면 숨이 차오르는 것이 훨씬 덜해서 멈출까 말까를 수백 번 고민하지 않고도 오래도록 달릴 수 있다. 이 경우 초반 기록은 더 늦을 수 있어도 처음 속도를 계속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전체적인 기록은 더 좋게 나온다. 말 그대로, 가장 천천히 뛴다고 생각하면 가장 빨리 뛸 수 있는 것이다.
<4 Hour> 시리즈의 저자 Tim Ferris는 그의 TED talk에서, 수영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물 위에서 수영하는 것이 아니라 물속에서 수영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바꿔 말하면, 가라앉는다고 생각하면 가장 잘 뜰 수 있어, 정도가 되겠다. 장거리 수영은 타고난 폐활량의 소유자만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이 조언을 듣고 난 후 500m 정도를 쉬지 않고 수영할 수 있게 되었고 매주 100m씩 거리를 늘려나가고 있다. 몸을 물에 띄우려는 노력을 멈추자 신기하게도 마치 물침대에 누운 것처럼 느껴지는 물속의 한 지점을 찾게 되었다. 거기에 누워 수영하는 것은 정말 땅을 짚고 헤엄치는 것 같았고 나는 절박하게 산소를 찾아 고개를 광속으로 쳐들지 않고도 오래도록 수영할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가라앉는다고 생각하면 가장 오래 떠있을 수 있는 것이다.
내가 미식축구공을 멀리 던질 수 있게 된 것은 세게 던져야 한다는 생각을 버린 후부터였다. 공을 빠르고 멀리 던지고 싶었던 나는 공을 있는 힘껏 던졌지만 공은 빠르지도 않았고 멀리 나가지도 않았다. 욕심이 앞선 탓에 무리한 훈련을 강행한 나머지 허리만 상했다. 그러던 중 일본에서 온 신죠 코치로부터 몸의 회전을 이용하여 공을 던지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정수리와 가랑이 사이로 가상의 회전축이 있다고 가정하고 그 축을 회전시켰을 때 발생하는 원심력을 공에다 전달하는 방법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세게 던진다는 생각을 버리고 몸에 힘을 뺀 채 회전시키는 것이다. 이것을 깨닫고 난 후 나는 매번 공을 던지고 허리가 아파 스프레이 진통제를 뿌리지 않고도 공을 보다 빠르고 멀리 던질 수 있게 되었다. 즉, 가장 가볍게 던진다고 생각하면 가장 세게 던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렇게 글을 쓸 수 있게 된 것도 가장 잘 써야 한다는 생각을 내려놓은 다음부터였던 것 같다. 내 안의 언어들을 민낯으로 꺼내놓아도 문제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나는 비로소 용기를 낼 수 있었다. 내가 작가도 아니고 글을 써서 밥을 벌어먹는 사람도 아닌데 내 글이 조금 부족하다 한들 나에게 어떤 해가 되겠는가. 나에게 필요한 것은 베스트셀러 순위에 오르는 것도 아니고 문단으로부터 호평을 받는 것도 아니다. 그저 내 안의 진실한, 또 나에게 진실된 이야기를 글로 써내는 것일 뿐이다. 아직은 A4 1장 분량의 짧은 글을 쓰는 것도 무척 힘이 들지만, 그래도 지치지 않고 이렇게 조금씩 부지런히 쓰고 있다. 잘은 모르겠지만, 가장 잘 쓰려고 하지 않으면 가장 잘 쓸 수 있는 것이랄까.
그렇다면 우리의 삶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이를테면, 가장 잘 살려고 하지 않으면 가장 잘 살 수 있어, 이렇게 말이다. 삶의 의지만 있다면 너무 잘 살려고 하기보다 몸에 힘을 빼고 적당히 삶 속에 파묻혀서 가벼운 마음을 갖고 사는 것이 더 나은 삶을 사는 방법일 수도 있다. 이것은 귀납적 추론이므로 어디까지나 오류일 가능성이 있지만 뭐 어쩌겠는가, 이렇게 믿고 한 번 살아보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