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축구 #태클
문득 몸이 밧줄에 묶인 것처럼 갑갑하고, 그 위로 벌레가 기어 다니는 것처럼 근질근질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면 태클이 하고 싶어 집니다. 소싸움을 하는 황소처럼 어깨가 부서져라 부딪치고 싶어 집니다. 정작 운동할 때는 그렇게 하기 싫더니, 이제는 못해서 안달입니다. 머리에 지속적으로 충격이 가해지는 미식축구 선수들은 뇌손상으로 인해 감정 조절이 어려워지고, 과다한 성욕을 느끼거나 호흡에 곤란이 오는 등 여러 가지 증세를 겪는다는 연구결과가 기사화된 적이 있습니다. 기사에서처럼 뇌에 손상을 입어 이런 기분을 느끼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분명한 건, 이 모든 것이 4년이라는 세월 동안 미식축구가 저의 몸에 남긴 상흔이라는 것입니다.
태클이 하고 싶은 마음은 다른 어떤 것으로도 풀리지 않습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조깅을 하고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지만, 올가미에 걸려든 것 같은 이 기분은 어김없이 찾아옵니다. 가슴이 터져라 전력질주를 해도, 근육이 터져라 바벨을 들어도 밧줄은 풀리지 않고 벌레들은 도망가지 않습니다. 오히려 어딘가 허전한 마음을 남기기만 합니다. 이 밧줄은 기어이 운동장에 나와 무장을 입고 달려오는 상대의 묵직한 무게를 받아내야지만 풀립니다.
몸을 어딘가에 부딪치는 것은 일상적인 행위가 아닙니다. 미식축구가 아니라면 평생 동안 전혀 경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처음에는 두려운 마음과 피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납니다. 그러나 태클을 하지 않으면 미식축구를 할 수가 없습니다. 미식축구는 블록으로 시작하여 태클로 끝이 납니다. 그래서 선수들은 반복적인 훈련을 통해 태클을 연마합니다. 상대의 무게를 잘 받아내는 훈련을 통해 부딪치는 것을 연습합니다. 이렇게 부딪치는 것에 익숙해지면 아무리 세게 부딪쳐도 그렇게 아프지 않습니다. '부딪침'에 익숙해지기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부딪치고 또 부딪쳐야 합니다. 뒷목이 뻐근하여 옆을 볼 때 상체 전부를 돌려야 한다거나, 잘못 부딪쳐 눈앞에 별이 도는 것을 수시로 보아야 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태클의 인장은 몸속 깊이 각인되어, 그냥 사람을 미식축구인으로 거듭나게 합니다.
태클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내가 있고 상대가 있어야 합니다. 나의 몸과 상대의 몸이 부딪쳐야만 태클은 일어납니다. 상대가 에너지를 나의 몸에 전달해야만 태클할 수 있고, 내가 에너지를 집중할 상대의 몸이 있어야만 태클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태클의 인장은 혼자서 새기는 것이 아닙니다. 미식축구인은 혼자서 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함께 훈련하는 팀 동료들이 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자신의 몸을 기꺼이 던져 에너지를 내어주는 동료들이 있을 때 비로소 미식축구인이 될 수 있습니다. 태클은 나와 상대가 겨루는 진검승부이기도 하지만, 미식축구인들이 나누는 포옹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이따금씩 찾아오는 밧줄과 벌레들은, 몸속에 각인되어 있는 동료들의 환영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몸속 깊이 태클의 인장을 또렷하게 새겨준 동료들의 무게가 그리운 것인가 봅니다. 그 고된 과정을 잘 견뎌낼 수 있도록 온몸으로 자신의 에너지를 나누어준 동료들이 사무치게 그리운 것인가 봅니다. 태클하면 정말 벽에 부딪히는 것 같았던 선배, 무섭게 달려와 태클하던 동기, 일취월장하던 겁 없는 후배까지, 그들이 없었다면 결코 미식축구인이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자꾸 운동장에 기웃거리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일거에 밧줄을 풀고 벌레들을 짓이겨줄 동료들을 만나기 위하여. 동료들과 함께 비겁하고 거칠은 적들에게 정의의 태클을 쫙쫙 뻗기 위하여.
* 미식축구부 그린테러스의 소식지를 위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