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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담 Aug 01. 2020

Still Fighting It

#아빠 #아들

잘 잤니 아들아,


아빠는 인도 구르가온의 호텔방에서 이제는 익숙해진 풍경을 바라보며 적막한 시간을 보내고 있단다. 이전과 조금 다른 점이라면 주말 아침이면 황색 벌판을 가득 메우고 크리켓에 열중하던 군중이 없다는 것인데, 바이러스의 공포가 서린 텅 빈 풍경이 마치 아포칼립스를 세계관으로 하는 영화의 한 장면 같기도 하다. 네 동생이 태어나고 우리 세 식구 모두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느라 바쁘게 지내왔었는데 아빠만 이렇게 홀로 떠나 낯선 적막 속에 있으려니 비현실에 들어와 있는 것만 같아 자꾸 선 자리에서 서성이게 되는구나.


2년 전 너를 두고 인도에 가겠다는 결정을 처음 내렸을 때 고민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었단다. 네가 태어나고 당면한 아빠라는 정체성을 다짐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였었다. 울음을 그치지 않는 너를 안고 여러 밤을 지새우고 나서야 아빠가 된다는 것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지. 세상은 그것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양 무심하여 당혹스러웠지만, 처음 해보는 아빠의 역할을 잘 해내고 싶은 욕심에 나름 애를 썼었다. 엄마를 두고 아빠가 1등이라는 네 얘기를 들었을 때 잘하고 있다는 안도를 넘어 우쭐함을 느낀 적도 있었지. 아빠로서 너의 성장을 거들며 보내온 시간은 아빠 스스로에게도 성장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단다.


인도에 가겠냐는 회사의 제안에 선뜻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은 네 할머니, 할아버지의 살뜰한 보살핌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지만, 첫 6개월이 그다음 1년으로 이어지고, 또 이렇게 떠나와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가늠하기 어려운 오늘의 상황에 이를 줄 알았다면 아마도 그런 결정을 쉽게 내리지는 못했을 것이다. 3개월 만에 중간 귀국하여 부쩍 커버린 너를 다시 만나고 느낀 생경함을 아빠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데, 당시에는 아쉬움의 감정이었다면 이제는 슬픔에 가까워지는 듯하다. 아빠로서 너의 성장에 영향을 준 것이 결과적으로 아빠의 부재로 개괄되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구나.


섬과 같은 아이라는 기질검사 결과를 심리상담사로부터 전해 들었을 때 아빠는 그것이 꼭 아빠의 선택들로 인한 결과인 것만 같아 사무실로 돌아가지 못하고 한참을 서성여야 했다. 불안을 갖고 태어난 너에게 필요한 안정적인 환경을 제공해주지 못했다는 자괴감과 소심한 아빠의 기질을 애초부터 유전적으로 물려준 것이 아닌가 하는 죄책감이 번갈아 들었기 때문이었다. 2년 전 아빠 앞에 놓인 갈림길에서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너와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너의 성장을 더 가까이서 도왔다면. 그랬다면 아이에게서 본인의 모습을 발견하며 미안함을 느끼는 보편적인 부모의 마음을 조금 더 자연스럽게 마주할 수 있었을까.


아빠라는 역할에 실패하지 않기 위해 애쓰던 그때 아빠는 한편으로 초조했었다. 스스로를 규정한다고 굳게 믿었던 모든 것들이, 바뀌어버린 생활 속에 너무나 쉽게 멀어져 버리는 것을 속절없이 지켜봐야 했던 것이다. 아빠는 아빠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몰랐고, 아빠가 되면 아빠가 아닌 아빠는 사라져 버릴까 봐 두려웠던 것 같다. 그래서 너의 성장을 곁에서 지켜보는 기쁨을 포기하고서라도 아빠가 아닌 아빠에게 만회할 기회를 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밥벌이의 숭고함을 무기로 삼아 너희 엄마에게 허락을 받아낸 후 마침내 돌아온 혼자 만의 시공간 속에서 잃어버렸다고 믿었던 그 무언가를 찾아봤지만, 이제와 되돌아보면 역설적으로 아빠로서의 정체성을 더 깊이 받아들이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 삶에 내던져진 우리는 끊임없이 존재의 이유를 증명해야만 하거든. 아빠라고 달리 뾰족한 수가 있는 것은 아니고, 너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빠가 되고 싶다는 욕심까지 생겼으니 온몸으로 삶과 마주하려 한다.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사람에게 고통은 필연이라는데, 성장에는 성장통이 따르기 마련이라는 것을 알기에 오늘의 고통을 딛고 계속 싸워보려고 한다. 아빠의 선택이 너에게 또 우리 가족에게 어떤 의미로 남게 될지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더 긴 시간이 필요할 텐데, 20년쯤 뒤에 마주 앉아 맥주잔을 기울이며 담담히 이야기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사랑을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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