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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담 May 12. 2016

이제 다시 시작이다

#군대 #위문편지

퇴근하고 돌아와 텅 빈 네 방에 들어가 보았다. 울컥하는 마음을 보니,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는 말이 틀리지 않은 모양이다. 남자라면 누구나 한 번은 다녀와야 하는 곳이고, 갈 때가 되어 간 것뿐인데 허전하고 섭섭한 마음을 막을 길이 없다. 떠나기 전에 더 잘 챙겨줄 걸 그랬다. 내가 이 정도인데 할머니는 오죽하랴. 늘 밝았던 너의 성격 탓에 빈자리가 크게만 느껴지는구나.


낯선 환경과 불편한 생활이겠지만 잘 적응하고 있으리라 믿는다. 앞선 이들의 과장 섞인 모험담과는 달리 막상 겪어보면 별 것 아닌 것이 군생활이다. 알아서 잘 하리라 믿지만 인생 선배로서, 또 예비역 병장으로서 너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를 그리움과 함께 몇 자 적어 보낸다.


첫째, 네가 지금 군대에 있어야 하는 까닭을 잘 한번 생각해 보길 바란다. 군대에 간다는 것은 네 스스로에게도 무척 큰일이겠지만, 너 홀로만 겪는 운명이 아니다. 싫든 좋든 너는 네가 지금 밟고 있는 이 땅에서 났고, 이 땅 위에서 살았던 사람들과 살아갈 사람들 사이에 서있다. 살았던 사람들의 어리석음으로 이 땅은 많은 고초를 겪어야 했고, 그 쓰라림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그 어리석음이 아직은 너의 것이 아니겠지만, 이대로라면 곧 너의 것이 될 확률이 높다. 앞으로 살아갈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할 것인가에 대해 네 몫의 책임이 생긴다는 것이다. 너는 입대함으로써 본격적으로 이 운명 공동체에 발을 들여놓았음을 알아야 한다. 군대는 이 땅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를, 때로 너무 직접적으로 가르쳐줄 것이다. 그것을 외면하지 말고 똑바로 보아라. 어떻게 하는 것이 너에게 지워진 몫을 제대로 감당할 수 있는 방법일지 잘 헤아려 보아라.


둘째, 너 자신이 과연 어떠한 사람인지 잘 한번 생각해 보길 바란다. 국방부 시계는 천천히 가기 때문에 네 안을 이리저리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은 충분할 것이다. 너는 지금 그야말로 보잘 것 없는 이등병에 불과하다. 너는 군대에서 걷는 법도, 먹는 법도, 자는 법도 잘 모른다. 너의 보잘 것 없음을 구제해줄 수 있는 것은, 오직 네가 하루하루 쌓아가는 시간밖에 없다. 겪는 순간에는 죽을 만큼 힘들지만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 군대에서의 시간이고, 이 아무것도 아님을 여러 번 겪고 나면 너는 더 이상 보잘 것 없는 사람이 아니게 될 것이다. 흔히 '짬'이라고 하는 군대에서의 시간은 고통스러울 수도 있다. 그러나 고통스러운 시간은 너를 더욱 단단하게 단련시켜 줄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고통을 너의 가장 친한 친구로 삼아라. 지금 너의 보잘 것 없음을 마땅히 알고, 네가 고통을 벗 삼아 시간을 축적하면 어떤 사람이 될 수 있는지를 잘 기억해 놓아라. 그것이 너의 인생에 눈금자가 되어 줄 것이다.


마지막으로, 남들이 꺼려하는 일을 가장 앞장서 하길 바란다. 그것이 앞서 말한 두 가지를 한 번에 충족시키는 가장 쉬운 길이다. 너와 함께 생활하는 사람들을 위한 길이고, 또 너를 위한 길이기도 하다. 공동체가 감당해야 할 일은 언제나 있고 구성원들이 각자의 몫을 나누어 가질 것이다. 이때 손해 본다는 마음은 접어두고 옆에 있는 동료들의 짐을 부지런히 덜어주어라. 너의 주변 사람들에게 이로움을 행하는 것은 곧 이 땅에 살아가는 의미와 다름없고, 그 번거로움을 즐거움으로 승화시켜 나가는 과정은 너를 단련할 수 있는 좋은 훈련이 될 것이다. 늘 남들보다 앞에 서 있어라. 그러면 사람들은 자연스레 너의 뒤를 따를 것이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아니, 이제 진짜 시작이다. 너의 앞길에 하느님의 은총이 가득하길 바란다. 장마가 시작된다는데 걱정이구나. 건강 잘 챙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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