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하는 요리사와 신선한 재료의 콜라보
면요리 덕후인 나는 언젠가 탄수화물을 줄여야 한다는 끔찍한 선고를 받게 된다면
면 대신 빵과 밥을 끊겠다.라는 쓸데없지만 굳은 다짐을 하며 산다.
몇 년 전 방송되었던 '누들로드'를 보며 나만의 누들로드 여행 계획을 세워보곤 했는데
전 세계의 면요리를 맛보겠다는 야심찬 계획이었다.
나는 제주에 이주해 왔으니 지금 할 수 있는 계획을 세워볼까 싶다.
브런치에 제주누들로드라는 테마를 가지고 글을 써보는 것이다.
말은 거창하지만 면을 후루룩 맛보는 일 일 테다.
비가 내리는 차가운 여름 저녁, 파스타가 먹고 싶다.
평소라면 이런 날에는 몸을 데워주는 따뜻한 쌀국수나 매콤한 짬뽕이 땡겼을텐데,
오늘은 우아하게 포크를 살살 돌려서 입에 쏘옥 넣어 먹는 파스타가 필요하다.
무튼 전반적으로 조금씩 화나고 짜증 나고 답답하고 스크래치 난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
파스타가 필요했던 것이다.
급하게 약속을 만들고는 조금 늦어진 퇴근길에 마음이 조급해져서 서둘러 뜨거운 펭귄으로 향했다.
한 달 전쯤 옆동네에서 이곳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이전보다 넓어졌지만 아늑함은 조금 줄었다.
비 오는 월요일 저녁임에도 만석이다.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가 공간 안에 울리는 것이 정신없다.
외로움이 증폭된 오늘은 그저 사람 사는 소리구나 싶다.
조급한 마음에 서둘렀더니 30분 동안 친구를 기다려야 한다.
와인 한 잔과 함께 조용히 내면을 다스리는 시간으로 만들자!
나에게 질문을 던지다 보면 마음이 가라앉아 별 거 아닌 일이 될 테니.
오늘은 그 맛을 하나하나 음미할 수 있는 담백한 오일 파스타!!
친구가 도착한 후 (오일) 연어 파스타와 (크림) 고르곤졸라 안심파스타를 주문했다.
파스타를 주문해도 스프와 애피타이저가 준비된다.
지난번에 방문했던 사진과 비교해 보니 메뉴가 달라졌다.
오늘은 프렌치어니언스프, 저번엔 갈릭치즈스프. 애피타이저는 저번에도 이번에도 문어가 주재료다.
매일 바뀐다는데 자주 가도 식상해지지 않겠다는 안도감이 밀려온다.
+
문어를 보면 스페인 요리인 Pulpo a la Gallega가 먹고 싶어 진다.
삶아서 슬라이스 한 감자 위에 삶은 문어를 올리고, 올리브 오일과 파프리카 파우더로 맛을 낸 익힌 요리이다.
스페인에 4개월 동안 살 때 가장 좋아하던 Tapas 메뉴였다.
바다에 들어갔다 나와서 화이트 와인에 이 요리를 먹을 때면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는데,
제주엔 문어도 많으니 조만간 만들어 봐야겠다.
스페인에서 돌아와서 알게 된 사실은 여름(8월)에 갈리시아에서는 문어 페스티벌이 열린다는 것,
가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먹는 이야기를 하다 보면 언제나 삼천포로 빠져 전혀 다른 요리 이야기로 끝이 나곤 한다.
드디어 메인 메뉴 등장.
고르곤졸라 치즈의 향이 가득하고, 레어로 살짝 익혀진 듯한 안심이 부드러운 크림파스타
오리엔탈 소스로 재운 연어 카르파초를 겉만 살짝 익혀 올린 오일 파스타
결국, 마늘 한조각도 남기지 않고 깨끗이 먹은 맛이다.
그리고 지난번에 맛본 모짜렐라 가지 파스타와 안심스테이크.
특히 스테이크는 참 잘 구워졌다. 미디엄 레어를 잘 잡아냈다!
지금까지 맛 본 뜨거운 펭귄의 메뉴는 모두 참 맛있다.
그리고 달콤달콤 디저트까지,
배뻥. 기분전환 완료!
제주에서의 삶이야 시내를 조금만 빠져나가도 그림 같은 레스토랑과 카페가 풍성하지만
우리네 삶이라는 것이 언제나 그림 같은 여행일 수는 없는 것이니까
집 근처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편하게 다녀갈 수 있는 공간이 소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