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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다 Jul 09. 2015

제주누들로드 2 - 고기국수

배지근헌 고기국수 Top 5!

제주누들로드를 파스타로 시작했다니! 첫 번째는 당연히 고기국수여야 했다.


그렇다. 이 곳은 제주다.

제주에서 고기라 함은 보통 돼지고기를 말한다.

제주도의 향토 음식 중에는 유난히 '돼지'를 주재료로 한 것들이 많다. 고기국수부터 돔베고기, 몸국, 아강발, 돼지고기 육개장, 좁짝빼국...

사실 처음 고기국수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입맛이 당기지 않았다. 모름지기 육수는 소고기로 내는 것이 제 맛 아닌가? 돼지고기 육수라니! 누린내와 비린 잡내가 날 것만 같았다.

부산의 돼지국밥을 먹어봤다면 생각이 달랐을까?

대학교 때 만났던 B군은 고향이 부산이었던 터라 방학 때나 휴가를 나와 부산역에 도착하면 어김없이 돼지국밥집으로 향했었다. 아마 서울로 돌아올 때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부산행 혹은 부산발 KTX를 타고 있는 그와의 통화엔 돼지국밥 예찬이 빠지지 않았지만 나는 단 한번도 그 음식이 먹고 싶지 않았다.

그런가 하면 오사카에서 맛본 돈코츠 라멘과도 매우 닮았는데, 내가 맛본 돈코츠 라멘은 굉장히 느끼하며 짠맛이 가득했던 기억이다. 짠맛에 약한 난 결국 반도 먹지 못하고 면을 남겼다는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다.


제주에서 먹어봐야 할 향토 음식에 늘 손꼽히는 고기국수는 제주의 잔치국수다. (나의 잔치국수는 이 섬에서는 멸치국수라고 부른다. 우리 집만 멸치국수를 잔치국수라고 부른 건가?)

돼지를 삶아 만든 육수에 중면을 넣고, 돼지 수육과 야채 고명을 올린 요리이다. 제주 돼지는 육질도 뛰어나고 비계의 양도 조화로운데다가 그냥 삶아도 누린내가 나지 않아 고기국수를 만들기에 적합하다고 한다.

다행스럽게도 고기국수는 내 입에 잘 맞았다. 누린내나 잡내도 전혀 나지 않으며, 맛이 조화롭고 풍부하다. 등산 후 고기국수를 한 그릇 먹고 나면, 제주 방언인 '배지근허다!'라는 말이 절로 나올 지경이다.

'국수'라는 음식이 가진 소박함과 친숙함 덕분에 친구나 가족이 오면 부담 없이 고기국수를 소개하여 줄 수 있었다.

지금까지 20곳이 넘는 식당에서 고기국수를 먹었다.  그중에는 관광객이 열광하는 맛집도 있었으며, 무려 수요미식회에 소개된 곳, 그리고 제주 토박이인 회사 선배들이 추천하는 곳도 있었다. 아마 앞으로도 계속 고기국수를 맛보러 다니게 되어 순위가 바뀔 수도 있겠지만, 지금 이 순간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고기국수 식당 다섯 곳을 소개해 보고자 한다.


#1. 서귀포 '고향식당'

나의 첫 번째 고기국수 식당이다. 35일 동안 게스트하우스에 머물며 잉여놀이를 하고 있을 때, 고기국수를 못 먹어봤다는 나의 말에 같이 지내던 언니가 데려가 줬다. 서귀포 시내의 유명유명하다는 오는정김밥 옆이다.

아빠 고향 생각나게 하는(내 고향은 서울이라) 간판의 '포장마차'글씨체는 흡사 70년대 영화를 방불케 했다.

주인 할머니는 제주도분이 아니고, 전라도 분인 듯 싶다. 엄마의 김치 맛과 닮은 젓갈의 깊은 맛을 가진 전라도식 김치가 나왔기 때문이다. 그 맛에 반해서 세 번이나 가져다 먹었다.

고향생각의 고기국수에는 그 흔한 익은 당근채 고명도 없다. 정말 말 그대로 고기국수이다.

우리가 김치를 두 번째 채웠을 때 주인 할머니께서 들어오셨다. 아, 내 국수는 잠시 가게를 봐주고 계시던 이웃할망의 작품이었던 것이다. 어쩐지 면이 너무 삶아졌다 했다. 혹시 원래는 고명이 있지 않을까 하는 의심도 싹트기 시작했다.

그래도 잡내 하나 없이 담백한 육수에 감탄하고 또 감탄했다. 다만 다음번에는 진짜 주인 할머니가 말아주시는 고기국수를 맛보고 싶다.


#2. 신제주 '올래국수'

신제주 골목길에 위치한 올래국수. 이 동네는 주차가 가장 큰 고민거리이다. 온 동네를 돌고 돌아 길가에 아슬아슬 차를 세워두고 와보니 그새 줄이 더 길게 늘어섰다. 제주에 있는 친구와 함께였다면 긴 줄을 기다려서까지 먹지 않았을 테지만, 서울에서 오자마자 올래국수 노래를 부르는 친구를 위한 기다림이니까 묵묵히 기다리기로 했다.

올래국수의 육수는 다른 집과는 다르다. 맑아 보이는 것이 꼭 갈비탕을 위한 육수 같기도 하다. 담백하고 풍성한 맛보다는 깔끔한 육수의 맛을 자랑한다. 숭덩숭덩 썰어진 고기 모양에 어떻게 씹어먹지라는 고민은 넣어두기 바란다. 비법은 알 수 없지만 아주 부드럽게 삶아졌기 때문이다.


#3. 구제주 국수문화거리 '자매국수'

삼대국수, 올래국수와 함께 제주 3대 고기국수집이라는 자매국수. 사진이 없다. 찾을 수가 없다.

국수문화거리에서 단연 가장 긴 대기줄을 자랑하는 곳이다. 심지어 새벽에 가도 긴 줄을 기다려야 한다.

어느 운수 좋은 날, 새벽 1시가 넘어서 친구와 방문했더니 줄이 없다!! 예이!!! 바로 입장이다. 언제 먹어도 맛있는 맛이다. 다만 3-40분을 기다렸다 맛보기에는 비슷한 수준의 맛을 가진 바로 옆 국수마당을 가겠다.  

굳이 차이를 언급하자면 자매국수가 조금 더 오밀조밀한 맛이 난달까?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면 자매국수 추천!


#4. 구제주 국수문화거리 '국수마당'

자매국수 바로 옆 건물에 있는 국수마당. 자매국수의 10배는 되보임직한 공간을 가지고 있어, 언제든 기다리지 않고 식사를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가족들이나 친구들이 와서 올래국수나 자매국수를 가자고 조르는 것이 아닌 이상 국수마당 행이다.

동생이 군 입대를 앞두고 왔던 제주 여행에서 이 곳의 고기국수를 먹고 감탄에 감탄을 거듭하더니 앞으로 2년간 먹을 수 없다는 사실에  괴로워하다가 결국 마지막 날 공항 가기 전에 한 그릇을 더 먹고 갔다.

평범한 고기국수 맛이지만  '평범'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말이다.


#5. 중문 '국수바다'

중문에 각종 국수를 파는 국수바다. 고기국수부터 성게국수, 회국수, 비빔국수에 밀면까지 있다.

전체적으로 맛있는 편이다. 고기국수도 고기국수지만 성게국수도 추천한다. 고백하자면 중문에서는 국수바다에서만 먹어봤다. 그래도 제주시와 비교했을 때 괜찮다! 가끔 점심 회식으로 찾는 곳이니 회사 사람들 입맛에도 잘 맞나 보다. (회국수는 비추천)


+

잠시 또 곁길로 빠져보자면 '고추'이야기를 안 할 수 없다.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제주의 일반 식당에서는 대부분 풋고추가 반찬으로 등장한다. 매운 것을 잘 못 먹지만, 조금만 매운 풋고추를 먹는 것은 좋아한다. 다만, 제주에서 나오는 대부분의 고추는 청양고추인지 땡초인지 엄청나게 맵다. 오이고추 코스프레를 하는 큰 고추들도 매운데 작은 고추가 매운 것보다 더하다. 게다가 마늘도 혀가 아릴 정도의 톡 쏘는 맛이 있으니 매운 음식을 못 먹는 사람의 주의가 필요하다.


고기국수는 1900년대 초반, 건면이 탄생하면서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박정희 정권의 '가정의례 간소화 정책'으로 돼지를 잡는 풍속이 금지되어 없어질뻔한 음식이다. 맙소사!! 그러다 IMF 때 추억의 음식으로 컴백했는데, IMF 덕분에 고기국수가  컴백했다고 볼 수는 없지만 면덕후인 나에게는 모든 일에는 일장일단이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구제주라고 부르는 구도심에는 국수문화거리가 조성되어 있다. 매월 11일에는 국수데이라 500원 할인도 된다.

보통 고기국수는 5,000원 ~ 7,000원인데, 할인까지 받으면 이런 착한 가격이 없다. 그러고 보니 이번 주 토요일이  11일이다. 토요일 점심은 고기국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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