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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다 Jul 17. 2015

제주누들로드 3 - 산방식당

원조보다 맛있는 제주식 밀면

몇 해전 대학교 동기 넷이서 부산 여행을 했었다.

우리 중에서는 처음으로 결혼을 앞둔 친구를 핑계로 떠난 여행이었다.

여자 넷이서 하는 여행이어서 그랬는지 기승전 맛집이었다.

차이나타운의 궈바로우, PIFF(그때는 BIFF가 아니었지) 광장의 씨앗호떡, 냉채족발, 자갈치 시장의 회 등등

그리고 여행의 마지막 날, 해운대에서 놀다가 급 출출해진 배를 달래기 위해 'OO밀면'에 들어갔다.

부산 밀면은 꽤나 유명한 음식이니 믿고 먹자라는 마음 반, 어디선가 상호명을 들어본 듯하여 믿음직스러운 마음 반이었다. 그런데 이 애매한 맛은 뭐지? 담백함과는 거리가 먼 밍밍한 맛과 밀면 위에 올려진 고기에서 느껴지는 비릿함. 안 좋은 기억은 빨리 잊는 편인 내 기억력 덕분에 자세한 맛을 기억하진 않지만 밀면은 나에게 먹지 말아야 할 면 요리로 새겨졌다.


모슬포 바람 - 정진규

지난 봄 제주 가서 보고 온 노오란 유채꽃들은 모로 누워 일어날 줄 몰랐다 노오랗게 기절해 있었다 모슬포의 유채꽃들은 그랬다 모슬포 바람 탓이었다 모슬포의 바람은 어찌나 빠른지 정강이도 무릎도 발바닥도 없이 달려만 가고 있었다 아랫도리가 없어진지가 사뭇 오래된 눈치였다 염치가 없었다 다만, 이따금씩이 아니라 연이어 귓쌈만 세차게 후려쳤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을까 알 수가 없었다 삼악산 민둥산엔 네 발굽 땅 속 깊게 묻은 채 떨고 섰는 오직 비루먹은 조랑말 한 마리, 그도 무엇을 잘못했는지 연이어 귓쌈만 세차게 얻어맞고 있었다 추사 선생의 대정마을로 내려와 보니 입 굳게 다문 채 제주 사람들은 그 바람의 모진 내력들을 속속들이 다 알고 있는 눈치였다


제주의 산방식당은 산방산 앞에 있는 게 아니고 모슬포라는 동네에 있다.

제주에서도 바람이 세기로 유명한데 모진 바람 탓에 농사도 짓기 어려운 동네라고 한다. 그 바람은 정진규 시인의 '모슬포 바람'에서도 느낄 수 있다. 겨울이면 최남단방어축제가 열리고, 가파도와 마라도로 가는 배를 탈 수 있는 곳이어서 외지인에게도 친근하게 느껴진다.

이미 '밀면'이라는 요리에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던 나는 모슬포와 가까운 동네에서 장기 여행자로 머물러 있는 동안에도 '산방식당'을 의식적으로 찾지 않았다. 그러다 이주를 결심하고 제주에 돌아오자마자 '산방식당'을 가게 되었다. 한 달 동안 게스트하우스에서 같이 지내며 정이 쌓인 언니가 강력하게 추천했기 때문이었다.


점심시간이 지나고 3시쯤 한가한 시간에 찾았는데도 대기를 해야 한다. 맙소사.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점심시간이 지나서 대기시간도 짧다는 것이다.

밀면 전문집 답게 메뉴는 물밀면과 비빔밀면 그리고 수육 세 가지다! 골고루 하나씩 주문!

제주도의 수육은 '돔베고기'라고 부르는데, 산방식당은 그냥 수육이라고 부른다. '도마'(=돔베)에 나오지 않고, 접시에 나오기 때문이겠지?


반찬은 단출하면서도 알차다. 김치 두 종류와 고추장, 겨자소스. 저 무김치 엄청 맛있다.

오동통한 면을 후루룩 입에 넣어본다. 앗! 부산의 밀면 맛과 다르다! 맛있다!! 탱글탱글한 면과 매콤 달콤한 양념! 면은 직접 뽑아서 쓴다고 하더니 과연 맛이 다르다!

그리고 하이라이트는 입에서 살살 녹는 수육! 역시 제주돼지라 비계가 많아도 느끼하지 않다! 비빔밀면에 얹어서 한입에 쏙 넣으면 끝내준다!!!!


멀고 대기시간이 길었던 모슬포 본점이 가기 부담스럽다면 본점 싸장님의 아들이 가업을 이어 오픈한 성안(=제주시내)에 생긴 제주점에 가보자! 주거지역에 있어 붐비지 않으면서도 맛은 그대로다! 집에서 가까워서 종종 걸어서 찾곤 한다.

밀면은 제주에서 먹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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