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다 Sep 29. 2015

서울나들이가 즐거운 제주살이

가족과 함께하는 서울나들이  

서울에 있을 때는 좀처럼 서울시내로 가족과 함께 나가는 일이 드물었다. 가족과 함께하는 서울나들이가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다섯 명 중 한 명은 매일 보는 일상일 텐데 말이다.

아마 우리 세 남매가 성인이 된 이후에 다섯 식구가 모두 함께 사대문 안으로 놀러 간 것은 5년 전쯤 어버이날을 맞아 다 같이 점심을 먹으러 삼청동에 간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을 것이다. 그때 부모님은 왠지 들떠 계셨다. "여기가 엄마 처녀 때...", "아빠가 OO에서 일할 때 여기를..." 하며 시작되는 청년엄마, 청년아빠의 이야기들이 참 좋았다.


이번 추석에도 서울나들이를 하기로 했다. 다 같이 버스를 타고 한강을 건너는 중에 "한강을 참 오랜만에 건넌다. 엄마 처녀 때는 한강을 건너 내려올 일이 없었는데 말이야"라고 말씀하신다. 드디어 부모님이 그 빛나던 청년의 때를 떠올리시는구나! 싶어 빙긋이 웃었다. 기억 저편에서 일평생 한라산을 넘어 서귀포에 가보신적이 없다는 이야기를 하시던 병원 동기 할망의 이야기가 문득 떠올랐다. 중문으로 출근을 하다가 교통사고가 났다는 내 이야기를 듣고 나신 후 하신 말씀이었다. 삶이 얼마나 바쁘고 어려우셨으면 제주시에서 한 시간도 안 걸리는 서귀포를 가보지 못하셨을까 싶은 안타까움이 밀려왔었는데, 바로 우리 엄마도 그렇게 살고 계신 것이 아닌가 싶어 순간 코 끝이 지잉 울린다.


우리의 서울나들이는 프레스센터에서 시작했다. 청계천을 지나 경복궁에 가기 위해 광화문을 향했다. 서울나들이가 끝날 때쯤 알게 된 것이 아빠는 한 번도 청계천을 걸어보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내심 청계천을 걷고 싶으셨는데 무심히 지나치는 딸들이  귀찮아할까 봐 그냥 지나치신 모양이었다. 다음엔 아빠에게 청계천 데이트를 신청해야겠다.


광화문을 향하는 길에 서점을 들렸다. 대형서점에서 책을 만져본지도 참 오랜만이다. 책의 향기를 맡아보고, 직접 만져도 보고, 우연히 펼친 곳에서 눈을 잡는 글을 마주하게 되는 기분. 이런 감각의 기억들 때문에 편하고 저렴한 인터넷 서점의 활개에도 우리는 서점을 찾는 것이 아닐까?


서점에서 나와 경복궁으로 들어가기 전의 작은 공원에서 집에서 싸온 김밥과 과일들로 점심을 먹는다. 엄마의 다른 음식들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엄마김밥'은 누구에게나 조금 더 특별하다. 초등학교 소풍날 아침 엄마가 김밥을 싸기 위해 고슬고슬한 밥 위에 참기름을 뿌릴 때 온 집안으로 스며들던 그 냄새를 어떻게 잊을 수 있겠나.


그렇게 '엄마김밥'으로 점심식사를 마치고 광화문을 통해 경복궁을 향한다. 부모님 손잡고 고궁을 찾은 어린이뿐만 아니라 친구와 함께, 연인과 함께 한복을 입고 온 학생들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일본의 교토 같은 곳을 가면 젊은이들이 기모노를 입고 여행하는 것이 참 예뻐 보였는데 한복을 입고 있는 학생들을 보니 괜히 뿌듯하고 반가운 마음이 몽글몽글 피어오른다.

갑자기 나도 예쁜 한복 하나 맞춰 입고 싶어진다. 초등학교를 들어갈 즈음 할머니 댁에 가있던 나는 은근하게 할머니를 졸라 읍내에 나가 예쁜 한복을 맞춰 입고는 일주일 내내 벗지 않았었다. 이제는 결혼을 해야 한복입을 일이 생기려나?


고즈넉한 고궁을 기대하고 흥례문 앞까지 왔으나 저 멀리 가득 찬 인파와 함께 매표소 앞에 길게 늘어진 줄을 보니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사람 많은 곳을 별로 좋아하지 않거니와 그런 곳에서는 쉽게 피로를 느끼는데 제주에 살게 되면서 조금 더 해졌다. 미련 없이 포기하고 돌아서자.



그렇다면 경복궁 옆에 개관한 서울 국립현대미술관 MMCA! 그동안 부족했던 문화생활을 즐기러 가보자. 가는 길에는 이름 모를 들꽃도 예뻐 보인다. 추석 연휴를 맞아 무료 개관을 진행하고 있어서인지 생각보다 사람이 많다.


어렵기만 했던 미술, 그중에서도 현대미술은 도무지 어떻게 관람해야 할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었다. 일을 하며 미술 작가들과 함께하는 프로젝트도 생기고, 미술을 전공한 친구들이 생기고, 게다가 제주에 살면서 이런 저런 생각이 많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아리송한 현대미술.

좀처럼 미술관에 올 일이 없으신 부모님과 함께 작품을 보는데 부모님이 작품을 받아들이는 깊이가 남다르다. 작가의 의도야 부모님도 나도 제대로 알 수 없지만 부모님이 생각하는 작품의 이야기에 많은 공감이 되었다. 역시 살아온 삶의 시간에서 나오는 지혜와 그 깊이는 대단한 것이다.


현대미술관 마당에 현대카드 젊은 건축가 프로그램으로 전시된 '지붕감각'. 저 안에 들어가서 쉬기도 하고 이야기도 하며, 부모님 사진도 찍어 드렸다.

바로 옆에서는 젊은 부부가 자녀들 사진을 찍어주기 위해 이런 저런 포즈를 요구하고 있는데, 부모님께 포즈를 바라고 있는 우리를 보니 새삼 세월이 느껴진다. 어느새 피사체에서 사진사가 되어 부모님의 모습을 남기고 싶어 한다니.

그리운 것, 기억하고 싶은 단어나 문구를 남기는 벽이라는 작품에 오늘 쓰고 싶은 단어는 '가족'이다.



도시로 돌아가고 싶어 진 적 있어?

물론 있지~

잡지에서 맛있어 보이는 음식점을 발견했을 때나
밤늦게까지 영업하는 책방이 그리워질 때.
백화점 지하를 하릴없이 돌아다니고 싶어 질 때도 있고
주변 사람들이 귀찮은 날도 있어.
그리고 또 애인을 찾고 싶지만...

주말엔 숲으로-마스다 미리

매거진의 이전글 고향방문이 들뜨는 제주살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