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다 Mar 17. 2020

월요일의 가자미쑥국

봄 향기 가득한 쑥국

3월 2일 월요일, 아침을 깨우는 조용한 알람 소리와 함께 새로운 3월이 시작됐다.

16년 간의 학생 시절이 남긴 3월의 설렘과 13년 간의 직장생활이 만들어낸 월요병이 교차하는 아침. 

짧지도 길지도 않았던 10개월의 전업주부 생활을 마치고 다시 직장에 출근하기 시작했다. 머리는 빠르게 적응해 나갔지만 몸은 쉽사리 따라주지 않았다. 코로나로 마비된 업무 때문에 실상 하는 일이 거의 없음에도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녹초가 되어 10시 전에 잠들기를 반복했고, 2주가 지나서야 몸은 리듬을 찾기 시작했다.

그 사이 봄은 한 걸음 더 가까워져 있었다.


대한민국 최남단 서귀포에는 그 봄이 조금 더 일찍 당도했다. 이미 매화가 피고 지고, 유채꽃이 만발해 있다.

때마침 주말에 열리는 오일장에 마스크를 쓰고 다녀왔다. 시장 곳곳에 무심하게 놓인 손세정제와 사람들이 쓰고 있는 마스크가 코로나19의 팬데믹을 잊지 말라고 외치는 듯했지만 상인들은 조금 더 활기차 보였고 장을 보러 온 사람들의 눈빛도 반짝거렸다.



오늘은 몇 주째 본가에 가지 못하고 근무지에 체류 중인 여동생에게 몇 가지 반찬을 만들어 보낼 요량으로 나왔지만 시장을 찬찬히 돌다 보니 파릇파릇한 채소들에 욕심이 절로 난다. 시설재배 기술이 좋아져 겨울에도 푸른 채소들을 먹을 수 있다지만 제철 재료에 비할바가 되지 못한다. 그러니 싹이 돋고 꽃이 피는 봄에는 그 봄의 향기를 가득 머금은 봄나물이 빠질 수가 없다. 원래 계획했던 목록에서 냉이와 달래, 쑥, 브로콜리를 추가로 구입했다. 장바구니를 가득 채워 돌아오는 길이 뿌듯했다.


집에 오는 길에 쑥을 샀으니 도다리쑥국을 끓여먹자는 남편. 왜 때문인지 한껏 신이 난 눈치다. 나는 쑥을 넣은 된장국이나 끓일 생각이었는데 도다리쑥국이라니!? 그것은 내가 한 번도 먹어보지 못했고, 시도해본 적도 없는, TV 속에나 존재하던 그런 음식이다.

나는 30대 초반까지도 아동식과 서양식의 조화로운 입맛을 고수했기에 깊은 한식의 맛을 깨우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지만 최근 남편을 통해 맛보게 된 '갈치속젓'을 통해 나의 미각 세계를 넓혀주어 고마움을 느끼고 있던 터라 어쩌면 이것도 꽤 성공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머리를 지배했다.


그리고 화요일 오후, 남편은 그날이 오늘이라고 했다.

우리는 마트에 들려 도다리를 찾았으나 신선함이 생명인 그 생선이 제주, 그것도 서귀포의 대형마트에 있을 리 만무했다. 도다리는 제주 인근에서 겨울을 나지만 봄이 되면 진해나 삼천포 같은 북쪽으로 올라간다고 한다. 다행히 비슷하게 생긴 해동 가자미가 눈에 띄었다. 도다리도 가자미의 일종으로 '문치가자미'라는 이름도 가지고 있다. 꿩 대신 닭이라고 도다리 사촌 가자미를 장바구니에 넣었다. 나의 첫 도다리쑥국은 그렇게 해동 가자미 쑥국으로 대체되었다.


집에 와서 도다리쑥국의 레시피를 몇 가지 찾아보고는 어디서 온 근자감인지 도다리쑥국 맛도 모르고 생선국도 끓여보지 않는 나는 그냥 손 가는 대로 끓여보기로 한다.


무와 멸치, 디포리, 다시마를 듬뿍 넣어 육수를 만드는 동안 손질된 가자미는 깨끗한 물에 씻어 쌀뜨물에 담가 둔다. 해동 생선이라 혹시 모를 비린내를 제거하고 싶었다.

국에 들어가 생선살이 풀어지지 않도록 소금을 살살 뿌려서 육질이 단단해지도록 재워둔다.

생선을 토막 내야 하는데 왜 생선가게의 도마가 그리 두꺼운지, 칼은 또 왜 그리 큰지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 주방용 식칼로 가자미의 굵은 뼈를 자르기가 쉽지 않았다.

육수에 된장과 고춧가루, 들깨가루를 넣고 토막 낸 가자미와 다진 마늘을 넣어 센 불에 끓여준다.

3~5분이 지나고 청양고추와 대파, 쑥을 듬뿍 넣어 2-3분 더 끓여주면 완성!!

떨리는 마음으로 상을 차려내고, 한 숟가락 떠먹는 순간!

아, 맛있다.

쑥의 향이 가자미와 만나 더 진하고 깊은 맛을 전해준다. 슬쩍 남편을 쳐다보니 언제나처럼 엄지를 들고 있다. 다행히 그 맛이 맞나 보다.




이렇게 집밥력이 또 한 번 올랐다.


'먹기 위해 사는' 부류에게는 계절이 바뀌는 것은 곧 새로운 계절의 먹거리로 식탁을 채울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각의 세계는 점점 넓어지고 나의 집밥력도 점점 상승한다. 

나와 같은 부류인 남편이 즐겨보는 '한국기행 - 봄의 맛'편에 나온 '도다리쑥국'을 아련하게 보던 남편!

내년 봄에는 신선한 도다리를 공수해서 제대로 된 남해의 봄 맛을 느껴봅시다. 

매거진의 이전글 월요일의 달래장과 콩나물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