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는 갑자기 둘이서 색깔 이야기에 꽂혀서 숨이 넘어가게 웃으며 이야기 하고 있기래 은근슬쩍 나도 끼워달라는 의사 표시를 했다. 아이들은 얼굴색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할머니는 노란 색을 섞어놓은 하얀색, 엄마는 핑크색을 섞어놓은 하얀색 이란다. 이모는 노란색 그리고 쭉~이어지는 얼굴색 이야기. 가만 듣고 있다가 아빠얼굴색이 빠졌기에 아빠색깔은? 이라고 하니 필터링이라는 과정이 없는 아이들이 내뱉은 한마디가 하루 종일 생각이 나서 혼났다. “우리아빠는 빨간색” 원래도 붉은 편이긴 하지만 한잔이 들어가는 순간 정말 말도 못하게 빨개지는 특징을 저렇게 말할 줄이야. 며칠 뒤 이런저런 상황을 이야기 해주고 당신 얼굴 빨간색 이래 라고 했더니 복이아빠도 빵 터졌다. 둘이서 한참을 낄낄 거리다가 놀고 있는 아이를 불렀다. 아빠 앞에서 한 번 더 확인 시켜주기 위해 “아빠는 무슨 색?” 이라고 물었다. 여전히 대답은 “빨간색!” 이었다. 며칠이 지나도 아이의 생각은 명확했다.
만약 내가 아이들이 숨도 못 쉬게 웃어대는 대화에 끼지 않았다면 이런 사실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아이들의 상상속의 생각들이 얼마나 무궁무진한지 알아야 한다. 상상력을 함께 공감 해 주는 게 엄마의 역할이다. 워킹맘인 나는 다른 엄마들보다는 우리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적기 때문에 더욱더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늘리려고 노력한다. 직접 놀아주는 것은 한계가 있기에 자꾸 대화를 시도한다. 예를 들어 설거지는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집안일이 아니다. 그럴 때 아이가 달려온다면 옆에서 종알거리는 소리를 들어준다. 물론 칼이나 가위 같은 위험한 것들이 많을 때는 싱크대 주변은 오지 못하게 한다. 빨래를 널 때 또한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지 않다. 은근히 아이들에게 도와달라고 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아이들에게 용기를 준다. 우와 잘한다. 축복이가 도와주니까 더 빨리 끝낼 수 있을 것 같아, 라면서 계속 이야기를 해준다. 그러면 아이는 의기양양해져서 자기가 어린이집에서 잘해서 칭찬받았던 이야기를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내가 해주어야 할 것은 열심히 빨래를 널면서 대단한걸? 이란 소리만 외치면 된다. 어렵지 않다. 들어주고 공감해줄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지금부터라도 스마트폰을 잠시 내려놓고, 텔레비전을 끄고 아이와 함께 대화해보자. 워킹맘의 일분일초는 정말 소중하다. 아이들의 일분일초는 더 소중하다. 소중한 시간을 우리 아이들과 대화하는데 조금이라도 쓴다면 그 시간은 분명 값진 시간이 된다.
요즘 시대의 아이들이 30% 이상이나 언어발달에 문제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특히 초등학교 저학년에서는 언어 발달의 지체 현상이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이 진단은 독일 소아청소년과 의사, 교육학자, 치료사들의 의견이다. 만 3~4세 유아는 20%가 언어 치료를 필요로 하는데 의학적 이유 없이 언어 발달의 지체를 보인다고 한다. 마인츠대학의 하이네만 교수는 그 이유가 가정에 있다고 말한다. 미디어가 발달하면서 아이들은 책을 읽는 시간이 줄어들고 어른들끼리도 말을 너무 적게 하는 ‘침묵하는 가정’이 늘고 있다고 말한다.
어린이집에서 보내준 부모 잡지에서 보게 된 이야기 인데 정말 공감한다. 요즘은 어딜 가나 아이들에겐 미디어가 노출되어 있다. 나 또한 음식점에 가서 아이들이 놀 수 있는 놀이시설이 없다면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본인들 패드나 스마트폰을 보는 것을 흔쾌히 허락해 준다. 집에서도 열심히 놀고 다 씻고 난후 자기 전 10분 정도 스마트폰을 보겠다고 하면 그러라고 한다.
다행인건 우리 아이들은 참 수다스럽다는 점이다. 유튜브 보다는 엄마 아빠랑 말하는 것을 좋아한다. 할 말이 왜 그리도 많은지 조금은 조용해줬으면 싶은데 쪼르르 달려와서 폭풍 수다를 늘어놓고 들어가기를 반복한다. 이런 과정들이 굉장히 귀찮았다. 연구결과를 보고 조금씩 바꿔 가려고 노력했다.
집에서 아이들 소리가 끊임없이 나야 하는데 요즘엔 정말 텔레비전이나 유튜브 소리만 하루 종일 나는 경우가 허다했다. 내가 수다스러운 편이 아니기에 집은 정말 조용한 편이였다. 연구 결과를 접하고 나서부터는 되도록 텔레비전을 켜지 않았다. 평소에도 식사시간에는 텔레비전을 켜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준비할게 많은 아침식사 시간에는 딩동댕유치원을 항상 보던 아이들인데 그마저도 단호하게 못 보게 했다. 처음엔 입을 삐죽이고 눈가가 빨개지도록 눈물을 참았다. 처음에는 지독히도 힘들었다. 익숙한 환경을 바꾸기란 나도 아이들도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자꾸 대화를 유도해 내고 아이들 관심사에 대해 먼저 질문을 해주기를 반복했다. 처음엔 낯설어 하던 아이들도 지금은 아침 시간에 텔레비전을 켜지 않는 것에 대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내가 주제를 던져주던지 관심사에 대해서 물어봤는데 이제는 본인들이 알아서 이야기하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한다. 그 덕분인지 막내의 생활기록부에 항상 자기가 전달하고자 하는 것을 명확히 전달하지 못한다고 적혀 왔었다. 이번 해에는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의사표현을 정확히 한다고 적어주셨다. 이 결과가 꾸준히 노력했던 결과물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분명히 쑥스러움을 많이 타고 몸으로 표현하던 아이였었다. 엄마가 들어주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알아챘는지 엄청난 수다쟁이로 등극하셨다. 언니한테도 말로는 항상 지는 바람에 화를 이기지 못해 무조건 때리는 것으로 감정 표현을 하던 것을 이제는 말대꾸로 받아치거나 나에게 이르는 방법을 사용한다.
엄마와의 대화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되었다. 예전에는 등 하원 할 때 차안에서 항상 가요를 틀었다. 어느 날 휴대폰과 스피커를 연결하는 선이 고장 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조용한 상태에서 등 하원을 했었다. 그때 우리아이들의 수다본능이 깨어나기 시작했다. 스피커 선이 고장 난 게 천만다행이지 아니었으면 우리 아이들의 생각을 들어주는 시간이 30분이나 뺏긴 체로 살아갈 뻔 했다. 처음엔 또 사야 된다면서 짜증이 났었는데 지금은 정말 잘된 일 이라며 감사하고 있다. 아이들의 언어는 끝이 없다. 계속 듣다보면 재밌다. 가끔 알 수 없는 언어로 이야기를 하는 바람에 나는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지만 자매는 서로의 말을 귀신같이 알아듣고 신나서 꺄르르 넘어간다. 말하기를 즐겨하는 사람이 아니 여서 인지 듣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는데 요즘에는 아이들이 더 많은 말을 해주었으면 좋겠다. 고급 라디오DJ를 항상 데리고 다니는 기분이다. 오늘은 오랜만에 아이들과 색깔이야기를 해보아야겠다. 여전히 아빠의 색은 빨간색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