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의 아이들은 혼자 있는 시간이 다른 아이들과 다르게 정말 많다.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이 다 떠나가는 시간 4시를 넘기면 6시까지 남아있는 아이들 몇 명과 논다. 6시에 그 아이들마저도 집에가 버리면 우리아이들 같이 시간연장형 혜택을 받는 아이들 3~5명이서 논다. 부모님들의 퇴근 시간이 다 다르기 때문에 어쩔 때는 우리 아이들만 남아 있는 경우도 생긴다. 데리러 갔을 때 졸린 눈을 비비도 나오면 안쓰럽기도 하다. 학교에 다니면 더할 것이다. 아침에 나보다 일찍 나가서 학교 정규수업이 끝나면 점심시간인데 그때부터 아이들을 학원으로 뺑뺑이 돌려야 되나 별별 생각들이 다 든다. 사교육을 줄이라는 말은 워킹 맘들에게 씨알도 안 먹힐 이야기다. 아이가 학교에서 나와야 되는 시간이 늦어도 1시정도 인데 그럼 그때부터 아이들이 집에 혼자 있어야 된다. 친구랑 노는 것도 한계가 있지 말도 안 된다. 방과 후 수업을 한다 하더라도 오후 3시 4시를 넘기지 않는다. 결론은 학원밖에 답이 없다는 말이 맞다. 나는 그 말에 적극 찬성을 할 수 밖에 없는 ‘엄마’이자 ‘워킹맘’이다.
나는 그래서 요즘 아이들에게 끊임없이 무엇이 하고 싶은지 물어본다. 엄마가 없는 시간동안 그래도 자신들이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 피아노가 좋니 발레가 좋니 미술이 좋니 태권도가 좋니 ..아마 학교 입학하기 전 까지 계속 물어 볼 것 같다. 워킹맘 아이들은 혼자서도 할 줄 아는 게 많아야 된다. 어린이집에서는 엄마들의 출근 시간부터 퇴근 시간까지 보육을 해 주지만 학교는 체계가 아예 딴판이다.
나는 지금부터 혼자하기 연습을 한다. 아이들은 이제 집에 들어오면 옷 벗고 손, 발 씻기 는 완벽 클리어 해나가는 중이다. 옷도 척척 빨래 통에 가져다 넣는다. 처음에는 욕실에 들어가서 넘어지지 않을까 노심초사 했는데 내가 씻기는 것보다 더 깨끗하게 잘 씻는다. 스스로 했다는 성취감을 만끽하도록 칭찬을 쉴 틈 없이 해준다. 칭찬을 좀 과하게 받은 날은 아이가 욕실에서 나올 생각을 안 해서 아빠가 들고 나와야 끝이 난다. 식사를 하고 나면 식기 가져다 놓는 것은 스스로 먹을 수 있는 2살 3살부터 시키던 것이라 지금은 스스로 한다. 다른 집 가서 우리 아이들이 잘먹었습니다 라고 외치고 식기를 가져다 놓는 모습에 나는 어깨가 으쓱해진다. 하나 같이 아이들이 벌써 저렇게 해요? 라고 물어보기에 처음에는 당황했다. 항상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였던가보다. 그렇게 습관이 들여진 우리아이들 때문에 내 기가 산다. 아이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리스트를 하나씩 늘려나갈 예정이다.
아이들의 홀로 서기를 도와주면서 느끼는 게 많다. 나만의 주관으로 철저하게 준비된 엄마만이 아이들이 홀로 설 수 있게끔 도와줄 수 있다. 엄마가 준비 되어 있어야 아이들이 시작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항상 한다. 주변에서 너무 이른 거 아니냐고 면박을 주기도 한다. 아니다. 내 생각은 확고하다.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들이닥치는 세상은 아이들에게도 굉장히 힘든 문제가 된다. 워킹맘의 아이라면 조금이라도 더 빨리 혼자서는 준비를 해야 된다. 멋모르고 있다가 갑자기 학교를 가야되고 방학이라는 게 닥쳐올 때 준비되지 않은 워킹맘들이 퇴사하는 경우를 가장 많이 봐왔다. 내 직업의 좋은 점이 별별 사람들을 다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양한 직군의 사람, 유아부터 고령노인들까지 그들의 이야기를 하나씩 하나씩 듣다보면 워킹맘의 시련은 굉장하다. 우리아이들에게도 철저하게 준비시키고 스스로 이겨내는 힘을 기르지 않으면 워킹맘이나 아이나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지금 늦었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다. 지금부터 홀로 서기 준비를 하나씩 해 나가면된다.
내가 5살 정도 였던 것 같다. 갑자기 엄마가 이제부터 혼자 자야 된다는 선언을 했던 기억을 그 어린나이에 얼마나 충격 이였는지 아직도 기억한다. 그때의 기억을 너무나도 생생하게 가지고 있다. 굉장한 충격 이였는지 귀가 5살 인생에서 평생 겪어 보지 못한 고통으로 아프기 시작했다. 진짜 아픈 것과 엄마가 와주기 바라는 것 까지 합쳐져서 너무나도 아팠던 기억이다. 새벽까지 울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2번 정도는 엄마가 들어와서 나를 들여다보고 울면 더 아프다면서 혼냈다. 나는 그렇게라도 엄마가 다시 나랑 같이 잤으면 했다. 미자여사는 정말 단호박 같은 사람이다. 그 어린 나한테 안 되는 건 절대 안 된다는 것을 이전부터 항상 교육시켰지만 그 경험은 나에게 차원이 다른 고통이었다. 훌쩍 훌쩍 울어도 보고 큰소리도 울어보고 해봤지만 2번을 끝으로 엄마는 절대 나타나지 않았다. 어쩌다 보니 잠이 들었다. 분명 울다 지쳐서 잤다.
그때 당시 엄마는 새벽기도를 항상 갔었다. 동이 틀락 말락 한 때였으니 새벽기도 마치고 집에 왔을 때였던 것 같다. 딸래미가 귀가 아프다면서 울 때는 코배기도 안보이더니 슬며시 들어와서 귀에 손을 얹고 기도를 해주는 소리를 잠결에 가만히 듣고 있었다. 나는 같이 자지 않아도 엄마는 항상 내 옆에 있다는 것을 그때 느꼈던 것 같다. 그다음부터 혼자 잠자기로 힘든 기억은 단 한 번도 없으니 말이다.
정말 행복했던 기억보다 내가 위기를 이겨낸 기억은 강렬하다는 것을 이 글을 쓰면서 느낀다. 나에게 그 기억은 엄청난 위기였지만 혼자 자기를 이겨낸 경험이기에 이렇게 뚜렷이 기억 속에 남은 것 같다. 나는 이 기억을 되돌려 보면 엄마의 단호함이 나를 성장 시켰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혼자 할 수 있는 것을 점점 늘려 가는 과정에서 분명 위기는 몇 번이고 찾아오기 마련이다. 정말 아이가 못할 것 같은 것을 바란다면 그것은 잘못이지만 충분히 해 낼 수 있는 것이라면 서서히 혼자 설 수 있도록 도와 주는 게 부모의 도리라고 생각한다. 언제까지 자신들의 밥을 내가 떠먹여 줄 수는 없다.
특히 워킹맘은 조금 더 철저히 준비된 자세로 아이들에게 홀로서기를 알려주어야 한다. 시간은 빠르다. 지금도 계속 흐르고 있다. 우리아이들의 시간은 더 빠르다. 아이들과 함께 있고 싶고 아이가 성장하는 것을 보며 추억을 쌓고 싶은 것이라면 그만둘 준비를 하고 사직서를 내미는 것은 바람직하다. 하지만 준비한번 해보지 않고 혼자 있어야 하는 아이들의 걱정에 열심히 달려온 워킹맘의 과정을 다 버리고 그만둔다면 그만큼 바보 같은 행동은 없다. 나도 내 처지를 비관하면서 다 그만 둘까 고민했던 때가 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내가 선택한 워킹맘의 여정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 더 철저하게 준비해서 헤쳐 나갈 생각만으로도 벅차기 때문이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우리아이들의 홀로서기를 도와주는 워킹맘이 돼야 할 때이다. 할 수 있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더 단단하기에 홀로서기 정도는 충분히 잘해 낼 것이다. 겁부터 먹고 엄마가 먼저 포기하는 일은 없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