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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다희 Jul 02. 2019

'뼈국물' 그립다

엄마는 곰국을 뼈국물 이라고 했다.  엄마는  닭고기,오리고기, 회 등등 못먹는 음식이 아주 많다. 식당을 가도 돼지고기와 소고기도 누린내가 난다며 몇점 먹다가 쌈만 한가득 먹고 온다. 아마 '금상추' 시절 식당주인들은 엄마가 참 미웠겠지. 국밥류도 조금만 냄새가 나면 조용히 내려둔다. 못 먹는 것  투성인 엄마의 이야기...



 내가 어렸을 때에는 에어컨 이라는 것은 돈 많은 집이라는 이름표였다. 먹고살만한 집들이 가지고 있던 가전제품이었다. 나는 다섯 식구가 살기 비좁은 집에서 한여름엔 거실에 물고기를 잡 어망 같은 대형모기장을 걸어두고 옹기종기 모여 잤다. 집안에 창문이라는 창문은 다 열어두고 더위를 식히며 잠이 들었다. 가끔 방충망에 매미가 붙어 시끄럽게 울어댈 때면 한참을 잠 못 이루고 뒤척였다.

 어린 시절 무던히도 더웠던 한여름. 학교를 마치고 신나게 집으로 갔다. 햇볕이 들지 않던 주공아파트 계단에서 땀을 한바가지 흘린 기억이 남아있다. 그때 우리네 시절은 앞집, 뒷집, 옆집 할 거 없이 여름이라는 계절에 모든 집들은 현관문을 활짝 열어두고 생활했다.

 “아줌마!” 또는 “○○야~!”

라고 외치면서 옆집에 쏙 들어가 친구와 놀아도 별로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때였다.

 “학교 다녀왔습니다.” 라며 내가 집에 왔다는 것을 알리며 들어간 집에는 찜질방 보다 더한 열기가 가득했다. 주방에서 얼굴이 시뻘겋게 익은 채로 무언가 하다가 급하게 나온 엄마를 보고 덥다고 할 수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땀범벅이 되어있는 엄마에게 덥다고 칭얼대다간 한 대 맞을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이 컸다. 엄마가 무서워 아무 말도 못 한 체 놀이터로 나가 뛰어 놀았다.

 이틀 뒤, 우리가족은 푹 고아진 곰국을 일주일 동안 먹어야 했다. 여름에 가족들이 기운 차리 길 바라는 엄마의 마음이었을까? 그 더운날 솔직히 엄마가 왜 그러고 있었는지 어린날의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정작 본인은 냄새난다며 잘먹지도 못했다.


 아마 그날 내가 느낀 계단에서의 더움은 날이 뜨거웠던 것 보다는 엄마의 곰국 때문이었던 것 같다.

 지금도 파를 썰 때면 눈물 한 바가지 쏟아내는 엄마다. 그때도 분명 훌쩍이며 파 안 먹으려는 날 위해 얇게 쫑쫑 썰어내느라 고생을 했을 터였다. 그런 줄도 모르고 국물에 파가 들어가 싫다고 징징거렸다. 일주일 동안 뼈국물을 먹어야 한다며 속으로 투덜거렸다. 어린 시절 참 못났던 나를 혼내주고 싶다.    

 엄마가 된 내가 친정엄마에게 물어본 뼈국물의 레시피는 사람 참 찡하게 했다. 찡함이 넘쳐 ‘아이고 미련한 사람아...’ 라는 탄식에 이르렀다.    

 “ 뼈를 일단 찬물에 담궈서 핏물을 빼. 물 색깔을 보고 두세 번 갈아줘. 핏물이 제대로 빠졌으면 찬물에 푹 고는 거야. 기름을 다 떠서 없애고 뼈를 또 씻어. 또 찬물에 끓이고 반복해.”

 “ 몇 시간 끓여? 두 시간?”    

 친정엄마는 기가 차다는 표정으로 날보고 비웃는다.        

“ 두 시간 같은 소리하고 있네. 한 번 끓일 때마다 여서 일곱 시간. 그 앞에 지키고 섰다가 불순물하고 기름은 수시로 건져야지. 밤에 약한 불로 해두고 새벽에 한 번씩 봐야지.”    

 머릿속이 내가 곰국을 끓인다는 생각만으로도 빙빙 돌았다.

 어린 시절 우리 엄마는 한여름, 며칠을 꼬박 서서 가족들에게 좋은 것 먹인다는 생각하나로 뜨거운 불 앞에서 땀을 뻘뻘 흘렸나 보다. 그 정성어린 ‘뼈국물’을 아마 나는 평생 내 아이들에게는 못해 줄 것 같다.     

 “ 아이고 하지마. 요즘에는 사 먹는게 더 돈 아끼는 거야. 할 생각 하지마.”    

 여전히 다 큰 딸이 못 미더운 건지, 불 앞에서 씨름 할 내가 걱정되는 건지, 무조건 하지 말란다. 속으로는 ‘응... 엄마... 내가 다른 건 다 내 고집대로 하면서 이런 말은 또 기똥차게 잘듣는다? 걱정마 뼈국물 끓일 일은 내 생에 없을 것 같아.’ 라고 대답하고 있었다. 돌아갈 수만 있다면 고생한 엄마를 안아주고싶다. 덥다고 나오라는 엄마의 승질쯤이야 견딜 수 있으니.



 아직 어린 우리 아이들 입맛에 맞추어 국밥집 웬만한 곳들은 다가본다. 외식의 필수코스랄까? 국밥의 미식가가 될 판이다.

 내가 다니는 직장 바로 건너편에 맛있는 순대국 집이 있다. 진한 국물에 새우젓을 넣어 먹으면 시원한 느낌이 뱃속가득 퍼진다. 남편은 땀을 뻘뻘 흘리며 한 뚝배기 뚝딱 해치운다. 아이들은 따뜻한 국물이 맛있다며 열심히 밥을 말아 먹는다. 난 물론이고 남편과 아이들도 맛있어 하는 우리가족의 ‘맛 집’ 이다.

 아주 가끔 남편이 일을 쉴 때면 토요일에 항상 근무를 애야 하는 나를 데려다 준다. 그날은 남편이 꼭 아이들과 건너편 순대국 맛집에서 아침을 먹는다.


 그 가게를 맛 집 이라고 하면서 뽀얀 국물보다는  엄마 표 뼈국물처럼 말간 국물에 밥을 말아 먹고 싶다. 김치를 안 먹던 나도 엄마 표 뼈국물을 먹을 때는 김치를 잘 먹는다고 아버지가 칭찬도 많이 해줬는데...    

 친정엄마가 사서 먹으란다고 사서 먹는 나도 참 끝까지 귀차니즘의 여왕이다. 그러면서 그리워하고 있다. 그 맛을.

 사서 먹는 게 ‘경제적 이익’이라는 엄마의 말을 잘 듣는 댓가로 ‘미각의 이익’이라는 추억을 상실해가 가고 있다. 이상하게 친정엄마의 맛이 나질 않는다. 맛있어 보이는 뽀얀 국물보다 아무 맛도 없을 것 같던 투명색에 가깝던 뼈국물이 그립다. 파를 넣어먹어야 된다던 엄마의 말에 웬만한 국밥집에 가면 파를 듬뿍듬뿍 넣어도 엄마의 뼈국물 맛이 나질 않는다. 그 뼈국물 참 그립다.

 아마 앞으로는 못 먹을 것 같다. 친정엄마가 더 이상 그 고생을 안했으면 좋겠다는 현직 초보 엄마의 바램이다. 우리아이들이 훗날 치사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친정엄마가 또 다시 해버리면 나는 내 엄마인생 반도 안 살았는데 못하겠다고 징징거리는 사람이 아닌가.

 어린 시절 엄마의 푹 익은 얼굴, 푹 익은 뼈국물,,, 그리고 푹 익은 그 사랑. 푹 익은 내 추억 속에 고이 고이 담아두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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