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난 참 부모님이 키우기 쉬운 아이였을 것 같다. 겁은 두말할 것도 없이 많았고 눈물은 폭포처럼 쏟아 낼 준비가 되어있었다. 부모님 말은 곧 법인 줄로만 생각했다. 어린 나에게는 한 없이 사랑을 주지만 한없이 무서운 존재가 부모님이었다. 조금 더 혼나지 않기 위해 나는 죽기 살기로 내 살길을 찾아야만 했다.
물론 내가 어렸을 적 우리 부모님은 폭언을 하지도 폭행을 가하지도 않았지만 겁 많은 나에게는 단연코 무서운 존재였다. 왜 그리도 힘들고 불편하게 생활을 했어야 했을까? 스스로를 부모님이 정해놓은 틀에 가두어 두는 삶을 자처했다. 그게 지독히도 아픈 독이 될 줄은 어린날의 나는 미처 알지 못했다.
내 동생은 나와 4살 차이가 나는데 나와는 다르게 온갖 애교로 아버지와 엄마를 대했다. 동생의 행동을 생각해보면 내가 좀 보수적이고 고지식했던 아이였던 것 같다. 그게 바로 나를 온실 속 화초로 가두어버린 내 성향이었다. 잘못된 내 성격을 스스로 감당해 내기에는 난 너무 어렸다. 꼭두각시처럼 하라는 대로 시키는 대로 해야 내가 이 세상에서 살 수 있는 줄로만 알았던 나약한 어린아이였다. 사회에서 조차 나는 스스로를 온실 속에 가두려 했다.
어른이 되어버린 지금의 나는 어린 날의 나에게서 결국 벗어나지 못하는 나를 가끔씩 마주한다. 세상이 정해둔 룰대로 나를 맞추어가려는 억지 속에서 울고 있는 내 마음을 다스리지 못해 망가져가는 나를 바라만 보고 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그 틀에 나를 욱여넣어보려 무던히도 애쓴다. 결국 돌고 돌아 나를 찾아낼 거면서... 미련하게도 용을 써본다.
온실 속 화초가 되기란 겪어본 사람들만 알 수 있지 않을까? 겉으로 화려하고 예쁘게 누구보다 잘 다듬어진 모양새로 내 존재 자체를 뽐내고 있다. 구경하는 사람들은 온실 속 완벽한 화초가 되기 위해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궁금하지도... 아니,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온실 속에 배정된 순간 주목받기 위해 향기를 내뿜으려 용을 쓴다. 웅장해 보이기 위해 무수히 많은 잎들을 틔워본다. 어떻게든 눈길 한번 받아보려 강렬한 색의 물감을 꽃잎에 발라본다. 그렇게라도 안 하면 이름조차 관심 갖지 않을까 봐,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지나쳐버리고 마는 흔하디 흔한 존재가 될까 봐. 열심히, 치열하게 어떻게든 잘 보여야겠다는 마음 하나로 완성한다.
그러나 온실 속의 주인은 뭐가 그리 마음에 안 드는지 향기 위에 더 독한 향기를 부어버린다. 뭐가 성에 차지 않는지 잎을 다 뜯고 가지를 잘라버린다. 뭐가 불편한지 꽃을 비틀어 원하는 방향으로 자라게 고정시켜버린다. 화초는 더 이상 내가 '나 자신'의 주인이 '내'가 아님을 인정해 버린다.
결국 완벽한 화초가 되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린다. 내 향기를 버리고 가져다주는 향으로 나를 치장한다. 잎이 자라려 하면 혹여 또 꺾일까 봐 어떠한 좋은 것을 가져다주어도 내 것으로 삼아 먹지 않는다. 꺾여본 경험이 너무 쓰라렸기에 두 번 다시 자라지 못하게 가둔다. 꽃이 원하는 방향으로 향하게 하기 위해 온 몸을 비틀어 그곳으로 나를 맞춘다. '이제는 됐다'라는 안도감을 위로 삼아 지칠 만큼 지친 날 토닥여본다. 하지만 그런 완벽한 모습 조차 온실 속 주인은 바꾸려 한다. 해도 해도 끝없는 질책에 '나'를 잊어버린다.
엄마가 된 내가 나 자신을 바라봐 보니 참 희한하다. 사람 참, 간사하다.
너희들은 나처럼 남들 시선에 너희들의 가능성과 꿈을 맞추지 말라고 다독여야 할 나는 내 기준을 앞세워 아이들의 잘잘못을 따진다. 내 틀을 아이들에게 강요한다. 내가 그리 무서워했던 때를 아이들에게 맛보게 하는 날 보며 "너 지금 뭐하니?" 라며 질책한다.
미안해 딸들. 우리 부모님이 그랬듯 나도 부모라는 직업이 처음이라 지독했던 그때를 너희들에게 강요하는구나.
내 방식을 지독히 싫어 도망치려 발버둥 치면 발버둥 치게 두련다. 내가 너희를 위해 생각한 향기가 너희들이 느끼기에 악취라면 그래... 그건 악취다. 돋아나지도 않은 잎을 엄마라는 이름으로 떼려 한다면 가시로 바꾸어 찔러도 좋다. 꽃을 엄마가 원하는 방향으로 피우려 온 몸을 비틀지 말고 곧게 뻗어 가장 볕이 잘 드는 쪽을 향해서 열 송이, 스무 송이, 아니... 엄마가 감당하기 힘들게, 눈부시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 주길 바란다.
평범한 잡초가 되기 위한 과정이 얼마나 아픈지 아는 엄마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어린날 내가 겪었던 '완벽한 온실 속 화초가 되는 방법'이라는 지침서를 버리는 것이다. 그게 참 힘들다. 그게 참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