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아이를 낳았을 때는 그 어느 때 보다 난 엉성하기 그지없었다. 처음이라 힘들 거라는 예상은 어느 정도 했지만 최악으로 치닫는 나를 가만히 둘 수 없었다. 육아는 아이템 발이라던 말도 소용이 없었다. 아이템은 최상으로 구비해 두고는 사용할 줄 몰랐다. 레어템도 가지고 있었다. 그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어디에 어떻게 적절히 사용할 줄 몰랐다. 무엇이든 허둥지둥 엉망진창 이던 초보 엄마 시절을 생각하면 내 곁에서 누구보다 잘 자라주는 아이를 볼 때면 가슴 시리도록 감사가 넘쳐난다. ‘뭐라도 해봐야지’ 라며 무작정 이 책 저 책 기웃거렸다.
‘베이비위스퍼’는 수도 없이 읽었다. ‘맨살로 키워라’ ‘삐뽀 삐뽀 119’ ‘퍼펙트 베이비’ ‘프랑스 아이처럼 키워라’ 등등 육아서적은 닥치는 대로 읽어냈다. 그때의 열정으로 학창시절 공부를 했다면 난 대단한 인물이었을 것 같다. 역시 사람은 닥쳐봐야 뭐라도 한다더니 딱 그 꼴이었다. 낳아서 기르다 보면 잘 자란다는 아이는 내 맘처럼 쉽게, 편하게 자라주지 않았다. 책 마다 맥락은 비슷하지만 대처 방법이 각각 달랐다. 결국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하는 상황 속에 초보엄마는 그저 넋 놓고 바라 볼 수밖에 없었다.
아이가 처음으로 24시간 넘도록 엄마인 나를 잠 못 들게 울었을 때 밉지가 않았다. 그저 미안했다. 왜 그런지 모르는 날 용서하라며 팔뚝크기 밖에 안 되는 아이를 안고 거실을 서성이기만 했다. 그런 상황이 반복이 되니 나만의 노하우가 생기고 왜 그런지 알게 되니 미안함 대신에 미움이라는 감정이 슬쩍 고개를 삐죽였다. 그 녀석의 삐죽임과 동시에 ‘등센서’의 요란스러움이 찾아왔다. 내가 만든 상황이니 미안하기보다 내려놓으면 우는 아이가 안쓰러웠다. 그마저 시간이 지나니 미움이란 녀석이 또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때 마침 지독한 열 감기로 고생하는 아이가 날 눈물짓게 만들어 버렸다. 이렇게 쉴 틈 없이 아이는 자신과 미움을 엄마인 나에게서 갈라 두었다.
우리 부모님도 내가 딸로 태어났을 때 나와 같은 감정을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 미울 틈을 주지 않고 화낼 틈을 주지 않는 그때가 나에게도 있었겠지. 세상에 처음으로 내가 태어났음을 알린 그 우렁찬 울음소리만 으로도 감격하던 때가 분명 있었을 것이다. 나처럼.
내가 아이를 키워보니 어른들이 늘 하는 말이 쉽게 들리지 않는다. ‘자식 내 맘처럼 안 되더라.’ 이 말이 진심으로 와 닿는다. 우리 부모님에게 내가 그런 삶을 살았기 때문인가 보다. 왜 그리 지독히도 부모님이 원하는 정 박자가 아니 엇박자에 내 삶을 맞추며 살아 왔는지 후회가 될 때도 있다. 쉬운 길을 멀리 돌아온 느낌이 들 때면 내 아이들도 내가 사서 고생한 길이 아닌 길로, 내가 생각하는 정박자의 길로 갔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렇게 살아오지 않은 나이기에 그 욕심을 고이 접어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