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다희 Jul 18. 2019

밥이 잘못했네

 내 동생들은 나와는 아주 다른 삶을 살았다. 덕분에 한명은 해외로 취직을 하고 떵떵거릴 수 있는 수영장이 딸린 집에서 살고있다. 한명은 해외 대학에 입학을 해서 멋진 남자친구와 알콩달콩 거리며 잘 살아가고 있다.

 물론! 나도 아주 잘 살아내고 있다. 하지만 예전에는 동생들과 나를 비교하느라 이 눈치 저눈치 봤던 때가 있다. 부모님이 정해준 길이 싫어서 빙 돌아 힘들었던 삶을 선택학 스스로에게 치명적인 독을 비교라는 것과 함께 들이 부었을 때가 있다. 내가 선택하고 내가 개척해서 사는 '삶'이라는 무게가 나에게만 무겁게 느껴지는 척 치졸했던 때가 있었다. 같은 배에서 태어나 나만 유난떨고 사는 듯한 주변의 시선 또한 비수가 되어 어디 하나 성한 곳 없게 찔러댔던 때가 있었다.


 결국 다 먹고 살자고 했던 것 같다. 지나고 보니 결국 나중에 어떻게 먹고 살지의 기로에서 헤메였던 것이다. 이렇게 살아도 저렇게 살아도 그만인게 아니였다. 굶기위해 꿈을 꾸지도 살아내지도 않는다. 먹기위해 살기위해 꿈을 꾸고 목표를 향한다. 다만 내 밥이 그냥 저냥 흐지부지 살아온 결과인지, 치열하게 모든 정신을 쏟아 부어 낸 결과물 인지는  나만이 알고 있다. 사람들은 결과만 보고 판단한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내가 먹고 마시는 것 뿐만 아니라 내 가족이 먹고 마시는 것들이 조금 더 의미있길 바란다. 그게 바로 사람들이 보기에는 좋게만 보이지 않았던 내 인생의 길이였다. 지나고 보니 그때 나를 보고 혀를 차던 사람들 보다 조금 더 치열하게 살아온 내가 옳았다. 내가 살아낸 방법이 무식해 보였을 지언정 틀리지 않았음을 이제야 안다. 이렇게 내 방식에 또 한번 잘해냈다고 날 위로한다.


 엄마가 되어보니 엄마의 마음을 알겠다. 내가 살아온 길이 나만 잘해서 된 건 아니였음을 이제야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말도 안되는 똥고집을 차마 꺾을 수 없어 지켜봐야만 했을 것이다. 엉뚱한 방향으로 가려는 날 보며 혹시 자존감이 무너질까 안절부절 했을 것이다. 꿈이랍시고 되도 안한걸 할 때는 삐딱선 타게 될까봐 전전긍긍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서야 될 때와 아닐 때를 구분해 나에게 맞는 해결책을 제시 하느라 속된말로 똥줄탔을 마음이 이제야 조금씩 보인다.

 이기적인 삶을 산다며 사람들이 손가락질 해댈 때면 누구보다 먼저 나서서 변호해주던 사람이 있다. 집에서는 도대체 왜 그렇게 사냐며 부모얼굴에 먹칠 하는 거냐며 뭐라하던 내 엄마. 막상 사람들이 이런 저런 소리를 하면 날 대신해 싸워주던 내 엄마. 그녀가 있기에 난 이렇거 살아냈나보다.

 

  동생이  잠깐 한국에 들어왔을 때 우리 딸들은 오랫만에 보는 이모를 조금 더 자주, 많이 보기 위해 용을 썼다. 결국 출국하는 공항까지 일하는 나를 대신해서 친정 엄마가 데리고 갔다. 그 전날 퇴근을 하고 아이들을 어린이집에서 데리고 친정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전화를 했다.



"전화를 왜 이렇게 안 받아?"

"이제 엄마도 막 들어 왔어."

"밥은?"

"안  먹었지."

"우리 복이들 배고프다고 난리야."


잠깐의 한숨이 흘러나온다.


"너가 준비 했어야지."

"나 일하고 바로 애들찾아서 넘어가는 거야. 손님 많았어. 피곤해. 나와 밥먹게."


순간 감정적으로 말을 내뱉고 ' 아차!' 했다. 전화기에서는 날이 선 친정 엄마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도 일하고 지금 막 들어 왔거든! 지애들만 챙기지... 됬어 ! 배고프고 힘들겠네 시켜먹게 얼른 올라와"


 나만 치열하게 살아내고 있는게 아니였다. 할머니인 백여사님도 하루 하루를 나보다 더한 열정으로 살아내고 있었다. 하지만 백여사님 앞에서는 난  딸로 돌아가 징징거린다. 우리 딸들이 날 못살게 군다고 어디가서 이야기도 못하겠다. 내가 더했으면 더했지...

처음에는 욱 하다가도 딸인 내가 힘들까봐 배고플까봐 얼른 올라오란다. 그게 엄마인가 보다.

 

 어른이 되어 버린 나도 엄마가 필요하다. 아무리 잔소리하고 날선 말을 나에게 해도 엄마라는 존재는 날 단단하게 만들어 준다. 남들에게 내놓기 창피한 인생을 살아도 엄마는 뒤에서 묵묵히 지치지 말라며 쓰디쓴 눈물을 삼키며 내 등을 토닥이고 있었다. 그게 엄마다. 그 사람의 딸이 나다.


 나도 우리 딸들에게 그러한 존재가 되길 바란다. 나중에 지 새끼들 챙긴다고 서운해 할 내 모습은 조금 이해해주길 바랄뿐이다. 너네는 그보다  귀한 내 딸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박씨 물어다 줘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