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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다희 Aug 08. 2019

내 딸이랍니다

 월차를 냈다. 오랜만에 나만의 시간을 보내려 했지만 나는 그 하루도 치열하게 살기로 했다. 교정작업을 마친 원고를 들고 출판사를 찾아갔다. 대표님의 이런저런 말씀을 들으며 한 마디 한 마디 가슴에 새겼다. 아직 갈 길이 먼 나는 초보여서 상대방의 툭 던지는 말도 예사롭게 들리지 않았다. 미팅이  끝난 후 운전대를 잡고 한강을 만끽하려던 순간 저 멀리 보이는 롯데 타워에 눈길이 갔다. 엄마 직장이 저 근처였다. 때 마침 점심시간이  다가왔다. 차가 정차한 틈을 타 전화를 걸었다.



"엄마 나 월차인데 신천을 지나갈 거 같아. 점심 약속 있나?"

"지금 오면 되겠네~. 주소 찍어줄게."


 아... 나는 단 한 번도 엄마 직장에 가본 적이  없다. 묘한 감정이 들었다. 성인이 되어서 조차 단 한 번도 엄마 직장을 가본 적이 없구나. 학창 시절 용돈이 필요하면 기를 쓰고 아버지 회사까지 찾아갔는데...

 그때와 달라진 게 있다면 내 가정이 생기고 내가 돈을 번다는 것뿐이다. 역시, 나라는 사람 참 간사하다.


 엄마 사무실에 도착하고 주위를 둘러보니 참 넓다. 텅 빈 사무실에서 혼자 고군분투하는 내 엄마가 안쓰럽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기다리는 시간 동안 책을 집어 들고 읽어 내려가다 분주한 엄마를 가만히 보았다. 끊임없는 전화와 타자 소리, 의자 바퀴가 드르륵드르륵 굴러가는 소리가 속을 어지럽혔다. 매일 서서 일하는 나를 걱정하는 엄마는 나이 든 몸을 나보다 더 바쁘게 사용하고 있었다. '저러니까 아프지'라는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그 짜증은 어쩌면 나를 향한 것이 아녔을까?


 "엄마! 여기 다단계 회사 같아."

 "다단계 해봤나?"


 그냥 장난 한번 치면서 짜증이란 놈과 미안한 놈이라는 것을 잠시 묻어두었다.


 점심시간에 엄마가 자주 가는 식당을 갔다. 식당 직원과 주인 할머니가 자꾸 빤히 바라보는데 그 시선들이 참 부담스럽다. 모른 척, 엄마와 수다를 떨었다. 메인 음식을 가져다주신 분이 자꾸 빤히 본다. 엄마와 친한 듯 보이는 분이기에 그러려니  했다.


 " 얘가 내 딸이에요."


엄마가 그 말을 하자마자 그 아주머니의 눈동자는 나에게 집중됐다. 생각보다 많이 닮지 않았는지 더 빤히 바라본다.


"어머 어머! 이렇게 큰 딸이 있어요?"

"얘 애기 엄마예요."

"세상에 진짜 그렇게 안 보여요! 어머 세상에..."

"그러지 마요. 어디 가서 처녀 행세한다."


그렇게 말하는 엄마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하다. 저 주름이  예뻐 보이는 게 저렇게 예쁘게 웃어서 그렇구나. 웃는 연습을 하는 것도 아닌데 참 자리 잘 잡았다. 두 여자의 수다 속에서 나는 빤히 엄마를 바라보며 딴생각 중이었다. 툭 얹어지는 아주머니의 손길이 어깨에서 느껴지며 대화가 끝났음을 느꼈다.


"진짜 애 엄마인지 모르겠어요"


 아주머니의 저 말 한마디가 예의상 흘러나온 것 일 수 있다. 그럼에도 나와 엄마의 기분이 참 좋았음은 분명했다. 철없는 똥고집과 막무가내 어린아이 같은 내면이 동안이라는 것으로 나타났을 수도 있겠다. 옷 많이 산다고 잔소리하는 엄마 앞에 조금은 할 말이 생겼다. 식당 아주머니 덕분에 좋은 핑계 하나 가 더 생겼다. 감사합니다 아주머니.


 딸아 엄마가 웃는 연습을 많이 해둘게. 어디 가서 너를 실컷 자랑할 수 있게 단단하게 커주길 바란다. 남들 에게 이기적인  행동으로 보였을 내 똥고집이 결국 좋은 것이더라. 너희들도 그런 똥고집으로 한번뿐인 인생 멋지게 살아라. 옷은 딱 엄마만큼만 사라. 그 이상 사면 할머니가 혼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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