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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다희 Jun 14. 2019

내 엄마처럼 육아 중입니다

' 엄마처럼'이라는 금단의 말

“엄마처럼 키우면 돼”  

“엄마 같은 엄마가 될 거야”

 

 내 엄마 미자여사는 내가 인정하는 최고의 육아 달인이다. 전적으로 우리 아이들을 봐주는 것은 아니지만 급급하게 봐줄 사람이 없으면 주말이나 공휴일 같은 경우 맡기고 있다. 아이들이 할머니랑 살고 싶다고 할 정도로 애 하나는 끝장나게 잘 봐준다. 우리 세 자매도 미자여사의 육아 신공으로 자랐다.

 임신사실을 알린 날 엄마의 한숨에 난 뭐 그리도 당당했는지 “엄마처럼 키우면 돼”라고 말했다. 참 바보 같았다. 엄마처럼 아이를 양육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모르고 그 말을 왜 내뱉었을까? 철없는 한 여자의 무모한 도전장이었다. 그 말은 하지 말았어야 되는 금단의 말이었다.

 아기가 태어나고 밤낮없이 울어대는 시기가 지났다. 뒤집기를 하고 걸음마를 한다. 말을 시작한다. 사람이라고 밥을 먹는다. 어린이집에 가야 할 시기가 왔다는 뜻으로 받아들여 본다. 나는 일을 시작해야 된다는 뜻으로 해석한다. 나는 아이가 태어나서부터 쉴 틈 없이 일했다. 일을 사서 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이다.

 어쨌든 어린이집에 가야 하는 시기가 오면서부터 온갖 걱정이 시작되는 게 엄마다. 어떤 어린이집을 보낼지, 내 아이가 잘 적응할지, 너무 어릴 때 보내는 게 아닌지 별별 걱정을 다 한다. 지나고 보니 별 걱정거리도 아니었지만...

 내 엄마는 나를 유치원에 보낼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내가 어릴 때는 어린이집보다 유치원으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막상 애들을 보내야 할 때 생각이라는 것을  가질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일을 해야 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드디어 아이들을 보낼 때가 왔다며 쾌재를 불렀던 기억이 난다. 어린것을 벌써부터 보낸다며 엄마한테 한소리 들었지만 나부터 살아야 했다. 솔직히 집안 형편도 좋지 않았다. 몇 달 돈을 벌지 않으니 이제 슬슬 통장 잔고에도 한계가 왔다. 행복을 돈으로 연관시키면 안 된다 지만 돈이 없이는 행복할 수 없음을 그때부터 더 강렬하게 느꼈던  때다.

 생각을 해보면 요즘 시대 우리들은 고정 지출이 꼭 있기 마련이다. 세금, 보험, 저금, 학비 등등... 당장 벌지 않으면 안 되는 경우가 있다. 나도 금전적으로 너무나도 힘들었기에 그 어린것을 보낸다는 엄마의 잔소리에도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내야만 했다. 내가 워킹맘이 되기로 한 이유가 금전적인 이유도 있음을 말해준다.

 또 하나, 내가 아이를 양육하는 도중 누군가 내 자리를 벌써 치고 올라오고 있다는 불안감도 나를 내몰아 세웠다. 그 자리까지 얼마나 힘들게 갔는데 빼앗겨 버리면 아이 탓을 할 것 만 같았다. 일을 하면서도 우리 아이들을 내 엄마처럼 키울 수 있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을 가지고 일을 시작했다. 참 무식하고 부족했던 엄마임이 틀림없다. 내 엄마처럼 아이를 양육하려면 얼마나 많은 희생이 따르게 되는지 꿈에도 생각해본 적이 없으니 그렇게 덜컥 일하겠노라 선언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의 표본이었다.

 지금도 육아와 일에 그리고 집안일에 치여서 힘들어 죽겠는 때에 생각하는 말 중에서 가장 우선순위로 생각하는 말이 있다. 무식하게 내뱉은 말 “엄마처럼 키우면 돼”

 

 우리 아버지는 내가 20살 되던 해 우리 막내 동생 10살에 하늘나라로 가셨다. 아버지 없이는 엄마가 무너질 것이라고 생각했던 내 생각은 완전 빗나갔다. 엄마의 그때 심정이 어쨌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한 가지 정확하게 기억하는 건 덤덤하게 현실을 받아들이고 회사로 출근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도 회사에 출근하고 있다. 아직 막내 동생이 공부를 마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단하지 않은가? 막둥이를 위해 손녀가 있는 할머니가 출근을 한다. 처해진 상황은 누구나 다 다르지만 친정엄마가 막내의 학업을 위해 아직도 일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워킹맘이라는 길을 선택한 것이 아이들을 위한 이유도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결국 나는 지금 엄마처럼 아이들을 키우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내 꿈, 내 커리어와 금전적 문제를 위해 선택했다고는 하지만 아이들을 위해 출근을 하고 있다는 것도 배재할 수는 없다.

 나이 50 넘어서 자식 뒷바라지하는 건 보통 일이 아닐 것이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결혼이 점점 늦어지기에 50이 넘어도 아이들이 청소년일 확률이 굉장히 많다. 나는 늦둥이를 낳은 엄마 덕에 워킹맘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최고의 선생님이 생겼다. 어쩌다 보니 친정엄마처럼 아이들을 키우고 있다.

 우리 살아가고 있는 시대는 어쩔 수 없이 주부보단 일을 선택해야 하는 부모들이 늘어가고 있다. 난 노후는 준비도 못해보고 또다시 일의 연장선에 서기 싫다. 모진 엄마라는 소리를 들을 것들을 감안하고 아이들에게 나는 너희를 20살까지만 도와줄 거라고 이야기한다. 20살이 뭔지도 모르는 그 어린것들을 데리고 말이다.

 내가 워킹맘의 길을 선택한 이유가 점점 명확해지니 난 누구보다 열심히 일해야 했고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야 했다. 그런데 그게 뭐 맘처럼 쉽게 되나? 역시나 나는 여러 고비들을 마주쳐야 했다. 이겨낼 수 없어서 좌절했던 때도 있다. 세상 사 내 맘대로 되지 않다고 하던 말을 뼈저리게 느끼고 또 느끼게 해 준 것이 바로 워킹맘의 위치였다. 워킹맘이 멋있다? 어이구 당신이 해보세요~ 라는 말이 절로 나오던 때도 있었다. 점점 나는 지쳐버렸다. 당연히 짜증도 많이 내는 엄마가 되었고 항상 날이 서있는 엄마였다. 감정이 폭발해버리면 남편에게 못된 말들을 쏟아냈다. 감정 점수 빵점이었다. 모두가 다 적인 것 같고 나 말고는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다. 바보 같고 불쌍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 점점 나를 형편없게 만들고 있었다.

 

 하루는 딸아이가 나를 보고 환하게 웃으면서 “나는 커서 엄마 같은 엄마가 될 거야 꼭!” 이란다. 어이구야 엄마처럼 키우려다 내가 너한테 그런 모진 말들을 해도 너는 나처럼 된다고 하는구나. 뭔 복을 타고났기에 이런 딸이 내 곁에 있을까? 다시 한번 생각을 고쳐먹기로 했다. 나중에 20년 30년 뒤에 ‘엄마 같은 엄마가 될 거야’라고 똑같이 말할 피붙이가 있다면 지금보다 더 열심히 살아도 부족하지 않을까? 내 엄마 삶의 반도 살지 않은 내가 힘드네. 어쩌네 하기엔 나는 아직 너무 젊다.

 힘을 내야만 하는 이유는 분명했다. 나에게 어떤 환경이 주어졌든지 다 떠나서 내 아이가 조금 더 좋은 환경에서 본인의 꿈을 키워나가길 바란다. 여전히 꿈꾸고 있는 나에게는 이 또한 꿈을 이루기 위한 수많은 과제 중 하나일 뿐이다. 아직 나는 엄마처럼 아이를 키워야 할 이유가 수백수만 가지가 있다는 뜻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지금은 지칠 때가 아니다. 우리네 부모님들께서는 아직도 달리고 계신다. 자꾸 이래서 힘들고 저래서 힘들다는 변명은 접어둬야 한다. 내가 결정한 길이니 끝을 봐야 나중에 자식들에게 할 말이라도 있지 않겠는가. 이제 스타트라인에 선 마라톤 선수인 우리는 페이스 조절을 하면서 끝까지 완주를 해야 되는 워킹맘 그리고 엄마이다.

 사람들마다 다르겠지만 누구는 엄마처럼 누구는 아빠처럼 누구는 조부모님처럼.. 아이를 양육하기 위해서 그분들의 육아방식을 조금씩은 모방하고 있다. 나를 이 자리에 있게 해 준 분들 또한 이 시절을 무사히 다 넘겼다. 그 모습을 보고 느끼며 자랐다. 목표는 20년 30년 후에 ‘엄마 같은 엄마가 될 거야’라는 소리를 다시 듣는 것이다. 결승선이 생겼으니 지금부터 달리면 된다. 달리다 보면 힘든 언덕도 나올 테고 , 엄청난 갈증에 시달리기도 할 것이다. 이 게임을 계속하느냐 , 중도 포기하느냐는 엄마의 마음가짐에 있다.

 아이들에게 엄마는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노라 외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달려보자.  포기라는 것은 잠시 접어두자. 모두가 워킹맘이 될 수 없다. 살면서 단 한 번도 경험할 수 없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우리는 이미 워킹맘이 되어서 출발지점에 섰고 이미 달리는 중인 사람도 있을 것이다. 지금부터 시작이다. 나는 훗날 결승선에서 분명 아이에게 엄마처럼 내 아이도 양육한다는 말을 듣고 있을 것이다. 내 양육 방식이 옳든 아니든 나와 아이들이 행복하면 된다. 부족한 부분은 노력하면 채워지기 마련이다. 우리 아이들은 분명 행복하다. 내가 엄마의 양육방식으로 지금 행복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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