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가 한 말을 그대로 수긍하고 추가적인 질문 없이 넘어갈 지은은 아니었다.
아니, 이제야 바로 잡자면 지은의 얼굴을 한 다른 사람, ‘제인’이라고 해야겠다.
해진이 일전에 언급한 바 있었던 그 제인.
제인은 관자놀이를 톡톡 두드렸다. 눈꺼풀을 느릿하게 내렸다가 올리고 다시 입을 열었다.
“어쭙잖은 사람을 고른 거예요? 아니면 상당한 실력자를 고른 거예요? 내가 생각하기엔 후자인데.”
“네? 그게 무슨……. 앞뒤 잘라먹고……!”
“앞뒤는 본인이 잘 알고 있을 것 같은데. 한 번에 쏴 죽이지 못하는 빙다리 핫바지 같은 애를 고르는 것보단 실력 있는 사람이 일부러 급소를 빗나가게 했다는 게 더 가능성 있어 보이지 않아요?”
“형사님이라고 해서 앉아 있었더니. 허, 참!”
여자는 화가 난 듯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증거도 없이 엄한 사람을 이렇게 몰아도 되는 거예요? 불쾌하니까 그만 나가주세요!”
“단순히 목격자라면 왜 직접 119에 신고하지 않았죠?”
기분 나쁘다는 티를 팍팍 내며 제인에게 나가라고 소리를 지른 여자에게 지은이 한 말이었다.
그래, 목격자로 나오지도 않았고 신고는 옆집에 사는 이가 했으니까.
제인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여자를 보며 느릿하게 일어났다.
“그, 그건!”
여자는 정확히 설명하지 못했다.
“당신이 목격자라고 밝힌 건 그에 대해 진술할 의지가 있는 것으로 생각해요. 그러니 그 내용을 제게도 자세히 설명해 주시겠어요?”
“초, 총소리를 들었어요! 제가 마침 그 앞을 지나가고 있었거든요? 마, 마트에 가야 해서.”
“그럼 범인이랑 마주쳤겠네요? 어떻게 생겼던가요? 어떤 차림을 하고 있었죠?”
“거, 검은 옷을 위아래로 입고…. 상의가 후드티였는데 모자까지 뒤집어쓰고 있어서 얼굴은 제대로 못 봤어요. 그런데 남자였어요!”
여기서 제인의 머리를 자극하는 의문 하나.
범인을 본, 살해 현장 앞에 있던, 범행 장면을 보았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인물이 어떻게 자신의 앞에 살아 있을 수 있는 걸까?
완전 범죄를 꿈꾸었다면 여자 또한 죽이는 게 좋았을 텐데.
“그렇군요.”
제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여자의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듯한 행동을 보였다.
그러나 제인은 재빠르게 움직여 아까 보려고 했던 방문 앞으로 갔다.
여자가 제인을 잡기도 전에 방 안으로 들어갔고 헤집어 놓기 시작했다.
여자는 당황했고 제인에게 영장 없이 이래도 되는 거냐며 화를 냈다.
제인은 여자의 말에 픽 웃으며 대답해 주었다.
“대한민국 형사소송법 제216조에 의거 체포현장에서의 압수, 수색, 검증은 영장에 의하지 아니한 강제처분이 가능하다. 난 당신을 체포할 거니까 상관없죠? 뭐, 수갑부터 채우고 할까요?”
제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제인의 손에는 신고 없이 소지해선 안 되는 것이 쥐어졌다.
이후는 뭐, 예상했던 변명이 들려왔는데 그것에 개의치 않았다.
이번엔 옷가지들을 집어 들었다.
표정관리가 너무 안 됐다.
제인이 집어 든 옷가지는 우습게도 여자가 말했던 범인의 인상착의와 동일했다.
즉, 남자라는 성별만 제외하고는 자신이 입었던 옷을 상세히도 설명해 줬다는 것.
“방금 나한테 했던 진술, 서에 가서 한 번 더 해야겠는데. 이번엔 제대로. 아, 맞다. 까먹을 뻔.”
제인은 얼이 빠져 있는 여자에게 수갑을 채우며 미란다의 법칙을 읊어주었다.
“변호사 선임되고 묵비권 행사도 되고 이제부터 말하는 모든 건 이후 법정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 끝.”
제인이 여자와 팔짱을 끼고 집에서 나오려는데 재킷 주머니에서 폰이 요란스레 울렸다.
제인은 미간을 좁혔다.
발신자는 보나마나였다.
받을 손도 없었고 받기도 귀찮아서 받지 말까 하다가 잔소리 폭탄은 피해야겠다는 생각에 증거물을 탁자에 내려놓고 전화를 받았다.
통화를 한다기보다 통보하고 끊어버렸지만.
여자의 집에서 그들이 내려오자, 근처에 있었던 것인지 일찍 온 지훈이 씩씩대며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제인을 보며 화를 내려고 했던 그의 일정은 그녀의 손에 털털대며 끌려오는 여자를 보고는 말끔하게 지워졌다.
그것도 수갑이 채워진 채로.
“용의자야?”
“비켜.”
제인은 여자와 함께 뒷좌석에 올랐고 지훈은 자연스럽게 운전석에 타야 했다.
서로 가는 차 안은 어디서부터 꼬인 건지 생각하느라 바쁜 여자의 머릿속과 달리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지훈은 ‘지은이 아닌 것 같다.’라는 ‘느낌’이 들었다.
용의자냐고 묻는 말에 지은이라면 뭐라든 받아쳤을 것이다.
그런데 다짜고짜 비키라니.
자기 할 말이 급급한 아이의 모습이 연상되었다.
‘설마’하고 생각했던 것이 현실로 드러나는 것 같았다.
지훈은 확인하고 싶었지만, 다른 이가 있는 상황에서 섣불리 말을 걸 수 없었다.
고요함을 실은 차가 서에 도착하기 조금 전, 제인은 과학수사팀에 전화를 걸었다.
* * *
서에 도착해 여자를 데리고 들어가는 그들.
1팀은 물론이오, 다른 팀의 형사들까지 수건으로 두 손을 가린 여자를 데려오는 것을 보고는 입이 떡 벌어졌다.
엄한 사람을 잡아 온 것은 아닌가 싶은 걱정도 있었다.
강력계 경험이라고는 없는 신입 둘이 탐문수사를 하러 가서 사람 하나를 잡아 오다니.
전례에 없던 일이 일어났다.
“뭐야? 어떻게 된 거야?”
상현이 눈을 휘둥그레 뜨며 여자와 그들을 번갈아 보며 물었다.
“혐의 인정했으니까…….”
“아니야!! 모함이라고! 난 아니라고!”
“누가 누굴 모함하고 있다는 건지.”
서에 도착해 형사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니 그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던 건지 혐의 사실을 인정한 적이 없다며 고함을 질러대는 여자였다.
그래, 뭐.
따지고 보면 제 입으로 인정한다고 말한 적은 없었지.
다만, 여자의 집에서 나온 것들이 여자의 범행을 증명해 주고 있었을 뿐.
제인은 여자가 같잖다는 표정을 지으며 여자를 데려오기 위해 꼈던 팔짱을 빼버렸다.
삐딱한 시선으로 여자를 보는 제인. 그런데 이내 미소를 짓더라.
제인은 여자에게 조사실로 들어가서 일단 그 잘난 목격담을 얘기해 보라고 했다.
여자의 말에 의하면 여자 자신은 목격자에 불과했으니까.
그것도 검은 후드티를 입은 남자를 본.
그리고 피해자가 죽어가는 것을 본.
태경이 뭐라고 할 새도 없이 제인은 여자를 조사실로 끌고 가다시피 데려갔고 그 탓에 팔짱을 끼고 있던 지훈까지 딸려 가게 되었다.
조사실에 들어간 여자의 표정은 하얗게 질려버렸다.
애석하게도 그 표정이 제인에게 측은한 마음을 들게 한다거나 하진 않았다.
짜증을 돋웠으면 모를까.
철제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마주 앉은 제인과 여자.
그들을 보기 위해 조사관찰실에 들어온 1팀 사람들.
조서를 적을 지훈이 제인의 옆에 앉았고 제인은 녹음 버튼을 눌렀다.
제인은 여자가 눈을 아래로 내리깔고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지훈이 옆구리를 콕콕 찔러 시작하라는 입모양을 하며 조사관찰실 눈치를 보았다.
지훈의 시선에 조사관찰실을 힐끔 보고는 입을 뗐다.
“신분 확인부터 하겠습니다. 오늘 새벽 3시경에 살해될 ‘뻔’했던 40세 작가 김서철의 문하생 차현영씨 맞습니까?”
“…….”
“지문이라도 따서 확인할까요? 신분 확인부터 묵비권 행사하는 겁니까? 다시 묻겠습니다. 차현영씨 맞습니까?”
“네! 그런데 저는!”
현영의 말을 가차 없이 끊고 제인은 자신이 할 말을 이어 나갔다.
“오늘 새벽 3시경 당신은 김서철의 집에 갔었습니다. 확인하기 위해서였죠? 숨만 간당간당하게 붙어서 얼마나 고통스러워하고 있는지.”
“아니야. 나는 그저! 그, 그 앞을 지나가던 중에 검은 옷을 입은 남자를 목격했을 뿐이야. 너, 너무 무서워서 신고도 못 하고 나왔지만 난 목격자라고!”
‘나왔다.’라고 했다.
앞을 지나갔을 뿐이라면 나오고 말고 할 것도 없을 텐데.
진술 내용이 번복되었다.
제인이 기회를 포착했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
“열리지도 않은 마트에 가기 위해 그 앞을 지나간다고 했어, 당신은. 옆집에서도 듣지 못한 총소리가 났다고 했고. 범인으로 추측되는. 아니, 확신할 수 있는 남자도 보았지만……. 당신은 멀쩡히 살아 있네요?”
지훈은 제인의 표정을 보며 제발 무사히 이 상황이 끝나기를 바랐다.
현영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제인이 말을 이었다.
“목격했던 범인의 인상착의가 당신의 집에서 나왔죠. 무엇보다 당신의 알리바이에는 걸리는 게 하나 있죠. 당신의 집에서 마트까지 가는 시간이 생각보다 너무 오래 걸렸다는 거지. 특히 김서철씨 집이 있을 곳에서 다음 CCTV가 있는 곳에 모습을 보일 때까지.”
묵비권이라도 행사할 생각인지, 맹수 같은 제인의 모습에 압도되어 입이 떨어지지 않는 건지 현영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그러다 겨우 입을 뗀 현영은 ‘아니다.’라는 말로 일관했다.
뭐가 아니라는 건지.
제인은 같잖다는 듯 현영을 한 번 흘기고 마치 자신이 살해 과정은 물론이오, 그 내막까지 보기라도 했던 듯 술술 읊어대기 시작했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이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