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훈은 해진에게서 걸려 왔던 전화가 신경 쓰였다.
제자리로 돌아온 지훈은 자신의 옆자리인 지은의 생각에 빠져 멍하니 보았다.
지은이 옆에서 느껴지는 시선에 지훈을 보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응? 아, 아무것도 아냐.”
“싱겁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지은은 다시 모니터로 고개를 돌렸고 지훈은 그녀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 궁금해 의자와 함께 그녀의 옆에 바짝 붙었다.
지은의 앞에는 러디의 사건 파일이 놓여 있었고 지은은 살인마 잭의 자료를 보고 있었다.
“아줌마가 잭이랑 동일시 할 수 없다고 했잖아.”
“그래도 혹시 뭐라도 건질 수 있을까 싶어서. 이대로라면 또 미제로 넘어간다고.”
지은이 여러 게시물을 넘겨보던 중 ‘잭의 범행이유’라는 헤드라인이 눈에 들어왔다.
재빨리 들어가 보았지만 이미 알고 있던 기본적인 정보와 함께 ‘범행 이유는 무엇일까?’라는 무책임한 말이 쓰여 있을 뿐이었다.
지은은 짜증을 내며 고개를 뒤로 젖혔다.
“야, 송지훈. 넌 이유가 뭔 것 같냐?”
“내가 그걸 알면 진작 범인을 잡았겠지. 우선 밥이나 먹으러 가자.”
잭의 카피캣이라고 해도 머리가 아플 판인데, 관종 같은 살인마라.
이대로 가다간 정말 미제로 남을 거다.
첫 사건부터 미제라니.
썩 좋은 히스토리는 아니었다.
그녀에게도, 세상에도.
지훈의 손에 이끌려 식당에 오긴 했지만, 지은은 밥을 먹는 둥 마는 둥이었다.
경찰대 다닐 때 둘이 좋다며 즐겨오던 국밥집이었는데.
“보는 사람까지 밥맛 떨어지게 깨작거리지 마라. 너랑 내가 내숭 떨 사이는 아니지 않냐?”
아, 말이 또 삐딱하게 나갔다.
지훈의 얼굴에 ‘아차.’하는 심정이 그대로 드러났다.
순간적으로 지은의 눈빛이 싸늘하게 변하며 지훈에게 닿았고 지훈은 헛기침을 하며 뚝배기에 얼굴을 묻을 듯 숙여 국밥을 마셨다.
그러다 사레가 들려 켁켁 댔다.
물을 마시려 했으나 언제 다 마셨는지 컵은 텅 비어 있었다.
그때 지은이 제 컵을 내밀었고 지훈은 그녀의 눈치를 보며 컵을 받아 들고 물을 마셨다.
그제야 조금 살 것 같은지 벌겋게 변했던 얼굴이 제 빛을 찾아갔다.
지은이 수저를 놓고 팔짱을 낀 채 멍하니 있었다.
지훈과 지은은 국밥집에서 나왔고 먼저 서로 들어가려던 지은을 지훈이 잡아 세웠다.
그러곤 대뜸 한다는 말이.
“김지은, 우린 팀이야.”
“그래서 뭐.”
“너랑 난 파트너고.”
“본론.”
“같은 서 형사이기 이전에 너랑 난 경찰대 동기고 친구야.”
지훈의 말에 지은은 웃었다.
그가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 이해했기 때문이었다.
혼자 끙끙 앓고 있지 말라는 거다.
“고맙다.”
지은은 먼저 서로 들어갔고 지훈은 지은의 뒷모습을 보며 한숨을 내쉬고는 지은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
고개를 숙이고 걸어가는 바람에 앞에 지은이 멈춰 있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
둘은 부딪혔다.
지은은 앞으로 몸이 기울었고 지훈이 앞을 보았을 땐 지은이 넘어진 뒤였다.
지훈은 그렇게 엎어질지는 몰랐던지 깜짝 놀라 지은을 일으켜 세워주었다.
지훈이 연신 괜찮냐며 지은을 붙잡고 물었지만, 지은은 아픈 기색은 고사하고 그에게 화도 내지 않았다.
지훈이 미간을 살짝 좁히며 그녀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김지은?”
바로 앞에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못 들었을 리 없을 텐데도 지은은 자신의 어깨를 잡은 지훈의 손을 밀어내고 발걸음을 옮겼다.
마치 지훈이 모르는 사람을 붙들고 지은을 부른 것 같이 되어버렸다.
지훈은 현재 머릿속을 가득 채운 ‘설마’라는 생각에 서둘러 그녀의 뒤를 따랐다.
그들이 강력계에 발을 들이자, 남자 선배의 얼굴이 1팀 회의실에서 빼꼼 나왔고 눈동자를 요리조리 굴리다 그들을 발견했다.
그들에게 ‘빨리 와.’라는 입모양을 보였고 지훈은 느긋하게 걸어가는 지은의 손을 잡고 회의실로 뛰어갔다.
늦게 들어온 그들을 태경이 한 번 흘겼고 그들이 자리에 채 앉기도 전에 입을 뗐다.
“러디 사건이 미제로 넘어가게 됐다.”
“네?! 아직 미제로 넘어갈 정도로 시간이 지나지는!”
“이번 케이스는 사건을 이어갈 새로운 단서가 없으니, 미제로 넘어갈 수밖에 없어. 그 대신 우리 쪽으로 사건 하나 더 들어왔으니까 섭섭하게 생각하진 말고.”
태경은 남자 선배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상현이, 브리핑.”
태경의 말에 앉은 것도 아니고 선 것도 아닌 애매한 자세로 있던 상현이 앞으로 나갔다.
화이트보드 앞에 선 그에게 시선이 쏠려 있어 모두 새로 들어 온 케이스에 집중한 듯 보였다.
겉으로 보기엔 그랬다.
브리핑이 끝나고 현장으로 갈 사람이 지훈와 지은으로 정해졌고 그들은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다시 나가야 했다.
* * *
둘은 차에서 내렸고 과학수사팀이 철수하고 싸늘함만이 남아 있는 현장에 발을 디뎠다.
이번 사건은 아직 살인미수로 보고 있는 총기사건인데 신고 된 총기 소지자뿐 아니라 합법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 총기를 소지한 자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지은은 후자에 더 높은 가능성을 두고 있었다.
신고 된 총기 소지자가 자신의 총기를 사용하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하는 게 합리적이었으니까.
또한 이 사건은 계획 살인으로 보고 있었다.
총기 소지가 자유롭진 않은 나라이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아, 아직은 살인미수.
“우리 우선 총기 소지자부터 훑으러 가자.”
“혼자 가. 난 현장을 조금 더 봐야겠어.”
“탐문수색 범위가 나왔으니까 같이 움직여야지! 우린 파트너!”
“반반. 넌 이 둘. 난 이 둘. 여기만 총기 소지자가 넷이나 몰린 이유가 뭐야?”
지은이 자신이 말을 둘에 대한 인적 사항이 적힌 종이를 빼고 파일을 건네주었다.
지은은 먼저 현장에서 벗어났고 지훈은 깊은숨을 내뱉고는 지은의 뒤를 따랐다.
지훈은 자신이 전화하면 꼭 받으라는 말을 몇 번이고 강조를 한 뒤에야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뗐다.
지은은 그와 반대 방향으로 발걸음을 뗐지만, 지훈이 현장에서 보이지 않을 때쯤 다시 현장으로 돌아왔다.
폴리스라인 안으로 들어가 시신이 발견되었을 당시 자세를 표시해 놓은 하얀 테이프 앞에 퍼질러 앉았다.
누가 보면 현장 훼손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지은은 양반다리를 하고 중지로 관자놀이를 톡톡 두드리며 한동안 시신이 있던 곳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현장을 조금 더 둘러보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고 그런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는 이도 있었다.
5분쯤 지났을까.
지은이 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고 간간이 지은의 비웃음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그 뒤 전화를 끊고 자리에서 일어난 지은.
행선지를 정한 듯 거침없이 발을 움직였다.
도착한 곳은 현장에서 도보로 3분도 되지 않는 어느 아파트였다.
지은은 경비원에게 경찰공무원증을 보여주며 수사 협조를 부탁했다.
경비원은 지은에게 목적지로 갈 수 있는 문을 열어주었다.
지은은 엘리베이터에 올랐고 7층을 눌렀다.
7층에서 내린 지은은 마주 보고 있는 두 문 중 오른쪽 문 앞에 서서 초인종을 눌렀다.
대답이 없어 한 번 더 초인종을 누르려 할 때 인터폰으로 ‘누구세요?’하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은은 품에 넣었던 경찰공무원증을 다시 꺼내 자신의 신분을 확인시켜 주었다.
“경찰입니다. 사건 수사 중에 여쭐 것이 있어서 왔습니다.”
여자가 문을 열기를 기다렸다.
여자는 조금 망설이는 듯싶더니 곧 문을 열어주며 지은을 안으로 들였다.
꽤 잘 사는 집처럼 보였다.
여자는 마실 것을 내어 오겠다며 잠시 부엌으로 갔고 그런 여자를 한쪽 눈썹을 살짝 올린 채 묘한 눈빛으로 보는 지은이었다.
그러다 지은은 집 안을 둘러보기 위해 시선과 발걸음을 옮겼다.
지은은 가구의 나 있는 조그마한 흠집 하나도 놓치지 않고 훑어보는 듯했다.
“형사님?”
“……….”
“저기, 형사님!”
“아, 네.”
지은은 여자가 자신을 잡고 불렀을 때야 뒤돌았다.
거실로 가 내어준 자리에 앉았다. 여자는 지은의 사선에 앉았다.
여자가 내온 차가 담긴 찻잔에 손을 대기도 전에 지은은 삐딱한 자세로 입을 열었다.
“난 경찰이라고 했지, 형사라고 말한 적이 없는 것 같은데. 내가 온 이유를 알고 있으신 것 같네요? 아, 제가.”
보통은 사람이 오면 온 이유에 관해 묻기 마련이다. 그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 여자는 어떤 수사라는 것도 모르면서 지은을 집 안으로 들였다.
여자는 일순간 입을 다물었고 당황했다.
지은은 그 순간을 확실히 보았고 지은의 표정은 아이가 재미있는 장난감을 발견이라도 한 듯 흥미로움을 표출하고 있었다.
“제가 사건의 목격자니까요. 경찰이 제게 올 이유는 그 사건 이외에는 없잖아요. 그런 사건은 보통 형사님들이 조사하시고요.”
목격자라.
무엇에 대한 목격자인 것일까.
일어난 살인미수를 직접 목격한 것일까?
아니면 죽어가는 피해자를 본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