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을 포함한 신입 둘과 그들의 선배 한 명이 현장에 도착했다.
쭈그려 앉아서 시신이 있던 곳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지은이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
“왜 그래?”
선배는 이유를 물었다.
하지만 지은은 아무것도 아니라며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어떻게 유부남인 것 말고 공통점이 하나도 없는 걸까요? 하고 많은 유부남 중에 이 사람들이 타깃이 된 건 또 왜지?”
“살해로도 모자라 시신 훼손까지 이리도 심하게 한 걸 보면 확실이 정신 상태가 바른 놈 같진 않아.”
지은의 말에 동기인 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휴, 현장에 와도 더 나오는 건 없네. 폴리스라인 안에 들어왔는데, 뭐 하나 잡히는 게 없어. 여기가 분명 범행 현장인데 말이야.”
지은은 선배의 말에 갸우뚱했다.
지은은 무엇을 의심하고 있는 것일까.
자신이 무언가를 의심하고 있다는 걸 인지하고 있기는 한 걸까.
그들은 사건 현장을 벗어나 서로 향했다.
서로 가는 차 안은 고요하기 그지없었다. 운전석에 오른 지훈은 어째서인지 심기가 불편해 보이는 지은의 눈치를 계속 살폈다.
고요함을 견디지 못한 지훈이 선배에게 말을 걸었다.
“이전에도 비슷한 케이스가 있지 않았습니까?”
“내가 아는 한도에서 생각해 봤는데, 러디 사건은 유일무이해.”
잭의 카피캣도 아니고.
피해자 사이에 연관 관계가 있는 것도 아니고.
지은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서에 도착했다.
이만 귀가해도 좋다는 태경의 말에 지훈은 웃으며 대답했다.
지은은 집으로 돌아갔다. 집안은 텅 비어 있었고 핸드폰을 꺼내 메시지나 전화가 온 기록이 있는지 보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지은은 소파에 앉았다.
러디 사건에 대해 골똘히 생각했다.
“개인에 대한 원한이 아니다. 지인이 아니다. 피해자들끼리 묶이는 범주는 ‘유부남’이라는 것 하나.”
과연 하나일까?
이외에 공통으로 묶이는 무언가가 분명 있을 거라는 감이 들었다.
“무차별 살인이라고 보기에는…….”
우욱!
지은은 순간 헛구역질이 올라왔다. 서에서부터 지끈거리던 머리가 더 아파오는 것 같았다.
소파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직행했다. 그 짧은 순간에 드문드문 보이는 알 수 없는 장면은 지은은 괴로움과 혼란 속으로 밀어 넣었다.
이내 지은은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하지만 곧 지은은 눈을 떴다.
바닥에서 일어나 세면대를 잡았다.
고개를 들어 본 거울에 비친 지은의 모습은 꽤 초췌했다.
얼굴과 손에 묻는 물기만 수건으로 대충 닦아내고 화장실에서 나왔다.
거실에서 한쪽 벽을 대신하고 있는 커다란 창문으로 걸어갔다.
그녀의 걸음걸이도,
분위기도,
러디에 대해 생각하고 있던 조금 전과는 판이했다.
지은은 창문을 열었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 들어왔다.
노을이 지고 있었다.
노을을 바라보는 지은의 표정은 뭔가에 대한 강한 증오심이 어려 있었다.
* * *
오후 10시 50분.
텅 빈 집안.
깜깜한 거실.
초인종이 울렸다.
환해진 인터폰 모니터로 보이는 사람은 해진이었다.
그것도 꽤 취한 듯한.
사실상 집으로 잘 찾아온 것도 용한 듯 보였다.
해진은 치킨을 보여주며 얼른 문을 열어 달라고 했다.
해진의 목소리가 집 안에 울렸지만 이내 고요함이 목소리마저 삼켜버렸다.
인터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가 없어 고개를 갸웃하고는 사물이 두 개로 겹쳐 보이는 시야로 간신히 비밀번호를 눌러 안으로 들어갔다.
치킨 상자를 식탁 위에 놓고 지은이 자고 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그녀의 방문을 열었다.
그러나 휑한 침대를 보고 지은이 집에 없다는 걸 확인하자마자 한겨울에 계곡물로 뛰어든 것처럼 정신이 바짝 차려졌다.
제대로 서 있는 것조차 힘들어 보였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지은아!!”
해진은 곧장 집을 나갔다.
집에서 보이지 않던 지은의 모습은 유흥가에서 볼 수 있었다.
비틀거리며 고함을 지르는 사람들도 있었고,
그들을 제지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쓰레기 더미에 쓰러져 자는 사람들도 있었다.
다 벗은 것 같이 입은 여자들과 그 여자들에 들러붙어 있는 남자들은 꼴사나웠다.
“아가씨, 우리 2차 가자. 2차.”
팔짱을 끼고 지켜보던 지은에게 들러붙은 중년의 남자.
지은은 실없는 웃음이 나왔다.
2차라.
남자가 말하고 있는 2차가 모두가 예상하는 그 2차일 것이라 지은은 확신했다.
지은이 아무 말 없이 가만히 그를 바라보고만 있자 같잖은 웃음소리를 내며 그녀를 어딘가로 이끌었다.
그래, ‘그곳’으로.
지은이 바로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니 끈덕지게 달라붙으며 다시 잡은 지은의 양어깨에 힘을 주었다.
거지 같은 게.
지은이 거칠게 남자를 내치자 짜증이 난다는 표정을 짓다가 금세 음흉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지은은 피하거나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 되레 남자의 목을 세게 움켜쥐었다.
“네깟 놈이 어떻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야. 어디까지 하나 보고 있었는데 가관이네.”
“케, 켁! 이 년이!”
“년? 네 주둥이를 어디까지 찢어 놓으면 그딴 소리가 안 나오려나. 안 그래도 앞뒤 생각 안 하고 날뛰는 년 하나 때문에 짜증 나 죽겠는데 너까지 신경 긁지 마. 이제까지 그년 손에 안 죽은 게 용하다.”
새하얗게 질려 눈이 뒤집어질 때쯤 지은은 손을 놓아주었다.
남자는 숨을 고르기에 바빴고 그사이에 그녀는 그 거리를 빠져나갔다.
불이 꺼진 빵집 앞에서 지은은 그 안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일까.
“지은아!”
해진의 목소리에 지은이 몸을 틀었다.
해진을 본 지은의 표정은 불쾌한 것을 보기라도 한 듯 일그러졌다.
지은의 표정에 해진이 일정 거리를 두고 멈춰 섰다.
그대로 가만히 대치 상황을 유지하길 2분.
해진이 다시 발걸음을 뗐다.
그리고 조심스레 불러보았다.
“러……디?”
그가 부른 이름에 지은의 얼굴을 일그러졌다.
“그년 이름 꺼내지 마.”
“말투가 제인도 아닌데. 너 누구야? 새로운……!”
“새로운? 제멋대로 해석하고 행동하는 건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네. 천재 프로파일러라는 타이틀이 울겠어.”
지은은 먼저 발걸음을 뗐다.
해진은 조용히 그녀의 뒤를 따랐다.
집이 있는 골목에 들어서자, 그들이 들어오기 전까지 고요했던 골목에 그들의 발걸음 소리가 꽤 크게 울렸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 곧장 자신의 방으로 향하는 지은.
곧바로 문을 잠그고 따라 들어온 해진이 방으로는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침대 위를 쓱─.
책상 위를 쓱─.
손으로 쓸어보다가 책상 위에 있는 포스트잇에 시선이 멈췄다.
지은은 포스트잇을 한 장 떼어 볼펜으로 간단한 메모를 남겼다.
밖에서 열리지 않도록 잠근 지은의 방문을 열기 위해 해진은 방 열쇠를 찾아 헤맸다.
겨우 찾은 열쇠로 지은의 방문을 열었고 지은이 침대 위에 이불을 덮고 곤히 자는 모습을 보았다.
해진은 문을 닫기 전 지은의 모습을 확인하듯 한 번 더 눈에 담았다.
깊은숨을 내뱉으며 거실의 불을 끄고 해진이 들어간 곳은 침실이 아니라 서재였다.
오른쪽 벽면을 가득 채운 책들.
그들 중 눈높이에 꽂혀 있는 책을 한 권 뽑았다.
단단히 꽂혀 있는 책갈피를 빼고 자리에 앉아 책을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미 몇 번이고 읽어서 너덜너덜해질 정도의 책 상태였지만 그는 책상 위에 올려 둔 공책을 펴 고시 공부를 하듯 필기까지 해가면서 읽기 시작했다.
그렇게 두어 시간이 지나자, 해진의 눈꺼풀이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눈을 부릅뜨며 조금 더 책을 보길 바랐지만, 해진은 그대로 책상에 엎어져 버렸다.
잔다는 것을 인식조차 못 한 채 잠이 들어버린 해진은 해가 중천에 떠서야 눈을 떴다.
등 뒤에서부터 오는 빛에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지은이.”
곧장 지은의 방으로 갔지만 지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핸드폰. 내 핸드폰 어디 있지?”
폰을 찾기 위해 지은의 방을 나가려는 순간 자신의 앞으로 지는 그림자에 뒤돌았다. 창문이 열려 있었다.
바람에 휘날리는 커튼이 해진의 그림자까지 삼키고 있었다.
해진이 방을 나가는 걸음을 하나 내디뎠는데 뭔가 밟히는 소리가 났다.
발을 들어 보니 도르르 말린 포스트잇이 그의 발에 의해 납작하게 밟혀 있었다. 해진은 포스트잇을 주워 들어 펼쳤다.
그곳엔 지은과 다른 필체로 쓰인 메모가 있었다.
「누나, 내가 꼭 지켜줄게.」
남자였다.
지은을 ‘누나’라고 한 것으로 미루어보았을 때 필체의 주인은 분명히 남자였다.
해진은 거칠게 머리를 쓸어 올리며 포스트잇을 손에 꼭 쥔 채 지은의 방을 나갔다.
바람이 통할 리 없는 지은의 방에 왠지 모를 스산함이 자리 잡았다.
해진은 책상 위에 놓인 폰을 집어 들었다.
신호음이 길게 이어졌다.
그동안 해진은 또 한 장의 포스트잇을 발견했다. 이것은 지은의 필체였다.
「난 깨웠어. 밥 먹고 가. 오늘 일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지만.」
신호음이 끊겼다.
상대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상대는 해진을 ‘아줌마’라 불렀다.
“어, 지훈아. 지은이 서에 있어?”
“지은이요? 네. 요 며칠 계속 지은이던데요? 다행이죠?”
“아……. 응. 알겠어. 무슨 일 생기면 꼭 연락하고.”
“네, 아줌마.”
해진은 폰을 내려놓고 두 포스트잇을 번갈아 보다가 조금 튀어나와 있는 책꽂이를 옆으로 밀었다.
그러자 책꽂이에 가려져 있던 커다란 블랙보드가 드러났다.
하얀 마카로 적어 놓은 것들을 쭉 훑다가 하얀 마카를 들어 뭔가를 더 써내려 갔고 자석으로 지은의 방에서 발견된 포스트잇을 붙였다.
“두 개가 아니라 세 개였어. 나랑 만난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아니, 그것보다 설마 기억이 공유된 건가? 젠장. 배제할 수 없는 가능성이잖아.”
해진은 신경질적으로 제 머리카락을 마구잡이로 헝클다가 팔꿈치를 책꽂이에 박아버렸다.
지은이 보았다면 분명 비웃을 광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