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인간의 죄는

by 한도담

해진은 지은이 제발 강력계는 피했으면 했다.

하지만 언제 그녀의 소망을 들어준 적이 있냐는 듯 지은이는 버젓이 강력계에 가게 되었다고 밥상머리에서 말했다.

지은이 속한 곳은 강력 1팀.

경찰청을 포함한 채로도 눈에 띄는 실력자들이 모인 집단이 있는 팀이기도 했다.

경감 팀장에 팀원들이 전원 경위라니.

이렇게 모인 지는 겨우 세 달이었으나 들어오는 사건 족족 해결을 해냈다.

아, 듣자 하니 지은과 경찰청 동기인 지훈을 제외한 이들은 일전에 한 번 함께 근무한 적이 있었다.

이 시기에 이들을 저 팀에 넣은 건 인사과의 노림수가 분명하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지은이 지원을 한 것이라….

아니, 그럴 수도 있지 않은가. 지은이를 잘 파악해서 일부러 빈자리를 냈다든가!


“프로파일러 박해진입니다. 기타 궁금하신 사항은 없으리라 생각하고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해진이 있는 곳은 지은이가 있는 경찰서다.

신입이 없었다면 이런 소개 따윈 하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안다고 티를 낼 수도 없고.


“1888년 화이트채플에서 일어났던 연쇄살인사건, 살인마 잭을 기억하실 겁니다. 그가 되살아났다고 할 정도로의 시신 훼손 정도만 보면 그를 동경하는 어떤 이의 소행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앞에 앉은 이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피의자는 세계적으로 유명하고 잔인한 살인마의 수법을 참고해 그를 떠올릴 만한 자신만의 살인법을 이슈화함과 동시에 러디라는 존재가 있다는 것을 각인시키고 싶어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피해자들의 목엔 러디의 ‘R’이, 피해자들의 입 안엔 ‘RUDDY THE RIPPER’라는 인쇄 쪽지가 남은 것입니다.”

“결국 알아낸 건 사회에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려고 잭의 흉내를 내는 미치광이가 있다?”

“핵심을 잘못 짚었네요. 러디는 잭과 다른 또 하나의 살인마란 말입니다. 오로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 위한 목적으로 잭의 살해 방법을 모방하진 않았을 거란 겁니다. 러디는….”


지은이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의 온 신경은 다른 형사들처럼 해진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아니, 터져도 왜 하필 강남서가 관할일 때 터지냐고. 미치겠네, 정말. 프로파일링을 안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랬다간 날 뚫어지게 쳐다보는 저놈에게 털릴 거란 말이야. 저 귀신같은 놈.’


“야, 박씨. 아니, 프로파일러님 뭐 하십니까? 계속하시죠?”


해진은 그의 말에 뒤돌아 피해자의 시체 사진을 보고 질끈 눈을 감았다 떴다.

깊은숨을 내뱉으며 다시 뒤돌아 자신을 이상하게 보고 있는 그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뒤돌아서서 피해자 시체를 보고 두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깊은숨을 내뱉고는 다시 뒤돌아 나를 이상하게 보고 있는 그들을 향해 말했다.

러디는,


“자신이 범죄를 저지르는 이유를 우리가 밝혀주길 바라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뭘 근거로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죠?”


무엇을 근거로?

확실한 근거가 있긴 했다.

하지만 이걸 그들에게 말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설령 이게 나한테 재앙을 가져온다고 해도 말이다.


“그러게. 꼭 우리가 모르는 무언가를 알고 있는 것 같아.”


난 날카롭게 쳐다보며 알고 있었다면 이 지긋지긋한 미제사건을 하루빨리 종결시키지 않았겠냐며 쏘아붙였다.


“범인이 자신의 표식을 남겼다는 건 주목받는 것을 즐기는 성격이라고 추측할 수도 있지만 조금만 틀어서 생각을 해보면 우리를 유도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있다고 추측할 수도 있습니다.”


다른 사건보다 조금 힘들게 프로파일링이 끝나고 팀장과 해진은 회의실에 남았다.

팀장은 이때를 기다리고 있었을 거다.

해진이 머쓱하게 서서 곁눈질로 눈치를 살피니 고개를 확 들며 그가 의심스럽다는 눈빛을 마구 쏘아댔다.


‘아, 뭐 어쩌라고. 나도 내 선에선 최선을 다해 프로파일리을 해준 거야. 아까 그 말은 안 해주려다가 해준 건데!’


“평소의 너와는 다르네, 오늘. 용의자도 아니고 피의자를 확신하는 듯한 말투. 진짜 이상해. 솔직히 말해봐. 너 진짜 우리한테 줄 정보가 그것뿐이야?”

“난 그럴 수도 있지 않겠냐는 거지. 단순한 가능성을 열어두었을 뿐이야. 너한테 줄 정보도 그게 다고 내가 알고 있는 것도 그게 다야.”


* * *


해진이 프로파일링 해준 것과 아주 작은 단서만을 가지고 생각을 해봤자 나오는 건 없었다.

애초에 러디가 DNA를 남기고 간 것도 아니었고 쪽지 말고는 다른 여타한 단서도 없었기에.

지은의 옆에 앉아 있던 남자 선배가 머리를 헝클어뜨린 뒤 책상에 쾅 하고 머리를 박았다.

고개를 돌려 그 모습을 보고는 한숨을 쉬며 보고 있던 파일을 덮었다.

등받이에 등을 기대 까딱까딱하다가 넘어갈 뻔했는데 마침 그 뒤를 지나가던 그녀의 동기가 잡아줘서 우스운 꼴을 보이진 않았다.


“뭐 알아낸 거 있으십니까?”

“있으면 나랑 후배가 이러고 있겠냐…. 벌써 4차야, 4차. 야, 근데 프로파일러 말투가 좀 이상하지 않았냐? 진짜 범인을 알고 있는 듯한,”

“알았으면 말했겠죠. 뭐 한다고 질질 끌고 있겠습니까? 아까 아줌마도 그렇게….”

“아줌마?!”

친근하게 ‘아줌마’라고 부르는 지은에 의해 책상에 붙어 있다시피 했던 선배의 얼굴이 지은의 앞으로 왔다.

동기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지은은 뭘 잘못 말했나 싶어 되짚어보다가 자신이 해진과의 관계를 암시하는 말을 했음을 깨닫게 되었다.

뭐, 정확한 관계 정의까지는 아니었지만, 지인이라는 것까지?

이 바닥에서 초면에, 이름난 프로파일러를 ‘아줌마’라고 거리낌 없이 부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으니까.


“아하하. 하하.”


지은은 어색한 웃음소리를 내며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시선을 피해 서 밖으로 나가니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해진의 목소리가 지은을 불러왔다.

못 들은 척하려다가 집에 가면 옆에서 왜 아무도 없는데 모른 척했냐며 찡찡댈 것이 분명했기에 몸을 틀어 손을 흔들고 있는 곳으로 갔다.

자신의 앞에 그녀가 오자 머리를 쓰다듬으며 ‘괜찮아?’라고 물었다.

무엇을 괜찮냐고 물어보는 것일까.

지은은 그것이 경찰 생활에 관해 묻는 것으로 추측하고 괜찮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난 네가 정보계로 갔으면 했는데. 늘 내가 바라는 일은 이뤄지지 않더라.”

“강력계에 가고 싶다고 내가 늘 말했었잖아. 새삼스레 뭘. 여기 선배님들 잘해주시니까 걱정하지 말고.”


잠깐의 정적이 흐르고 지은이 다시 입을 뗐다.


“근데 이런 연쇄살인은 보통 청에서 수사하지 않아? 우리가 관할서라고 해도…….”

“다른 팀도 아니고 강남서 강력 1팀이니까. 경감에 경위 네 명이 한 팀인 경우는 너도 처음 보지 않니? 내가 확신하는데 이렇게 붙여놓은 건 인사과의 음모야!”


그렇게 소리치니 지은이 해진의 등을 짝 소리 나게 때리며 이상한 말 좀 하지 말라고 했다.

프로파일러씩이나 되어서 말이다.


“이 사건, 아줌마가 계속 프로파일링했던 거야?”

“아, 응. 그때도 나오는 건 없었어. 그 쪽지밖에. ……다행이지.”

“어? 다행이라고? 그게 무슨 말이야? 다행이라니?”

“아, 아, 그, 그게! 그래, 네가 강력계에 잘 적응하고 있어서 다, 다행이라고. 너한테 당연히 잘해줘야지. 내 새낀데.”


그제야 ‘그거 아는 사람 송지훈밖에 없어.’라며 웃었다.

지은은 들어가 봐야겠다며 집에서 보자는 말을 마지막으로 다시 서 안으로 들어갔다.

해진은 지은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보고 있다가 그녀가 서 안쪽으로 들어가고 난 뒤에야 차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룸미러에 매달려 있는 졸업식 때의 사진에 햇빛이 반사되어 얼굴만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래, 두 사람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도 모르게 말이다.


해진이 차를 몰고 간 곳을 다름 아닌 가온성당.

대한민국에서 제일 큰 성당이었다.

미사가 없는 시간이라 그런지 안이 텅 비어 있었다.


또각─. 또각─.


해진의 구둣발 소리가 대리석으로 된 바닥과 부딪히며 성당 안을 가득 메웠다.

습관적으로 십자가와 가장 가까운 자리에 앉아서 두 손을 모으고 멍하니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을 보았다.

그는 눈을 감았다.

그러면 늘 그렇듯, 누구나 그렇듯 눈꺼풀이 덮여 새까매진 시야는 밤하늘보다 더 짙은 어둠을 그려냈다.

그게 끝이라면 참 좋을 텐데.

해진은 얼마 지나지 않아 언젠가부터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있는, 짧지만 잔인한 영상 하나를 다시 꺼내보고야 말았다.

자신도 모르게 멈췄던 숨을 급히 들이쉬며 호흡을 가다듬었고 눈꺼풀을 올려 십자가를 비추고 있는 영롱한 불빛을 눈에 담았다.


“오늘도 오셨군요.”


해진의 바로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포근한 엄마를 떠올리게 하는 수녀였다.

해진은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살짝 숙였고 수녀도 그를 향해 고개를 살짝 숙였다.

수녀는 해진이 앉았던 자리 바로 옆에 앉지 않았다. 좁은 통로를 사이에 끼고 반대쪽 자리에 앉았다. 표면적인 거리상으론 그리 먼 거리가 아니었으나 실제 둘 사이도 그렇게 먼 거리가 아닐까.


“자매님이 이 성당에 처음 오셨을 때가 벌써 10년 전이었던가요. 제가 처음 본 그날부터 늘 그늘진 얼굴이라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수녀의 물음에 해진은 입을 굳게 다물고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그를 한참이고 수녀는 가만히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십자가를 보았다.

곧 해진도 고개를 들어 십자가를 보았다.


“자신의 죄를 사하고자 오셨습니까? 아니면 자신의 죄를 고하고자 오셨습니까?”


웅성거림이 없는 휑한 성당에 수녀의 목소리가 작은 울림으로 그녀에게 다가왔다.


사하다.

고하다.


한 글자 차이였지만 그 의미는 너무나도 다른 말이었다.

이번에도 입을 열지 않을 것 같던 그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녀의 낮고도 아픈 목소리가 작게 울렸다.


“인간의 죄는 사하여질 수 없습니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고 하지 않습니까. 하느님께서 당신의 죄를 사하여 주실 것입니다.”

“……절대.”

“…….”


해진은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을 보고 있는 수녀에게 시선을 옮기며 한마디하고는 성당을 빠져나갔다.

수녀는 그녀가 성당을 빠져나가는 것을 보면서도 붙잡을 수 없었다.

한 마디 내뱉는 것조차 힘겨워 보였던 그의 뒷모습은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았으니까.

운전석에 올랐지만, 그는 시동을 걸지 않았다.

그저 핸들을 붙잡고 머리를 핸들에 몇 차례나 박아버릴 뿐.

그녀의 어깨는 작게 들썩였고 앙다물었던 입에서는 채 막지 못한 울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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