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불안한 하루하루

by 한도담

도담경찰대학교 대강당.

무대 위에 제복을 입은 한 여자가 올라갔고 많은 이들의 박수를 받았다.

강당에서 각자 가족들을 찾아가는 제복들이었다. 이후에는 예상했던 대로 사진을 찍어 자신들의 모습을 남기기에 바빴다.

그녀도 누군가를 찾고 있는 듯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고 있었다.

순간 뒤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놀라 스텝이 꼬여 앞으로 넘어지고 말았다.

인기척 주인의 눈이 휘둥그레지며 그녀의 앞에 앉자마자 미는 힘에 뒤로 넘어졌다.


“아줌마가 잘못한 거잖아. 싫어하는 거 뻔히 아는 짓을 왜 해?”

“놀라게 하기 전에 네가 스텝이 꼬여서 넘어진 거거든?! 야, 그리고 내가 밖에서는,”

“싫다고 했을 텐데. 언니든 엄마든 입에서도 꺼내지 말고 어서 가자.”


강당을 그대로 빠져나가려는 그녀를 붙잡고 꽃다발을 안겨주었다. 그녀가 잠시 미간을 좁히며 꽃다발을 보는 사이에 목에 걸린 카메라로 그녀의 모습을 찍어댔다.

플래시는 물론이오, 찰칵찰칵 소리까지 나니 그녀가 잠자코 넘어갈 리가 있겠는가.


“아, 좀!”


버럭 화를 냈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고 어서 포즈를 취하라고 재촉할 뿐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사진을 커다란 현수막에 박아 걸어버릴 것이라는 장난 섞인 협박도 함께 했다.

평소라면 헛소리하지 말라며 그의 말을 무시하듯 먼저 자리를 떠버렸겠으나 날이 날이기 때문일까.

그녀는 못마땅한 표정을 하면서도 그의 말에 응해주었다.

입꼬리가 올라가며 하나, 둘, 셋을 외쳤고 그녀가 어색한 미소를 짓는 찰나의 순간을 가까스로 카메라에 담았다.

밖으로 나와서도 몇 장 찍고. ‘다행히’ 둘의 모습이 한 장에 담긴 사진도 있었다.

기분이 좋았는지 ‘나이에 맞지 않게’라기보다는 직업적인 분위기와는 다르게 방방 뛰며 맛있는 걸 먹으러 가자며 그녀의 손을 잡고 끌었다.

메뉴는 당연히도 고기였다. 그녀

예약을 해두었던지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박해진으로 예약했습니다.”


직원은 명단을 확인하더니 웃으며 자리로 안내해 주었다.

자리에 앉아 ‘말씀드렸던 거로 준비해 주세요.’라고 그가 말했고 직원은 알겠다며 고개를 한 번 숙이고 나갔다.


“하여튼 고깃집만 오면 눈이 뒤집히지.”

“사돈 남 말 하네. 아, 근데 오늘 바빠서 못 온다고 그랬잖아.”

“그렇게 말하는 것치고는 날 너무 찾던데? 후딱! 하고 왔지! 세상에 단 한 번뿐인 졸업식인데! 고등학교 졸업식 때 네가 못 가게 해서 얼마나 슬펐다고.”

“아줌마가 하는 일이 후딱 할 수 있는 일이야? 대충 하고 온 거 아냐?”

“날 뭐로 보고! 아니거든! 고기 왔네. 구워줄 테니까 많이 먹기나 해라.”

“많이 먹어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고 댁인 것 같….”


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녀의 주머니에 있던 폰이 요란스레 울려댔다.

액정을 확인했다. 그녀의 표정이 떨떠름한 것을 보니 달가운 사람은 아닌 듯했다.

종료 버튼을 밀어 전화를 끊어 버리고 전원도 꺼버렸다.

해진은 그녀의 대학 생활이 어땠는지 물어보지 않았다.

그녀가 대학 생활이 어떻다, 친구가 어떻다, 말하는 일도 없었고 가만히 다니는 것을 보니 괜찮은 것 같아 딱히 물어보지 않았다.

물어볼 필요가 없을 것 같아서가 아니라 그녀가 싫어할 것 같아서가 정확한 이유였다.

현재 둘은 서로에게 심적으로나 외적으로나 가장 가까운 사람인 것은 확실했지만 둘 사이에는 묘한 벽이 하나 존재했다.

그녀가 그것을 인지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그의 차 앞좌석에 나란히 올라 안전띠를 맸다.

이번에는 해진의 폰이 울렸다.

몰고 가던 차를 갓길에 잠시 세울까도 생각했지만 여의치가 않아 블루투스 이어셋으로 연결해 전화를 받았다.

상대가 하는 말에 해진의 표정이 조금 진지하게 변했다.

통화를 끝낸 뒤에는 그녀의 눈치를 보며 말할 타이밍을 찾고 있었다.

그 시선을 느끼지 못할 리 없었던 그녀가 창밖을 향하고 있던 시선은 그대로 한 채 무심한 말투로 ‘말해.’라며 타이밍을 만들어 주었다.


“나……, 그, 뭐지. 그……사건 때문에…….”

“여기서 내려줘.”

“안 돼!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

“대낮이야. 다른 사람도 아니고 경찰대학을 수석으로 입학해서 졸업까지 한 사람이야. 우습게 보지 마.”

“우습게 보는 게 아니라 걱정이 돼서 그렇지. 너 데려다주고 가도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마.”


기어이 그녀를 집 앞까지 가서 내려주었다.

그러고도 마음이 안 놓였던지 조수석 창문을 내리며 물가에 아이를 내놓은 엄마처럼 충고를 잊지 않았다.

누가 초인종을 눌러도 열어주지 말고 늦을지도 모르니 문 잘 잠그고 밤에는 돌아다니지 말라는 말 등을 늘어놓으며 오히려 그녀가 들어가지 못하게 붙잡았다.

다른 사람 집에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둘이 사는 집에 들어가 있는 것인데도 뭐가 그리 불안한지.

그녀가 시끄럽다고 말한다고 해서 늘 하던 잔소리를 안 할 사람도 아니었던지라 고개를 계속 끄덕이고 있으니, 이번엔 건성으로 듣지 말라는 잔소리를 하나 더 얹었다.


“하, 알겠다고요. 박해진 프로파일러님!”

“최대한 빨리 올게. 되도록 밖에 나가지 마, 지은아. 알겠지?”

“알겠다니까? 어서 가. 또 김친구한테 까일라.”

“다녀올게.”


해진은 지은에게 손을 흔들었고 지은도 건성으로라도 손을 흔들어주며 해진을 빨리 보내려 했다.

그리고 집으로 들어가 그의 말대로 철컥─. 하고 문을 닫았고 이어 띠리릭─. 소리와 함께 문이 절로 잠겼다.

어느 순간부터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든 그녀의 표정은 그 누구보다도 싸늘하게 얼어 있었다.

마치 해진에게 보여줬던 얼굴은 가면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처럼 말이다.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코트를 벗어 옷걸이에 걸어두고 침대에 걸터앉자 잠시 휘청하더니 지은의 입꼬리가 씩 하고 올라갔다.

이내 ‘푸하하하!’ 하는 웃음소리가 방 안을 가득 메웠다.

한쪽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가 내리며 눈물이 쏙 빠질 정도로 웃고 난 뒤에야 진정이 되었다.


“멍청한 것들. 가방끈 긴 것들이 제대로 하는 게 없어.”


지은은 제복을 벗어 침대에 던져 놓았다. 옷장으로 가서 간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뒤에 다시 집을 나섰다.

지은이 돌아온 시각은 오후 11시. 얼굴엔 혐오가 가득했다.

씩씩대며 욕을 내뱉길 몇 차례.

머리를 마구잡이로 헝클더니 잠옷으로 갈아입지 않고 침대에 그대로 드러누워 이불을 덮었다.

무엇을 생각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머릿속으로 무언가를 열심히 그려보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얼마쯤 지났을까. 침대에서 벌떡 일어난 그녀는 제 옷차림을 이리저리 보더니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


“모르는 게 재미있을까, 아는 게 재미있을까.”


알 수 없는 물음을 허공에 던지고 방안을 돌아다녔다. 그러다 결정을 내렸는지 옷장 문을 열고 잠옷을 꺼냈다.

자신이 입고 있던 옷은 고이 개어 옷장에 넣고 잠옷으로 갈아입었다.

침대에 몸을 뉘고 얼마 뒤, 그녀는 잠에 빠져든 듯 일정한 숨을 내뱉었다.

지은이 잠자리에 들고 얼마 뒤, 누군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왔다. 지은을 집 앞에 내려주었던 해진이었다.

거실에 아무도 없는 것이 눈에 들어오자, 해진은 손에 든 가방을 소파에 던져두고 곧장 지은의 방 앞으로 가 노크 없이 문을 열었다.

얌전히 이불을 덮고 누워 있는 모습에 안도감이 밀려와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문고리를 잡은 채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해진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일까.

짙은 한숨과 함께 힘을 넣고 일어나 방 안으로 발을 디뎠다.

해진은 지은이 누워 있는 침대에 걸터앉아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너는 이곳에 발 들이지 않길 바랐는데.’라고 말했다.

소파에 던져뒀던 가방을 챙겨 들고 거실 불을 껐다.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 전등을 켰다.

의자를 빼 앉으며 가방을 책상 위에 올렸고 그 안에서 파일 하나를 꺼낸 뒤 가방은 다시 내렸다.

파일의 겉표지에 적힌 사건명은 ‘Ruddy The Ripper’였다.

3년 전을 마지막으로 미제사건으로 넘어간 연쇄살인 사건. 정확히 나흘 전에 러디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그래, 목에 R이라는 글자가, 칼로 새겨 매끄럽지 못한 곡선을 가진 글자가 새겨져 있었으니, 러디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렇기에 이 사건의 공식적인 명칭은 ‘R 연쇄살인 사건’이다.

공식적인 명칭과 실제 명칭이 다른 이유는 모방범죄를 구분하기 위함이었다.

즉, 본 사건이 3년 전 사건의 연장선상인 이유는 경찰 내부 관계자 중에서도 그 사건을 담당하는 사람들만 알고 있는 시신에 남겨진 또 다른 메시지가 있기 때문이다.

‘Ruddy the Ripper’라는 쪽지.

시신의 굳게 다문 입안을 보관함 삼아 넣어둔 범인을 나타내는 쪽지를 말이다.

파일 안에 있는 종이에는 사건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함께 이번 피해자의 인적 사항이 적혀 있었고 그에 겹쳐 사건에 따른 사진, 피해자의 사진이 꽂혀 있었다.

물론 죽은 모습이 말이다.

파일을 잡은 두 손에 힘이 들어갔다.

범인에 대한 분노 때문에 그런 것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일까.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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