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by 한도담

혜원여고 정문.

오후 10시.

야자를 마친 학생들이 정문으로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다들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버스에 올라 목적지로 향하는 길.

자리에 앉은 한 여학생은 멍하니 창밖을 보다가 벨을 누르고 정류장에서 내렸다.

정류장에서 집까지는 가로등 불빛만이 길을 비추고 있었다.

그 길을 쭉 따라 도착한 집.

초인종을 눌렀지만, 인터폰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없었다.

여학생은 문을 열고 들어가 현관에서 비밀번호를 눌렀다.

안으로 들어가며 핸드폰을 꺼내보니 메시지 한 통이 와 있었다.

발신자는 ‘아줌마’로 저장된 사람이었다.


‘회식이 있어서 늦게 들어갈 것 같아. 미안해!’


그녀는 내용을 훑었다.

핸드폰을 화장대에 두고 옷을 갈아입었는데, 잠옷은 아니었다.

위아래로 검은 옷에, 검은 모자, 그리고 검은 장갑까지 착용했다.

수상쩍은 모습으로 집을 나선 그녀가 향한 곳은 어느 빌라 앞이었다.

가로등이 비추지도 않는 어두운 곳에 서서 한 동의 입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넥타이를 고쳐 매며 상기된 얼굴로 나오는 남자가 있었다.

순간 그녀의 눈빛엔 혐오감이 짙게 어렸다.

저벅저벅.

그녀가 향하는 길의 끝엔 남자가 서 있었다. 그가 인기척을 느끼기도 전에 등에 칼을 꽂았다.


“악!”


남자는 그대로 고꾸라졌다.

그녀는 남자는 내려다보았다.


“뭐 하는……! 너 뭐야!”


남자가 일어서려고 했지만, 그녀가 쭈그려 앉아서 거리를 좁히는 바람에 놀라, 몸이 일으켜지지 않았다.


“집에선 회식한다고 알고 있겠지? 애는 아빠를 기다리다가 잠이 들었을 거고, 부인한테는 조금 있다가 들어간다고 했을 거야.”

“……너……. 도대체…….”

“경찰조사를 해도 저년이 내연녀인 건 모를 거야, 그렇지? 하지만 난 알 거든. 네가 쓰레기만도 못한 새끼라는 거.”


그녀는 말이 끝나자마자 정확히 경동맥을 찔러 남자의 숨통을 끊어 놓았다.

남자는 눈을 뜬 채로, 입가엔 피가 흥건해져서 죽어버렸다.

이렇게 자신의 마지막을 장식할 줄 몰랐겠지.

남자는 서서히 식어갔다. 금방 현장을 떠날 줄 알았던 그녀는 아직 할 일이 남은 듯했다.

시간이 조금 흐른 뒤에야 그녀는 할 일을 끝냈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아, 아프게 죽여야 했는데. 죽이는 데 너무 몰두했다.”


안타까움이 잔뜩 묻어나는 말투였다. 그러나 자신과 시선을 마주하지 못하는 남자를 내려다보는 눈빛은 매서웠다.


“뭐, 다음엔 아프게 잘 죽여야지.”


그녀는 별수 없다는 듯 어깨를 한 번 으쓱이곤 현장을 떠나려고 했다.

그때 깜빡한 것이 생각났다.


“아, 맞다.”


주머니에서 하얀 종이쪽지를 꺼냈다. 참혹한 시신의 상태와는 달리 참으로 곱게 접혀 있었다.

그녀는 비릿하게 웃으며 쪽지를 입안에 넣어주고 마지막 흔적을 남긴 뒤 살인 현장을 유유히 빠져나갔다.

다음날, 아파트 주민이 출근하기 위해 깔끔하게 차려입고 아파트에서 나왔다.

어젯밤, 남자가 나왔던 동이었다.

여자는 도도한 걸음걸이로 자신의 차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그러다 문득 돌린 고개에 걸린 사람은 얼어붙은 채 서 있는 경비원이었다.

이내 경비원은 뒤로 자빠졌고 여자가 화들짝 놀라 경비원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괜찮으세요? 뭐가 있길래 그렇게……. 꺄악!!”


여자는 비명을 지르며 경비원처럼 주저앉아버렸다.

경비원이 겨우 정신을 차린 뒤 신고했고 여자를 일으켜 세웠다.

경비원은 현장이 훼손될 것을 우려해 앞을 지키고 있었고 여자는 경비실에서 정신을 챙겼다.

경찰들이 신속히 도착했고 그들 역시 처참한 시체의 상태를 보곤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 이게 무슨.”


한 경찰이 무전으로 무언가 전달하기 시작했고 이내 과학수사대와 형사들이 도착했다.

현장을 폴리스라인으로 출입이 제한되었다. 이후 순식간에 퍼진 살인사건 소식에 기자들이 몰려들었고 그날 밤 9시 뉴스의 첫 소식으로 국민에게 알려졌다.

일명 R 살인사건

범인을 특정 지을 수 없는 단서만을 남긴 채 흔적도 없이 사라진 살인범.

차마 말로는 묘사하기 힘들 정도로 잔혹하게 살해되었기 때문에 일각에서는 희대의 살인범 ‘Jack The Ripper’의 귀환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었다.


“연쇄살인만 아니면 되는데.”


그렇게 말하면서도 시그니처를 남긴 것을 보고 확신할 수 있었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을.

수,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