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week8

by 한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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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멘토 모리 (Memento mori)는 라틴어로 '죽음을 기억하라'는 말입니다. 우리의 육체는 언젠가 끝이 있는 존재라는 사실은 변함없는 진리입니다. 이 말은 삶을 두려워하라는 경고라기보다 지금의 선택을 조금 더 의식하며 살아가라는 초대에 가깝습니다. 삶이 유한하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나의 선택은 무엇이 달라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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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초, 성 삼위 일체, 1427

르네상스 원근법의 발전을 예로 들 때 샘플로 나오는 그림입니다. 영상도 사진도 없던 그 시절에 어둠 속 이 그림을 보았던 당시 피렌체 사람들은 어떤 기분이었을까요? 많은 사람들이 성당에 그려진 벽화 속으로 걸어갔다고 할 정도로 당시 대단히 혁신적인 그림입니다. 이 그림에서 더욱 놀라운 것은 하단에 있는 석관마저도 ‘그림’이라는 사실이에요.

해골이 안치된 석관에 쓰인 글자는 “나는 한때 너희와 같았고, 너희 또한 언젠가 나처럼 될 것이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르네상스 초기 작품이지만 중세의 ‘메멘토 모리’ 전통을 이어 죽음을 공포가 아니라 삶의 유한함을 상기시키는 장치로 사용되고 있어요.



“죽음의 춤 (Danse Macabre)” 들어보셨나요? 죽음의 춤은 14–15세기 유럽에서 등장한 시각적·문학적 주제예요. 흑사병과 전쟁으로 죽음이 일상 가까이에 있던 시대의 집단적 심리를 반영합니다. 그림의 특징은, 해골이 살아있는 사람을 줄지어 데려가는데, 신분이 다양합니다. 왕, 교황, 귀족, 농부 등 신분이 다를지라도 죽음 앞에서 우린 모두 절대적으로 평등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죠. 흑사병 앞에서 죽음을 아주 가까이 느꼈던 그들은, 삶의 덧없음과 교회의 도덕적 메시지(회개)를 위한 그림을 많이 남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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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시대에 유행하던 '죽음의 춤'을 추는 인간의 모습
image.png 조반니 로렌초 베르니니, 로마 산타마리아 델라 비토리아 성당의 코르나로예배당 바닥, 1645-1652

죽음과 관련한 명언들을 몇 개 살펴볼까요?

“여기에 유한한 인생을 올바르게 마치기 위해 명심할 교훈이 있네. 그것은 바로 죽음의 춤, 누구나 이 춤을 배워야 하네.” - 파리 생노이상 수도원 벽화에 적힌 대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삶을 생각하는 것이다.” - 몽테뉴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죽음이 아니라 한 번도 진정으로 살아보지 못하는 것이다.”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죽음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가 존재할 때 죽음은 없고 죽음이 올 때 우리는 없다.” - 에피쿠로스



image.png 니콜라스 푸생, 아르카디아에도 나는 있다((Et in Arcadia ego), 1637-38

이 그림은 Nicolas Poussin(니콜라 푸생)이 이상향 아르카디아에서 목동들이 한 무덤의 비문을 읽는 장면을 그렸어요. 무덤에 적힌 문구는 “Et in Arcadia Ego”→ “아르카디아에도 나(죽음)는 존재한다” 즉, 가장 평화롭고 이상적인 세계에서도 죽음은 피할 수 없다는 메시지입니다.


그림이 등장하는 목동들이 이 말에 놀라기보다 차분히 사유하는 태도를 보이는데, 이는 죽음을 이성적으로 성찰하는 ‘고전주의적 태도’를 보여줍니다. 무덤은 죽음을, 이상적 자연은 아르카디아(낙원)를, 사유하는 목동들은 인간의 철학적 인식을, 오른쪽에 있는 여성은 진리, 기억 등을 의인화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니콜라 푸생(1594–1665)은 바로크 시대에 활동했지만, 감정의 폭발보다는 질서·균형·이성을 중시한 고전주의 화가예요. 로마에서 고대 조각과 신화, 역사화를 연구하며 “그림은 생각하게 해야 한다”는 태도로 철학적인 회화를 구축했죠. 루이 14세가 애정하는 화가이기도 했어요. 후에 자크루이 다비드로 대표되는’ 신고전주의’로 이어지는 미술사의 디딤돌이 되는 화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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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민,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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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민,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

언젠가 우리 모두가 죽는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지 않고 바라보고, 직면할 수 있다면 그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수용적 태도를 연습할 수 있지 않을까요. 죽음에 압도당하지 않고 관찰하고 대상화시킨다면, 이것은 결국 내 살아있는 시간에 대한 나의 태도를 생각해보게 합니다. 죽음은 어쩔 수 없는 것이지만,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내 삶의 태도는 어쩔 수 있으니까요.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한 물음에 대한 답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물음이고, 이는 곧 내 삶을 어떻게 사랑해야 할 것인가의 질문입니다. 이 세상에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던져진 나 자신에게, 어떻게 살고 싶으냐고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뮤지텔러 빠삐짱님의 음악 추천

클래식 음악에서 <죽음>이라 하면 대부분 레퀴엠(진혼곡)을 떠올리시죠? 그래서 레퀴엠 빼고 다른 곡을 들려드리고 싶어서 골라봤어요. 바로 Max Richter의 <On the nature of daylight>입니다. 반복되는 현악기의 선율과 느리게 진행되는 화성을 들으시며 마사초의 <성삼위일체> 아래서부터 쭈우욱 위로 시선을 올려가시며 감상해 보세요. 미니멀한 사운드가 절제된 서정성을 더욱 잘 표현해서 애도, 슬픔, 성찰의 공감을 불러일으킵니다.

https://youtu.be/8jJO0SV19l8?si=aO7bOGAWXhOArZu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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