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10
도도한 사유 한 조각! 이번 주 주제는 '견(見)'입니다. 우리는 매일 많은 것을 보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정말로 나는 ‘보고’ 있는 것일까요?
프랑스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진정한 발견의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갖는 데 있다.” 우리는 감사하게 매일 눈앞에 펼쳐진 풍경들을 익숙하게 바라보면서 살아가고 있어요. 하지만 익숙함은 우리를 편안하게 만들어 동시에 우리를 ‘익숙함의 함정’ 속에 빠트리고 말지요. 분명 보았지만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생겨요. 많은 것들을 하수구에 물이 새어나가듯 그냥 지나쳐 버립니다.
오늘 하루, 잠시 멈추어 주변을 바라볼까요. 늘 보던 것 중에 오늘 새롭게 보이는 것은 무엇인가요?
박웅현의 <여덟 단어>에 나오는 단어 중 하나는 '견(見)'입니다. 제대로 본다는 것은 시인의 눈으로 바라보것으로 비유하셨습니다. 일상에 흔해 빠진 것들은 이미 나에게 익숙하다는 이유로, 안다는 이유로 눈을 닫고 더 이상 공들여 바라보지 않습니다. 하지만 시인의 눈은 익숙함을 ‘시간’을 들여 천천히 바라보고 그 흔함에서 특별함을 발견하는 것이에요.
책에서 인용된 한 영화의 대사가 제 머리를 때렸습니다. 영화 <시>에서 주인공 윤정희 씨가 다른 할머니들과 문화센터에서 시 창작 강의 듣는 장면을 인용했는데요.
“여러분, 사과를 몇 번이나 봤어요? 백 번? 천 번? 백만 번? 여러분들은 사과를 한 번도 본 적 없어요. 사과라는 것을 정말 알고 싶어서, 관심을 갖고 이해하고 싶어서, 대화하고 싶어서 보는 것이 진짜로 보는 거예요. 오래오래 바라보면서, 사과의 그림자도 관찰하고, 이리저리 만져도 보고 뒤집어도 보고, 한 입 베어 물어도 보고, 사과의 시민 햇볕도 상상해 보고, 그렇게 보는 게 진짜로 보는 거예요.”
저는 이 글을 읽으면서 사과를 오래오래 바라봤을 ‘세잔의 눈’이 생각났어요. 세잔은 자신이 사과에 대해 ‘알고’ 있는 선입견으로 바라보지 않고 , 눈앞에 있는 이 사과의 사과다움, 사과 그 자체를 편견 없이 바라보고자 했어요. 사과의 일반화된 모습을 그리고자 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사과에서 느껴지는 고유함을 보여주고자 했기에 그는 사과를 썪을 때까지 바라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는 것에서 벗어나 대상의 본질을 바라보고 싶어 했던 그의 프로젝트는 어쩌면 살면서 도달할 수 없는 진리의 세계일 수도 있죠.
“내가 그토록 간절히, 그토록 오래 바랐던 목표를 이룰 수 있을까?”라고 세잔은 유언 같은 말을 했어요. 그 목표는 끝내 도달할 수 없는 곳이라 할지라도, 목표를 향한 매일의 붓터치는 그에게 분명 의미가 있습니다. 눈앞의 사물을 매번 새롭게 바라보는 Eye Training을 했겠죠. 그래서 그는 세상이 정해 놓은 세계가 아닌, 자신만의 시점으로 바라본 사과의 본질을 하나하나 그림에 기록했습니다. 이리저리 돌아보며 여러 시점에서 바라보았던 그의 사과는 단순화되고 파편화되었습니다. 이는 후대 화가들에게 다시점 회화, 입체주의 등 현대미술을 열어 준 사건이 되었고요. 무언가를 깊게, 의미 있게 바라본 그의 행위는 당연하게 여겨진 인식의 습관을 깨부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거죠.
책에서 소개한 조은 시인의 <언젠가는>의 일부도 함께 볼까요"?
수많은 시간을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며
꽃들이 햇살을 어떻게 받는지
꽃들이 어둠을 어떻게 익히는지
외면한 채 한 곳을 바라보며
고작 버스나 기다렸다는 기억에
목이 멜 것이다
때론 화를 내며 때론 화도 내지 못하며
무엇인가를 한없이 기다렸던 기억 때문에
목이 멜 것이다 (중략)
이번 주에 꼭 소개해드리고 싶었던 작품입니다. 존 에버렛 밀레이의 <눈먼 소녀>라는 작품이에요. 두 자매가 두 손을 꼭 잡고 있어요. 언니의 목에는 시각장애인이라는 표시(Blind)라고 쓰인 종이가 붙어 있네요. 동생이 쌍무지개가 뜬 모습을 언니에게 말해주고 있는 것 같아요. 언니는 눈을 감고 있지만 어쩌면 우리보다 더 많은 것을 느끼고 마음에 품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손끝으로 풀을 만지고, 공기를 느끼고, 손을 맞잡은 동생의 숨소리와 말을 경청하며 그 말들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을 테니까요.
늘 보던 것 중에 새롭게 보이는 것이라.. 떠오르는 음악이 있네요. 그 유명한 라벨의 볼레로!! 이 곡에서는 하나의 멜로디가 처음부터 끝까지 거의 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악기가 하나씩 바뀌며 등장할 때마다, 우리는 그 멜로디를 완전히 다른 색으로 듣게 됩니다.
풍경은 그대로인데, 빛에 따라 느낌이 달라지는 것처럼요.
어쩌면 세상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보는 방식이 조금씩 변하는 것인지도 모르지요.
오늘 이 음악을 들으며, 익숙한 것 속에서 새롭게 보이는 순간을 한번 찾아보시길~
https://youtu.be/_ej61TDC5L8?si=nq2miTfwtLdtfb9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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