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聽)

WEEK11

by 한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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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우리는 ‘견: 보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았는데요, 세상을 이해하는 또 하나의 길은 ‘듣는 것’ 일지도 모릅니다. 유학 경전 『대학』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시이불견 청이불문 視而不見 聽而不聞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한다.)


그 이유는 마음이 그 자리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들을 청(聽)’이라는 글자에는 귀(耳)와 눈(目), 그리고 마음(心)이 함께 들어 있습니다. 듣는다는 것은 단지 소리를 통과시키는 일이 아니라 잠시 멈추어 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일이라는 것이죠. 내 말만 끝없이 반복하며 듣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았는지 반성해 봅니다. 그리고 오늘 하루는 누구의 말을 마음으로 귀담아 들었는지 생각해 볼까 해요.



image.png 디에고 벨라스케스, 마리아와 마르타의 집에 계신 그리스도, 1620, 런던 내셔널 갤러리

성경 속 두 자매, 마르타와 마리아의 이야기에는 흥미로운 대조가 있습니다. 언니 마르타는 귀한 손님(예수)을 대접하려 분주히 움직였지만, 동생 마리아는 그분의 발치에 앉아 가만히 이야기를 “들었지요.”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LUKE 10:41-42)


벨라스케스의 그림의 전경에는 마늘을 찧으며 분주한 우리네 일상과, 온전히 귀 기울이는 고요한 순간(배경)을 한 화면에 담고 있습니다. 상대를 이해한다는 것은, 나의 분주함을 잠시 멈추고 내 영혼에 상대의 언어가 머물 자리를 내어주는 일이겠지요? 이번 한 주, 우리도 마리아처럼 소중한 사람에게 '온전한 경청'이라는 가장 좋은 선물을 시도해 보는 건 어떨까요?


이 작품은 화가 중의 화가라 불리는 스페인의 거장 디에고 벨라스케스 작품입니다. 그가 19살 무렵, 고향 세비야에서 그린 초기 걸작인데요. 당시 그는 부엌의 일상과 정물을 사실적으로 담아내는 '보데곤 Bodegón' 양식을 즐겨 그렸어요. 세부 표현이 놀라울 정도로 사실적입니다. 생선비늘, 마늘, 달걀 등 부엌에 있는 물건의 묘사에서 그의 그림 실력이 드러나고 있네요.


마르타는 일하는 게 억울해서 일까요? 일하면서도 노파에게 핀잔을 듣는 듯 억울하고 심통나 보이는 얼굴이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네요. 언니 마르타의 손에 핸드크림도 발라주고, 어깨도 토닥여주고 싶습니다.



뮤직텔러 빠삐짱의 음악 추천


또띠아님의 ‘들을 청’에 대한 설명 중 ‘단지 소리를 통과시키는 일이 아니라 잠시 멈추어 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일’이라는 구절이 가슴 깊이 와닿습니다. 음악과 함께 하는 삶은 언제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삶인데, 나는 얼마나 나를 감싼 소리에 정성을 들여 귀 기울였는지 반성해 보게 되네요. 하지만 이 곡을 들을 때나, 또 연주할 때면 언제나 음 하나하나에 정성껏 숨죽이며 귀 기울였던 기억이 납니다.


브람스가 말년에 작곡한 Intermezzon Op. 118, No. 2, 브람스가 여러분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가만히 귀 기울여 들어보세요.^^

https://youtu.be/LtFxpnBhLLg?si=47JpZgOKknPb2WG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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