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

WEEK12

by 한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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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끊임없이 말하고 반응하며 살아갑니다. 적극적으로 반응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압박이 느껴져서일까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시간은 어쩐지 비어 있는 것처럼 느껴지거나 시간을 헛되게 쓰인다 생각할 때도 많습니다.


그래서 조용한 순간을 견디지 못하고(여백공포) 무언가로 채우려 합니다. 말을 꺼내고 소리를 틀어야 안심이 되죠. 어쩌면 우리는 비어 있는 시간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나를 마주하는 순간을 피하고 미루고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프랑스 철학자 Pascal은

인간의 모든 불행은 조용히 혼자 있을 수 없는 데서 온다.

라고 말했습니다. 침묵은 공백이 아니라 잠시 멈추어 나에게 질문을 건네는 시간입니다. 바쁘게 흘러가는 하루 속에서 잠시 말을 좀 쉬고 고요한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요. 묵언수행을 단 몇 분만이라도 해보면 어떨지요.(저도 이게 참 어렵습니다. 특히 자식들 앞에서요) 며칠 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보았던 <침묵>이라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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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메트로폴리탄 헬레네 쉐르프벡 특별전에서 본 그림입니다. Helene Schjerfbeck, ,Silence,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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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하면 떠오르는 화가는 Giorgio Morandi (1890–1964)입니다. 모란디는 가장 ‘고요한 혁신’을 했던 화가로 불립니다. 그의 정물화에서는 침묵과 고독 그리고 단순함이 반복되며 고요한 일상을 드러낸 듯 보입니다. 그것은 그가 살아가는 방식이자 사유의 방식이었어요. 작품에서 또한 불필요한 말을 걷어내어 본질만 남겨 단순하면서도 밀도감이 느껴집니다.


평론가 프란체스코 아르칸젤리는 “모란디는 조용했지만 어떤 것도 놓치지 않는 눈을 지녔다.”라고 말했는데요, 그는 말없이 관찰을 통해 사물과 세계를 바라보았고 은둔자처럼 살았지만 소수의 친구들에게는 다정한 사람이었다고 전해집니다. 무엇을 그렸냐는 질문에 “그저 병일뿐입니다.”라고 대답했어요. 사물이 가진 있는 그대로를 침묵 속에 존중하려는 태도를 엿볼 수 있습니다.


그는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 같은 방에서 작업하며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의 미세한 차이를 느끼기 위해 커튼의 위치를 밀리미터 단위로 조정했고, 병과 상자 같은 사물들을 0.5cm씩 움직이며 올바른 관계가 만들어질 때까지 수없이 다시 배치했다 전해집니다.


매일 같은 일의 반복이지만, 침묵 속에서 느껴지는 미세한 진동으로 그 차이점을 찾아낸다는 것은 실로 대단한 감각을 집중해야 하는 일입니다. 이미 다 안다고 생각하는 관계와 대상들에게서 새로움을 찾으려는 그 0.5cm의 노력은, 세계에 대한 탐구의 자세이자 불가능해 보이는 그 경계를 허물고자 했던 화가의 다짐이 아니었을까요. 아무것도 아닌 듯 무심해 보이는 그의 그림은 그렇기에 더 많은 진실을 담고 있는 듯합니다. 모란디의 그림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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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디와 그의 작업실



뮤직텔러 빠삐짱의 음악 추천


이번 주 주제 <침묵> 하면 바로 떠오르는 곡이 있습니다. 에스토니아 작곡가, 아르보 패르트의 <거울 속의 거울>입니다. � 피아노와 바이올린이 서로 마주 보며 한 악기의 선율이 올라가면 다른 악기의 선율은 하행하는 단순한 패턴을 반복합니다. 제목처럼 거울 속의 거울을 들여다보는 느낌, 음악의 순수와 투명성이 느껴지죠.

침묵에 잘 어울리는 이 음악이 여러분의 고요한 시간, 나만의 묵언수행에 평안한 동반자가 될 수 있길 바랍니다~

https://youtu.be/n37bNmVggtU?si=jmqKH1YXjNjj_6AP


#도도한사유한조각_침묵 #도슨트한도연 #뮤직텔러빠삐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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