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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도연 Nov 02. 2022

달리는 가족: Tenafly 5k

동네잔치, 5K


미국에는 타운마다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행사들이 하나씩은 있는데, 그중 가장 흔한 행사 중 하나가 5k이다. 5k는 5km를 완주하는 것. 우리 동네의 5k 공식 명칭은 "Tenafly 5k Run and Dog Walk"로 동네 주민뿐 아니라 강아지까지 참여할 수 있는 타운의 행사이다. 물론 타 지역 사람들도 참여할 수 있다.

타운 내 6개 학교(고등학교 1, 중학교 1, 초등학교 4) 학생들과 교직원 교장선생님까지 홍보하고 참여하며 적극적으로 대회를 알리는 우리 동네의 큰 잔치. 타운 내 위치한 병원, 음식점, 피트니스센터 등 소상공인들의 십시일반의 지원금과 참가비, 그리고 주민들의 자원봉사로 행사가 이루어진다. 우리 가족은 미국에 와서 맞이하는 첫여름, 2019년에 처음 참여했었다. 초등학교 다니던 아이들과 우리 부부는 참가하는 데 의의를 두며 분위기를 즐기면서 걸어서 완주했다. 그럼에도 결승점에서 온갖 환대를 해주시는 동네 주민, 선생님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2022년, 판데믹 동안 중단되었다 다시 열리는 이 대회에 우리 넷은 다시 도전해 본다. 이번엔 걷지 않고 (그동안 달리기 취미가 생겼으므로) 뛰어서 들어올 예정이다! 아자!!  

http://www.tenafly5k.com/

파스타 파티

전통적으로 달리기 주최 측에서 대회 전날 중학교 카페테리아에서 저녁식사를 준비해 준다.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은 기념 티셔츠와 빕(등번호판)을 픽업하면서, 타운 내에 있는 레스토랑의 다양한 음식을 뷔페처럼 맛보며 축제 전야제를 즐긴다. 이 만찬의 정식 명칭은 "파스타 파티"이다. 달리기를 할 때 쓰이는 에너지가 탄수화물이라서 마라토너들은 대회 전에 탄수화몰을 주로 섭취하는 게 관례인데, 이 때문에 이름이 이렇게 붙여진 듯하다. 갖가지 음식이 있었지만 단연 파스타는 종류별로(화이트소스, 토마토소스, 베지테리안 파스타 등) 다양하기도 했다.

다음 날 축제 분위기를 가장 먼저 느낄 수 있는 곳, 내일의 뛸 걱정은 잊은 채 밤늦도록 카페테리아는 시끌벅적 분주하다. 이곳에서 발론티어로 봉사하는 아이들도 대부분 딸 학교 친구들, 친구 엄마들이다. 중학교 졸업반인 큰 딸 지안이도 2시간 행사시간 내내 학교 오케스트라 선생님, 친구들과 함께 배경음악을 담당했다. 평소에 근엄해 보이시던 지휘자 선생님께서 그날은 직접 바이올린을 들고 나와 아이들과 함께 2시간 내내 축제의 분위기를 살려주시면서 음악을 연주해 주셨다.  




 따로 또 같이 


판데믹 동안 우리 부부는 새롭게 달리기 취미가 생기다 보니, 그동안 아이들과 함께 뛰기도 많이 했다. 그런데 성향이 전혀 다른 두 아이들. 첫째 아이는 지금도 "엄마 나 땀 좀 흘리고 싶어"하면서 운동화 신고 혼자 나가서 동네 한 바퀴를 돌고 온다. 달리기를 취미로 갖게 된 첫째와 달리, 둘째 아이는 달리기 이야기만 나오면 갑자기 배가 아프거나 테니스를 치러 나가고 싶다고 하면서 온갖 핑계를 댄다.


사실 우리 가족이 5k에 참여하는 목적은 달리는 것이 좋아서이기도, 동네잔치여서 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우리 집 막둥이가 땀 흘리는 성취감을 경험해 봤으면 하는 것이었다. 엄마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예쁜 옷이나 운동화, 맛있는 음식으로 아무리 꼬셔도 달리기는 너무 보링(boring)하다며 운동을 미루는 통통이 둘째. 달리기를 좋아해 주길 바라는 건 엄마의 욕심이라는 건 나도 안다.


당일 날 아침 아이들에게 물었다.

"얘들아, 너희들 오늘 누구랑 뛸 거야? 엄마 아빠는 너희들이랑 뛰고 싶은데?"

"지수야, 너 이번에 누구랑 뛸 거야? 아빠랑? 엄마랑?"


나는 미안하지만 아빠와 뛰고 싶다는 말을 듣고 싶었다. 힘들다는 짜증을 받아주며 속도를 한없이 낮추어 뛰어야 하는 희생(?)을 아빠에게 넘기고 싶었다. 그런데 돌아오는 대답은 "나는 친구 ***랑 걸을 건데?" 파스타 파티에서 만난 친구와 신나게 수다를 떨더니 이런 계획이 있었구나. 내심 '걸으면 땀도 안 날 텐데'라고 생각했지만 강압적으로 뛰게 하면 달리기를 싫어할까 봐 말도 못 하고, 나는 "그래 알겠어. 그럼 마지막에는 심장 터지듯이 finish strong 해야 돼!! 엄마가 기다리고 있을게! 그럼 나는 지안이랑 뛰고 남편은 죽어라 뛰어서 PR(개인 신기록) 세워!"  

요이 땅! 이제 맘껏 뛰세요~

큰딸 지안이와 첫 5K 데이트!  


스타트 라인에서 지안이의 같은 학교 남자아이들을 만났다. 에릭이라는 아이가 나에게 와서 말도 없이 악수를 청하길래 당연히 한국 아이인 줄 알고 "이름 뭐니~~ 열심히 뛰어!" 했는데, "엄마, 에릭은 중국애야!"라고 지안이가 웃으면서 말한다. 처음 보는 친구 엄마에게 열심히 뛰라고 악수를 건네는 그 아이도, 친구들끼리 달리기한다고 우르르 몰려서 출발선에 선 아이들 모습도 내가 어렸을 때는 가져보지 못한 경험들이었기에 그 모습이 너무 예뻤고 또 설레었다. 살짝 긴장한 듯 보이는 딸아이의 표정은 또 왜 이리 귀여운지 엄마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멋진 중딩 친구들일세!

보통 레이싱 대회에는 1 mile(1.6km)마다 워터 스테이션이 있는데,  여긴 1km마다 워터 스테이션이 있었다. 워터 스테이션에는 발론티어 하는 아이들이 물컵을 들고 기다리고 있고, 아는 친구들 나오면 하이파이브도 하며 서로 응원해 준다. 여긴 기록을 위해 심각히 뛰는 사람도 있긴 하겠지만, 대부분 완주를 목표로 천천히 그렇지만 열심히 대회를 즐기는 사람이 더 많다.

1km마다 마련된 Water Station

3KM 정도까지는 지안이가 달려 보았던 거리여서 나와 이야기하며 무리 없이  달렸다. 처음에 오버페이스를 하지 않게 옆에서  또한 일부러  천천히 함께 달렸다. 우리는 피니시 스트롱해야 하니까! 그런데 3km 이후 코스부터는 언덕도 많고 뛰어보지 않은 거리여서인지 지안이가 말이 없어지기 시작했다(아플  말고는  없이 말하는 우리 딸인데). "지안아 여기 아는 길이지? 천천히 뛰어. 근데 걷지는 말고 아주 아주 천천히.  연습해봐서 무조건   있어. 늙은 엄마도 하잖니!!"  말을  해보았는데 온갖 인상을 쓰면서 달리는  . 점점 걷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나는 마치  밖에서 끊임없이 소리 치는 복싱 감독처럼 지안이에게 응원의 말을 쉼 없이 건넸다. 그러면서 머릿속은 '완주 계획' 세우느라 바빴다.  번도 뛰어 보지 않은 거리였지만, 그동안 지안이가 달려왔던 것을 봤을  충분히 걷지 않고 뛰어서 완주할 거라 굳게 믿었다. "지안! 마지막 워터 스테이션에서 ‘한번  먹고, 중학교 운동장 코너가 나오면 그때부터 ‘심장 터지게 뛰기그전까지는 멈추지 말고 아주 아주 천천히 걷듯이 뛰면서 힘을 비축하자." 작전이랄 것도 없지만 세뇌 교육하듯 주문을 외우면서 딸에게 힘을 넣어주고 싶었다. 그렇게 느릿느릿 속도를 줄여 뛰다 보니 마지막 코너다.

주먹을 꽉 쥐었구나!

이 코너를 돌면 익숙한 중학교 운동장 옆길. 직진으로 되어있는 40미터 정도 되는 그 거리를 약속한 대로 미친 듯이 ‘함께’ 뛰었다. 호들갑스러운 푼수 엄마와 동생보다도 키가 작은 여리한 13살 소녀의 5k 합동 피니시. 지안이는 세뇌교육의 효과인지 정신력인지 모를 알 수 없는 힘으로 마지막을 약속대로 마무리했다. YES!! 결승전에는 아빠가 기다리고 있었고. 들어오면서 신났던 내 모습, 그와는 대비되게 입술이 바짝 마른 지안이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겨 주었다. 엄마와 첫 5k를 완주했던 이 기억이 오래 남아 있기를, 그리고 달리기를 좋아하기 시작한 이 아이가 나처럼 달리기로 위로받고 힘을 얻기를 바라본다.


지안이와 기념샷을 찍고, 친구와 같이 걷겠다 했던 막둥이를 기다린다. 마지막은 뛰기로 엄마랑 약속했는데 왜 이리 안 올까... 피니시 라인 끝에 서서 내내 기다리는데, 코너 끝에서 얼굴 빨개지도록 열심히 달려오는 우리 강아지가 보인다. 속으로 얼마나 웃음을 참았는지, 그래도 약속을 지키는 우리 딸 대견하다. "Go JISOO!!!" 목이 터져라 응원했다. 이런 엄마를 살짝 부끄러워하는 나이인 아이들이지만^^  




달리는 가족  


걸었든 뛰었든 우리 네 가족은 각자의 스타일대로 5k를 완주했다. 사진을 보면서 제일 신난 건 엄마였다는 건 분명하지만, 아이들에게도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길 바란다. 대회 때 몸에 부착된 번호판에 있는 칩으로 참가자들의 기록은 자동적으로 저장이 된다. 그 기록을 바탕으로 대회가 끝나고 나이대별로(학생들은 학년별로) 등수가 매겨지고 시상을 한다. 우리는 등수 안에 드는 건 전혀 기대를 하지 않았던 터라 마지막 열리는 시상식은 참여하지 않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온 남편은 등수가 궁금했는지 이메일을 확인하다 뜻밖의 뉴스를 접했다. 남편이 아닌 지안이가 2등 상을 받게 된 것이다. 8학년 여자 2등. 운동으로 상을 받는 우리 집 역사에 아주 특별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모두가 놀라 축하해 주었고 트로피까지 받았다.  내심 자기 실력이 궁금했던 남편. 결과에 살짝 실망한 그는 역시 어렸을 때부터 운동을 했어야 한다며, 딸들에게 "너희는 좋겠다"라는 말을 건넨다. 나도 부럽기는 하다만, 나이 40에 시작한 나의 달리기 이야기도 충분히 좋다! 감사한 오늘이다!

피니시 라인에서 가족사진 찰칵!
Family Health and Fitness Fair, 대회가 끝나면 이곳에 가서 커피와 빵을 먹어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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