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묻곤 한다. 달리기 하면서 지루하지 않으냐고, 음악이라도 들어야 하지 않느냐고.
나도 그랬다. 특히 로드런은.
처음 달리기를 시작한 곳은 성당 달리기 모임이었다. 우리는 토요일 새벽에 모여서 허드슨 강변을 따라 5마일 정도 정해진 코스를 뛴다. 초보인 나는 선배님들 뛰는 대로 따라다니느라 마음이 바빠서 지루할 틈 없이 로드런으로 달리기를 시작했다. 일주일에 한 번은 함께 밖에서 뛰고, 혼자 연습을 하고 싶을 땐 일주일에 이틀 정도 헬스장 트레드밀을 뛰었다. 한참이나 나의 운동 루틴은 그랬다.
달리기 덕분으로 땀 흘리는 뿌듯함도 알게 되고, 운동화 사는 재미도 붙이면서 달리기에 애착이 생겼다. 그래도 다른 사람과 함께 뛰는 경우가 아닌 "나 홀로" 로드런은 선뜻 마음먹어지지가 않았다. ‘이게 마음까지 먹어야 할 일인가?’ 라며 남들에겐 별거 아닐 수 있지만 나에겐 나름의 용기와 마음의 절차가 필요했다.
운동복을 입은 모습을 사람들 앞에서 드러내 본적이 많지 않았기에 부끄럽고 어색하기도 했고, 또 내가 힘들게 뛰는 모습을 차 안에서 누군가 본다는 것이 무척이나 쑥스러웠다. 내가 사는 곳 뉴저지는 보행 문화가 아니라, 대부분 차로 이동을 한다. 그러다 보니 나 자신도 밖에서 걷고 뛰는 사람들이 있으면 유심히 보게 된다. 그러니 달리는 내가 마치 동물원의 구경거리가 될 것만 같은 그런 쓸데없는 걱정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나 홀로 로드런은 말없이 같은 동작만 반복하는 것이 지루할 것 같은 생각에 그렇게 매력적이지 않았다. 나에게 달리기는 헬스장 트레드밀에서 원하는 동영상을 틀어놓고 천천히 뛰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러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우리를 찾아왔을 때, 나의 단골 헬스장은 무기한 문을 닫게 되었다. 온 가족 모두 집에 묶여있던 시간. 아이들 건강도 나의 취미생활도 한꺼번에 챙겨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고, 결국 우리 네 식구는 밖으로 나갔다. 반 강제적으로 로드런이 시작된 것이다. 아이들 운동시키려고 동네 한 바퀴를 걷고, 뛰고 하다 보니 운동복 입고 동네를 돌아다니는 내 모습도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일상이 되어갔다.
그런데 10살, 11살 딸들과 함께하는 운동은 거리면에서나 속도면에서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무엇보다 달릴 때만큼은 그 시간이 나를 위한 온전한 시간이었는데, 아이들을 챙기면서 운동을 하려니 뭔가 하다 만 듯한 느낌이 들고 예전만큼 즐겁지가 않았다. 미안 얘들아.
그러다 결국 새벽에 일어나 혼자 로드런을 시작하게 되었다. 묵혔던 땀 좀 맘껏 ‘뚝뚝’ 흘려보고 싶었다. 처음엔 혹시 지루할까 걱정이 되어 시계에 연결된 무선 이어폰까지 챙겨나갔었는데, 신기하게도 일단 뛰기 시작하고 나서는 내가 이어폰을 챙겨나간 것도 잊어버리고 음악도 없이 뛰기만 했다. 이 느낌 뭐지? 뭔가 홀린 사람처럼.
'혼자' 처음 거리를 뛰었던 날의 느낌이 내게 아직 남아 있다.
분명 내가 안다고 생각했던 그 장소가 익숙한 듯 낯설게 느껴졌다. 늘 차로 다녔던 나의 동네길. 내 두 발로 발을 구르며, 가쁜 숨을 몰아 쉬면서 그곳을 직접 느꼈다. 자동차 안에서는 몰랐던 모습이었다. 내가 안다고 생각한 사람의 모르는 모습을 발견한 것처럼, 새롭게 보이는 나의 동네길이 신선했다. 또 한편으론 수없이 다니면서도 느끼지 못했던 나의 무심함에 괜스레 머쓱하기까지 했다.
트레드밀에서 달릴 때는 나의 눈과 귀는 늘 바빴다. 달리는 내내 지겨울 것이라는 편견이 있었던 탓에 달리기와 드라마는 한 세트였다. 한 시간 동안 드라마 한 편과 함께 달리기로 땀까지 빼면 숙제 하나를 끝낸 것처럼 그렇게 나 자신이 자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그런데 로드런은 고요함과 분주함이 동시에 존재한다. 외부의 것으로 나를 채우지 않고 비워진 상태의 고요함. 그리고 그 고요함 속으로 욕심 없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생각의 분주함. 다람쥐 쳇바퀴 돌듯 트레드밀을 달릴 때와는 달리, 로드런은 떠오르는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게 했다. 그 생각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오간다. 예상치 못했던 나의 생각 주머니들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오고 가끔 스파크도 튀었다. 달리기 전에 "오늘은 이 생각을 정리해야지" 라며 계획한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달리는 길에서 나의 이야기는 늘 새롭게 펼져졌다. 그건 트레드밀에서 귀를 막고 스크린만 보며 바깥세상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였던 과거의 달리기와는 많이 달랐다. 세상의 이야기가 아닌, 나의 이야기였으니까.
나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 나 홀로 로드런은 그렇게 내게 왔다.. 차도 별로 다니지 않는 한적한 새벽시간, 가족들의 아침밥을 차리기 전 중년 여성의 달리기 의식은 하루의 루틴으로 자리 잡았다. 뛰는 동안 내내 몸속 오장육부가 아래 위로 흔들리고 땀구멍에서 노폐물을 뿜어 내는 동안, 나의 온갖 세포들이 살아나서 나에 대해 궁금해하며 묻는다.
지금 몸상태는 어떤 거 같아? 불편한 곳 있어?
몸을 느끼다 보니, 마음도 궁금해져 묻는다.
지금 마음은 어때? 어제 왜 아이들한테 화가 난 걸까?
나의 기분에 따라서, 어느 장소를 뛰느냐에 따라서, 날씨에 따라서 다채롭게 펼쳐지는 나의 이야기.
뛰는 내내 들숨, 날숨, 얼굴에 닿는 바람, 공기의 농도, 자연의 소리와 향기까지, 이 모든 것이 새로운 세계로 나를 안내한다.
달리기를 통해 나의 내면세계와 만나고, 내가 발을 디디는 곳의 새로움을 만난다. 뛰는 내내 나의 머릿속에서는 과거의 나를 만나 조우하고, 현재의 나를 응원하고 토닥이며, 미래의 나를 꿈꾸며 설렌다. 그러면서 나의 발도장을 지도에 콩콩 박아 나간다. 그 공간이 주는 나의 감정을 소중히 마음속에 담아두면서.
운동화 하나로 소중한 내면 여행을 하며 나를 채우는 이 시간.
이보다 더 강력하고 효과 있는 명상이 어디 있을까. 달리기 시작하길 참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