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장면, 그 실크로드에서 시작된 긴 여정

- 짜장면 이야기

by 한병철 Mikhail Khan

짜장면 한 그릇 속에 담긴 동서양의 만남


베이징 후통(胡同) 골목을 걷다 보면 특이한 풍경을 목격한다. 수백 년 된 전통 가게 옆으로 현대적인 짜장면 전문점이 줄지어 서 있다. 검은 춘장 소스가 어린 그 면발은 과연 어디에서 왔을까? 짜장면의 기원을 찾는 여정은 의외로 중국 서부 신강성의 광활한 타클라마칸 사막부터 시작된다.


부처님도 예수님도 아니먹지는 못하리라, 짜장면.


반면(拌面), 실크로드에서 탄생한 짜장면의 조상님


중국 서부 신강성에 가면 ‘반면(拌面빤미엔)'이라고 불리는 비빔국수가 있다. 거의 주식으로 먹을 정도여서, 반면(拌面)이 없는 식당은 거의 없을 정도이다. 들어가는 식재료에 따라 종류도 다양하다.

중국에서 ‘반면(拌面)’은 단순히 ‘비빔면’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간단한 조리법은 기원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깊은 역사를 지니고 있다. 한나라 시절, 실크로드를 따라 중앙아시아에서 밀가루 제분 기술과 면 만드는 기술이 중국 서부로 유입되었다. 신장 지역의 위구르족은 이 기술을 받아들여 ‘라즈멘(拉条子)’을 개발했다. 손으로 뽑아 만든 탱탱한 면발에 양고기와 야채를 볶아 올린 이 요리는 오아시스에서 힘겹게 생활하던 사람들에게 효율적인 에너지원이었다.

시간이 흘러 이 면 문화는 동쪽으로 퍼져나갔다. 산시성(陕西省)과 간쑤성에서는 식용유를 넣어 면이 붙지 않게 하는 ‘유면(油面)’이 발전했고, 복건성에서는 해안 지방의 풍부한 해산물을 활용한 ‘삼선반면(三鲜拌面)이 등장했다. 이 모든 변형은 하나의 공통점을 공유했다. 면과 소스를 따로 준비한 후 먹기 직전에 섞는다는 점이다.



짜장면부 : 짜장면에 바쳐진 詩.


짜장면 기원 가설


이제 짜장면의 기원에 관한 가장 설득력 있는 가설을 살펴보자. 중국 북방에서는 오래전부터 춘장(春酱)이라 불리는 발효된 콩장이 개발되어 왔다. 이 짠맛의 장은 단백질과 풍미를 보존하는 중요한 방법이었다. 실크로드를 통해 서부에서 전래된 반면 문화가 중원에 도착했을 때, 이 춘장과 만났다. 그리고 여기에 중국식 라이스 와인인 홍쇼(料酒)와 다양한 향신료가 더해지며,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짜장면의 초기 형태가 탄생한 것이다.

명나라 말기부터 청나라 초기, 특히 베이징에서는 이 짜장 반면이 서민들의 인기 있는 길거리 음식이 되었다. 당시 기록을 보면 ‘면을 삶아 검은 장에 버무려 먹는 요리’ 라는 묘사가 등장한다. 이는 오늘날의 짜장면과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다. 짜장면의 한자는 ‘작장면(炸醬麵)’으로써, ’장을 볶아 면위에 얹었다‘는 의미이다. 이 개념을 확장하면, 이태리 파스타도 ‘작장면(炸醬麵)’의 범주에 포함된다.

짜장면과 이태리 스파게티


중국인들은 이탈리아 파스타 국수가 중국에서 기원했다고 주장한다. 마르코폴로가 쿠빌라이의 원나라 궁정에 장기 체류하였고, 그가 이태리로 귀국해서 중국의 국수요리를 전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마르코폴로가 활동했던 13-14세기 훨씬 이전에 이미 중동과 시실리에 국수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이미 기원 5세기경에 아라비아에는 시실리면과 똑같은 건조 국수가 있었으며, 중동의 건조국수가 시실리로 들어와서 이태리 면의 기원이 된다. 심지어 서기 1세기의 폼페이 유적에서 국수의 흔적이 발견된다는 설도 있다. 국수 형태의 파스타는 이태리에서도 시실리면 이라고 불린다.

원래 ‘만물 중국기원설’ 이라는 말도 있다. 중국인들 머릿속에서는 세상 모든 것이 중국에서 기원한 듯 하다. 그러나 현재까지 확실하게 증명된 대표적인 중국 기원의 산물은 미세먼지와 각종 짝퉁 아닐까 싶다. 아, 물론 종이와 화약 나침반도 중국에서 기원한 것은 맞다.


화교가 이룩한 짜장면의 대중화와 이동 경로

짜장면이 진정한 대중적인 음식으로 자리 잡은 것은 19세기 말이었다. 청나라가 쇠퇴하고 사회가 혼란스러워지면서 많은 산동성 사람들이 생계를 찾아 한국과 일본으로 떠났다. 이들이 바로 인천 차이나타운의 기초를 세운 사람들이다. 1880년대 인천 제물포에 정착한 화교들은 현지 식자재와 기호에 맞게 짜장면을 변형시켰다. 중국 본토의 춘장은 한국의 춘장으로 대체되었고, 면발도 한국인들이 선호하는 더 쫄깃한 형태로 바뀌었다.

1905년 인천에서 시작된 ‘공화춘’은 한국 최초의 짜장면 전문점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후 짜장면은 한국의 독특한 음식 문화로 자리 잡으며 ‘짜장면’이라는 한국식 발음과 함께 한국인의 사랑을 받게 되었다. 흥미롭게도 이 한국식 짜장면은 다시 중국으로 역수입되는 현상을 낳았다. 특히 연변 조선족 자치주를 통해 중국 내에 ‘한국식 짜장면’이 소개되기 시작한 것이다.

한중 수교후에 한국에 들어왔던 중국인들은 귀국후에도 몇가지 한국음식은 잊혀지지 않고 계속 기억에 남는다고 흔히 말하곤 한다. 그 음식은 한국식 치킨, 삼겹살, 짜장면 이라는 것이다.


한국 짜장면의 원조, 인천 차이나타운 공화춘

짜장면의 진화

21세기에 들어서 짜장면은 또 다른 변혁을 맞이하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베이징을 중심으로 짜장면 전문점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이 현상은 몇 가지 이유에서 비롯된다.

첫째, 젊은 세대의 향수 마케팅이 성공하고 있다. 80-90년대 한국 드라마와 K-pop의 영향으로 중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한국 문화에 대한 친밀감이 형성되었다. 짜장면은 이 문화적 교감의 식문화적 표현으로 자리 잡았다.


둘째, 빠르게 변화하는 도시 생활에 적합한 음식이다. 짜장면은 일반적으로 5분 이내에 제공될 정도로 조리가 빠르고, 한 그릇에 탄수화물, 단백질, 채소가 모두 포함되어 균형 잡힌 한 끼를 제공한다.

셋째, 창의적인 퓨전 요리의 등장이다. 베이징의 새로운 짜장면 전문점들은 전통에 머물지 않는다. 스파이시 짜장면, 해물 짜장면, 심지어 버섯으로 만든 채식 짜장면까지 다양한 변주를 선보이며 소비자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넷째,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대도 중요한 요소다. 경제 불확실성이 증가하는 시기에, 값싸지만 만족스러운 한 그릇의 짜장면은 많은 도시 생활자들에게 현실적인 선택지가 되고 있다.


최근 베이징에 우후죽순 등장한 짜장면집 들

십여년전 까지만 해도 북경에는 지금처럼 짜장면집이 많지 않았다. 뒷골목쪽에 위치하면서 노인들이 자주 가는 옛날 음식의 한가지 였을 뿐 이었다.

최근에 북경을 중심으로 짜장면 전문점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이유는, 최근 요식업계의 트렌드와 무관하지 않다. 짜장면은 특별한 재주가 없어도 쉽게 만들 수 있으며, 체인사업본부에서 제공하는 밀키트를 조립해서 요리해도 충분한 맛을 내기 때문이라고 한다. 만들기 쉽고 빠른 시간에 제공이 가능해서, 창업이 쉽고 테이블 회전율도 높다는 것이다.

나라가 망하면 왕족은 짜장면집을 차린다

나라가 망하면 왕족들은 무엇을 할까? 왕족은 아니지만, 왕족에 준하는 예우를 받아온 가문이 공자님의 집안이다. 산동성 곡부에 가면 공자의 후손들은 식당과 고량주 공장을 운영하며 살아가고 있다. 공부채 라고 불리는 공자가문 요리들이 있고, 한국 중국집에서도 흔하게 접하는 ‘공부가주’는 공자가문 후손이 운영하는 고량주 회사이다.

중국 청나라가 망한 뒤, 청 왕족들은 짜장면집을 냈다. 숙친왕부의 증손녀는 숙친왕부가 있던 골목에서 짜장면을 내고 있는데, 이 집의 짜장면은 가히 북경 최고의 맛 이라고 할 만 하다. 한국 관광객들에게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아는 사람만 찾아가는 식당인데, 서비스와 음식의 수준이 미쉐린 별을 3개쯤 받아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품위있고 맛있는 짜장면 이었다.


숙친왕부의 짜장면

교차로에 선 짜장면의 미래


오늘날 베이징의 짜장면 가게에서는 흥미로운 광경을 목격할 수 있다. 한국에서 유학 온 젊은이들은 진정한 북경식 원조 짜장면을 찾아 방문하고, 중국 노인들은 향수를 느끼며 젊은 시절 먹던 북경식 짜장면의 맛을 기억하며 찾아온다. 동시에 중국의 젊은 셰프들은 이 요리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기 위해 실험을 거듭하고 있다.

짜장면의 역사는 단순한 요리의 역사가 아니다. 이는 실크로드에서 시작되어 동아시아를 가로지르는 문화 교류의 역사이며, 이민과 정착, 적응과 재창조의 이야기다. 한 그릇의 검은 면발에는 수백 년에 걸친 이동과 만남, 그리고 변화가 농축되어 있다.


중국에서 짜장면이 다시 발전하는 것과는 정반대로, 한국의 짜장면은 퇴보의 길을 걷고 있다. 최근 한국의 짜장면은 예전보다 매우 맛 없어 졌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 이유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다.

제대로 훈련받지 못한 사람들이 주방에서 일하면서, 대충 적당히 만들기 때문이라는 것이 주요 원인이며, 두 번째는 식재료의 품질이 예전보다 다운 그레이드 되었기 때문이다. 예전의 춘장은 지금보다 훨씬 맛있었으며, 기름도 식용유가 아니라 라드를 사용하였다. 라드로 만든 짜장면은 훨씬 더 깊은 풍미와 고소함을 준다. 요새 판매하는 대부분의 저가 간장은 산분해 간장 이듯이, 춘장도 콩을 정상적으로 발효해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전분과 밀가루 및 각종 재료를 섞어 단기간에 ‘찍어낸다’. 그래서 맛이 없어졌다. 최근 삼양라면에서 다시 우지라면을 개시했듯이, 짜장면도 라드와 좋은 춘장으로 만드는 문화가 돌아왔으면 싶다.


이제 짜장면은 다시 새로운 교차로에 서 있다. 글로벌화 시대에 이 요리는 앞으로 어떤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게 될까? 아마도 다음 장은 이미 베이징의 어느 작은 가게에서 쓰여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주방에서 춘장이 볶아지는 향기가 실크로드의 모래먼지 향기와, 동해의 바닷바람 향기와 교차하는 그 공간에서 말이다.

한국의 짜장면이 맛없어 지고 있는 동안에, 중국은 다시 짜장면의 종주국의 위치를 탈환하고 있는 중이다. 한국을 다녀간 중국인들에게 한국 3대음식으로 각인되었던 한국식 짜장면은, 앞으로는 원조 북경식 짜장면에게 자리를 내주는 날이 올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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