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얼빈 빙설제 방문기
코로나가 일어나기 전, 어느해 1월말에 하얼빈 빙설제에 간 적이 있었다.
하얼빈에 대하여 본격적으로 이야기 하기 전에, 하얼빈의 위도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우리 한국인들 생각속의 하얼빈은 위도가 몹시 높은 북쪽의 나라로 여기기 쉽다.
재미있는 것은 하얼빈의 위도는 북위 45°45′(45.75°N)인데, 비교적 따뜻한 이탈리아의 밀라노(북위 45° 27′ 51″)와 비슷한 위도대이며, 놀랍게도 프랑스 파리의 위도는 약 북위 48°51′(48.85°N) 여서, 파리가 하얼빈보다 북쪽에 위치한다.
파리가 하얼빈보다 북쪽이면서도 훨씬 따스한 이유는, 유럽 대서양에 멕시코 만류가 흐르면서, 유럽 대륙이 더워졌기 때문이다. 반대로 하얼빈은 온기가 유입될 만한 원인이 없었고, 대륙성 기후로 인해 혹독한 추위가 몰아치는 지역이 되었다.
런던(북위 51.5°)의 위도와 가장 가까운 동북아의 대도시는 러시아의 노보시비르스크 이다. 시베리아의 수도에 해당하는 노보시비르스크가 런던과 비슷한 위도라는 것을 일반인들은 평소에 인지하지 못한다. 남한과 비슷한 위도대에 위치한 도시들은 중동의 테헤란, 베이루트, 카이로, 다마스쿠스 등등이다. 그만큼 유럽과 지중해 연안은 따스하고, 우리가 사는 동북아는 춥다.
우리 한반도는 동일 위도대에 있는 중동국가들보다 여름에 덜 덥고, 겨울에는 훨씬 더 혹독하게 춥다. 즉, 한반도는 지구의 동일 위도대의 지역보다 추운 지역임을 이해해야 한다.
우리는 수천년동안 이 추운 한반도에서 태어나서 춥게 자라고 살아왔다. 그래서 추위에 강하다는 것을 우리의 강점으로 삼아왔다. 우리 한국인들은 체감온도 30도 이하로 떨어지는 겨울 설악산을 손쉽게 등반할 수 있고, 눈보라가 몰아치는 최전방 GOP 철책에서 군생활을 하면서도 거의 대부분은 죽지 않고 살아서 귀환할 수 있는 종족이다. 여름은 38도까지 올라가는 혹서이며, 겨울은 지역에 따라서 영하 20도 이하로 떨어진다. 연교차가 60도에 달하는 극한의 지역이 한반도다.
이런 땅에서 태어난 나는, 6살때부터 어른들을 따라 겨울 북한산을 등산하며 산을 배웠고, 성인이 되고서는 겨울 설악산, 겨울 지리산, 겨울 덕유산 등의 능선을 종주하며 날아다닐 수 있는 한국인이 되었다.
겨울산에 매료되어 겨울이 되면 눈덮인 설산을 등산하곤 했지만, 힘들다고 느껴본 적은 한번도 없었다. 겨울 설악산의 능선에 서면 체감온도가 –35도정도로 떨어지지만, 충분한 방한장비와 식량, 체력유지와 보온에 대한 적절한 대책이 있다면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다. 겨울산에서 자만하는 것은 죽음의 지름길이라고 하지만, 만용 부리지 않고 무리하지 않는다면 겨울산은 충분히 즐길 수 있는 대상임에 분명하다.
겨울산을 즐겁게 다니려면 숙련된 등반기술과 충분한 체력이 필요하고, 보온과 체력유지에 대한 신중한 계산과 준비가 있어야만 한다. 어느 한가지라도 부족하면, 겨울산에서는 반드시 사고가 나기 마련이다.
다행히 나는 절대로 무리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까지 큰사고 없이 산을 다닐 수 있었다. 그래서 한겨울 산행과 추위는 내가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고 자신해 왔고, 추위 때문에 여행을 못하거나 등반을 못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여겨왔다.
세계 4대 겨울축제의 하나라는 하얼빈 빙설제는 1963년부터 민간에서 자발적으로 개최한 빙등유원회(氷燈遊園會)가 시작이다. 항일운동가 이조린(李兆麟)을 기념하여 만든 하얼빈의 쟈오린공원(兆麟公園, 조린공원)에서 주민들이 쑹화강(松花江)의 얼음을 채취하여 만든 얼음 조각 작품을 전시한 것이 그 시작이었다.
초기에는 얼음 조각에 빛을 더하는 빙등(氷燈)이 주를 이루어 ‘빙등제’로 불렸는데, 1999년 밀레니엄을 기념하기 위해 쑹화강 북쪽 태양도(太陽島)에 ‘하얼빈 빙설대세계’ 라는 대규모 빙등 축제 장소가 조성되면서 축제의 규모가 비약적으로 커지고 세계적인 축제로 거듭나게 되었다. 그 이후부터 축제의 공식적인 명칭은 ‘하얼빈 국제 빙설제’가 되었다.
현재 축제는 두가지가 모두 진행되고 있다. 태양도에서 하는 하얼빈 빙설대세계 (哈爾濱氷雪大世界)가 있고, 하얼빈 시내에 있는 쟈오린공원 빙등 예술 전시회 (兆麟公園氷燈藝術展)도 진행된다. 택시를 타고 빙설제 장소에 가자고 하면, 택시기사는 목적지가 빙등제인지 빙설제인가를 물어보는 경우가 있다. 현지인들은 이 두가지 축제를 구분하기 때문에, 목적지를 분명하게 알려줘야 한다.
축제는 통상 12월 20일경부터 수만명이 동원되어 쑹화강의 얼음 잘라내면서 준비를 시작하는데, 개막 날자는 1월 5일에 공식 개막하며, 이 날짜는 고정되어 있다. 12월 한달간 두께 1m로 얼어붙은 쑹화강의 얼음을 재단하여 수송하는 장면은 장관이라고 한다. 폐막은 2월말경 이지만, 그해의 날씨에 따라 달라진다.
몇 년전 겨울, 중국 베이징에서 일을 마치고 하얼빈 빙설제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어려서부터 겨울산을 전문적으로 탔던 경험이 있어서, 하얼빈의 추위 정도는 별것 아닐것이라 여겼다.
겨울의 북경은 몹시 춥다. 매일 영하 15-20도의 추위에 대륙의 삭풍이 불어온다. 건조하기 때문에 얼굴과 손에 크림을 바르는 것은 한국인들에게 필수이다. 하지만 겨울산을 다니던 사람들에게 북경의 추위는 그리 문제가 되지 않았다. 설악산 오색약수터의 기온이 –19도 일 때, 정상과 능선은 체감온도가 대개 영하 30도 이하가 된다. 이런 추위속에서 능선종주를 하는 사람들은 추위를 두려워하지 않기 마련이다.
북경에서는 겨울용 다운 파카를 입고 있었고, 고어텍스 비니와 장갑, 목도리를 소지하고 있었다. 내가 쓰던 고어텍스 비니 모자는 영국 수병이 갑판에서 쓰는 용도였는데, 성능이 좋아서 설산 트레킹 할 때마다 사용하던 애장품 이었다. 겨울 바다의 갑판병이 사용하는 물건이니, 보온과 방수는 믿어도 되는 물건이었다.
베이징에서 T열차를 타고 12시간 걸려 하얼빈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 6시 였다. 도착하기 30분전부터 기차 객실안은 분주해졌다. 자다깨서 멍한 눈으로 분주한 중국인들을 바라보았는데, 저들이 왜 저러는 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중국인들은 가방을 열고 여러 가지 옷을 껴입기 시작했다. 바지위에 또 바지를 입고, 티셔츠 위에 또 셔츠를 여러개 겹쳐 입었다. 어떤 사람은 바지를 5개나 겹쳐 입기도 했는데, 그들의 모습은 마치 미쉐린 타이어 광고 마스코트인 ‘미쉐린 맨(Michelin Man) 비벤덤(Bibendum)’처럼 보였다. 하얼빈에 초행이었던 나는 중국인들이 왜 저러는지를 알지 못했다.
기차가 하차하고 플랫폼에 내리니 찬바람이 몸을 휘감는다. 중국인들에 끼어서 밀려가다보니 어느덧 기차역 하차 출구가 되었다. 겨울의 중국은 거의 모든 게이트에 바람과 냉기를 막기위한 두꺼운 차단막을 친다. 차단용 커튼을 통과해 역사 밖으로 나서는 순간, 나는 이세계(異世界)로 진입했음을 직감했다.
뭔가 끈적한 듯, 무거운 듯, 흐르는 듯한 느낌의 냉기가 몸을 감쌌다. 이런 냉기는 일찌기 태어나서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것 이었다. 불과 10여초가 지나자 머리가 띵 하며 아프기 시작했다. 냉기가 머리를 얼린 것 이었다.
나는 떨어지지 않는 발을 움직여 종종걸음으로 다시 역사 안으로 도망쳐 들어갔다. 방한용 커튼 뒤에서 밖을 내다보니, 나처럼 모자도 안 쓰고 장갑도 안 낀 바보 멍청이는 한명도 보이지 않았다. 그제서야 하차 30분전에 중국인들이 옷을 껴입은 이유를 깨달았다.
역사 화장실로 가서 옷을 입었다. 가방안에 옷 이란 옷은 다 꺼내어 겹쳐 입었다. 실내에서 입던 편한 바지, 츄리닝, 티셔츠, 갖고 있던 옷은 모두 껴 입었지만, 그래도 뭔가 부족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대로 저 한파속으로 들어가는 수 밖에.
이날 새벽, 하얼빈의 기온은 무려 영하 41도를 기록했다. 내가 예약한 호텔은 기차역에서 약 2km 떨어진 곳 이었는데, 그 새벽에 택시가 잡히지 않아서 그냥 걷기로 결심하고 발길을 떼었다.
대륙의 바람을 일명 ‘삭풍(朔風)’이라고 하는데, 삭풍(朔風)은 ‘북쪽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을 말한다. 이날 새벽에 맞은 바람은 글자 그대로 삭풍(朔風)이었고, 뼈마디를 에이도록 부는 바람이 무엇인가를 제대로 체험했다.
호텔까지 걸어가는 2km 구간에서, 이미 나의 무릎은 얼어서 잘 움직이지 않았고, 모자를 썼음에도 불구하고 머리가 얼어 들어오면서 지근지근 두통이 시작됐다. 전신의 관절이 얼어서 제대로 가동하지 않았으므로, 2kmr 구간을 걷는데에 30분 이상 걸렸던 듯 하다.
냉동실의 동태처럼 되어서 호텔에 도착하니, 갑자기 접한 온기에 피부가 풀리면서 기운이 빠졌다. 호텔 직원은 이런 손님을 자주 접했던 모양인지, 튀어나와서 짐을 내리는 것과 수속을 도와주었다.
일단 호텔방에 들어가서 온수로 몸을 데웠지만, 한두시간 동안 몸은 차가웠고 따뜻해지지 않았다. 그날 오전 내내 뜨거운 차를 마시면서 호텔에서 쉬다가, 점심때가 되어서야 시내로 나와 볼 마음이 생겼다.
생각해보니 체감온도가 아니라 실제 기온 영하 40도를 경험한 것은, 이날이 평생 처음이었던 셈이다. 한국에서 겨울 산을 좀 탔다고 자만한 것이 몹시 후회되었다. 6.25전쟁때 함경남도 장진호(長津湖) 전투의 영하 30도의 추위속에서 수많은 미군이 전사했다고 하던데, 그 상황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영하 20도와 영하 40도는 완전히 차원이 다른 것이다. 영하 30도 이하에서 참호속에 엎드려 있다보면 안 죽는 것이 이상할 것이다.
택시를 불러 시내 번화가로 나가서 옷부터 구매해야 했다. 하얼빈 사람들의 복장은 거대한 모포를 뒤집어 쓴 듯한 모습이었는데, 이 기온에서는 이런 복장이 가장 합리적 이었다. 나도 인민해방군의 거대한 롱코트를 샀고, 털모자를 구입했다. 한국에서 털모자는 더워서 쓸 수가 없지만, 여기서는 생존도구였다.
털모자를 쓰고 옷을 입으니 한결 상태가 좋아졌고, 그제서야 시내 구경을 할 만한 여유가 생겼다.
하얼빈 빙등제부터 보고 빙설제로 가는 것이 좋다는 호텔 직원의 의견이 있었다. 빙등제는 밤에 가야 제맛이라지.
그래서 해질 무렵에 빙등제가 벌어지는 시내 조린공원으로 갔다. 입구에서는 입장권이 매진되었다며 창구를 닫아걸고 판매하지 않았는데, 구입이 실패하자 창구 옆에 서 있던 중국인들이 나에게 암표를 판매하였다. 오토바이를 타고 온 두명의 중국인이 티켓을 팔았는데, 의외로 많이 비싸지는 않았고, 정가보다 20위안 정도 더 붙였던 기억이 있다. 티켓 판매창구의 직원과 암표상은 몹시 친해보였고, 나에게 암표를 팔고는 자기네끼리 담배를 나눠 피는것도 목격했다.
빙등제가 열리는 밤의 조린공원은 아름다웠다. 추위로 인해 눈썹에도 성에가 끼고, 마스크를 벗고 숨을 쉬면 코털조차 얼어붙었지만, 추위속에서 피어나는 얼음세계의 환상적 이미지라는 것이 있다. 어디선가 겨울왕국의 엘사가 걸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만한 분위기 였다.
빙설제는 태양도에서 하기 때문에, 하얼빈 시내에서 거리가 꽤 멀다. 버스를 타고 1시간쯤 가야 하는 곳이다.
빙설제 역시 조명이 들어오는 밤에 보아야 하기 때문에, 해가 지기전에 가서 일몰을 겪고 야간 관람을 하는 것이 정석이다. 낮시간과 야간시간 둘 다 보려면 오후 4시쯤 가서 입장하는 것이 좋다.
하얼빈 쑹화강은 한낮에도 영하 30도가 넘었다. 쑹화강 근처 태양도는 바람도 거세게 분다. 털모자와 바라클라바를 뒤집어 썼지만, 발부터 올라오는 한기는 막기 어려웠다. 하얼빈 빙설제에 가실 분은 핫팩을 한박스정도 갖고 가시기를 정중히 권고드린다.
야간의 빙설제는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 이었다.
하얼빈 빙설제 안에는 각종 식당과 편의점 등등이 즐비하기 때문에, 이 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 어떤 훠궈 식당은 건물도 얼음이고, 테이블과 의자도 얼음으로 만든 곳도 있다. 얼음 궁전안에서 뜨거운 훠궈를 먹는 진기한 경험은 여기가 아니면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얼빈에서 놀란 일이 있었다. 하얼빈 3일차에 날씨가 많이 따뜻해졌다. 영하 40도는 현지인들에게도 혹독한 추위였던 듯 했다. 3일차에 기온은 영하 25도로 매우 많이 상승했다.
오전에 호텔 주인은 오늘은 많이 따뜻해 졌다며 즐거워 했다. 한국에서는 영하 15도만 되어도 ‘최강 한파’라며 뉴스가 달궈질 테지만, 하얼빈에서 영하 25도는 매우 따뜻한 날 이라고 한다. 이날 오전에 시내에는 오랜만에 스커트를 입은 아가씨들과 머플러와 장갑도 안 끼고 편안하게 나들이를 하는 사람들로 가득찼다. 한동안 안 보이던 자전거와 스쿠터 소리도 들려왔다.
영하 25도가 따뜻하다며 장갑도 머플러도 없이 목을 드러내고 활보하는 사람들. 이 장면을 보고나니 믿어지지가 않았다. 나는 이날 기온에 대한 또 한번의 충격을 받았다.
모든 감각과 생각은 상대적인 것이다. 영상 5도에도 수백명이 얼어죽는 인도대륙이 있는가 하면, 영하 15도에도 길에서 노점 장사를 하는 한국인들도 있다. 지구 어딘가에는 영하 25도가 극한의 추위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고, 이 기온이 너무 따뜻해서 편안하게 길거리에 놀러 나오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이날 이후로, 겨울시즌에 한국에 와서 몹시 추워하는 동남아 사람들을 무시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저 다를 뿐이지, 어느 한쪽이 우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옛날 임진왜란때 현해탄을 건너온 왜군들은 한반도의 추위에 관한 글을 많이 남겼다. 한반도가 너무나 추워서 전투를 할 수 없다고 기록에 적혀 있다. 일본 큐슈나 오사카 도쿄 일대는 겨울에도 웬만하면 영하로 떨어지지 않으며, 눈도 오지 않는다. 영상에 살던 그들에게 한반도의 겨울은 혹독했을 것이다.
예전에 몽골에서 온 어떤 아가씨가 한국의 공장에 취직했는데, 어느 겨울날에 지인이 방에 들어갔다가 기겁을 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몽골 처녀는 보일러가 팡팡 나오는 한국 기숙사가 너무 더웠던 나머지, 창문을 활짝 열고 속옷바람에 젖은 수건을 몸에 덮고 자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녀의 지인은 그녀가 몹쓸 짓을 당해 죽은줄 알고 몹시 놀랐었다는 얘기다. 몽골인에게 서울의 겨울은 더울 뿐 이라고 한다.
이렇듯 고정된 사실이란 원래 없는 것이고,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춥다, 덥다의 기준도 역시 고정된 것이 아니니, 평소에 그저 바라보아야 할 뿐이다. 인간이 가진 색성향미촉(色聲香味觸)의 5대 감각은 정확하지 않다.
모든 것은 나의 의(意)가 만들어낸 법(法) 일 뿐이다.
그때, 영하 25도의 하얼빈의 어느 겨울날, 젊은 아가씨들의 풀어헤친 목덜미와 가슴을 보고, 나는 문득 사법계(事法界)를 넘어 이사무애법계(理事無碍法界)까지는 도달했나보다. 그날 그 하얀 목덜미와 가슴은 뇌리에 각인되었고,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나는 그날 그렇게 부처를 만났다. 하얀 목과 가슴을 가진 예쁜 부처님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