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적군파 테러리스트라고?
최근 캄보디아 스캠범죄로 인해, 범죄자들이 연일 체포되고 있다. 뉴스에는 검거 소식과 함께 ‘인터폴 적색수배’라는 단어가 빠지지 않고 보인다.
‘인터폴 적색수배’라는 단어는 일반인에게 섬뜩하고 공포스러운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오죽 흉악범이면 인터폴이 국제적으로 수배를 하겠는가? 다른 색깔도 아니고 무려 ‘적색수배’를 말이다. 일반인들은 평생토록 인터폴과 만날 일도 연락할 일도 없으며, 더구나 적색수배령을 받을 일이 없다.
인터폴 수배는 등급별로 색깔이 있다.
인터폴의 수배등급 중에서도 적색수배가 가장 세다. 적색수배자가 공항이나 항만을 통과하다 검문당하면, 무조건 체포된다. 공항과 항만의 직원들이 하는 임무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오래전 나는 인터폴 적색수배자로 오인되어 오만군데에서 검문당하고 억류된 경험이 있다.
1990년대 초반으로 기억된다. 대만의 중정공항에 입국하던 중이었다. 공항 출입국심사대에 서 있는데, 담당직원이 갸우뚱하는 표정으로 한참 이것저것 뒤져보는 듯 보였다. 옆 창구는 이미 대여섯 명이 통과되었지만, 나만 혼자서 오랫동안 서 있게 되었다. 내 창구의 직원은 결국 다른 보안요원을 불렀고, 나를 뒤편에 있는 작은 방으로 데려가더니 간단한 취조를 시작했다.
‘국적은 어디인가?’
‘입국 목적이 뭐냐?’
등등을 집요하게 물어보더니만, 계급이 좀 높아 보이는 다른 직원이 와서 자기네들끼리 대화를 끝내고 나서야 나를 풀어주었다.
왜 나를 억류했었는가도 밝히지 않았으며, 그저 절차상의 조사라고만 했다.
당시 20대 나이였던 나는 꽤나 긴장했고 조금은 무섭기도 했었다.
그 후에 대만을 여행하며 동서횡관공로를 도보로 걸어서 넘었고, 아리산과 옥산도 갔었고, 북회귀선을 넘었으며, 최남단 가오슝 항구까지 이르렀다. 가오슝에서는 마카오로 넘어가는 1박 2일짜리 페리가 있었는데, 페리를 타고 마카오에 입국을 하였다. 당시 마카오는 지금처럼 깔끔하고 호화롭지 않았으며, 쇠락한 서양 식민지 도시의 전형이었다. 지저분한 뒷골목과 삼합회 조폭이 바글대는 듯한 분위기의 망한 항구도시 일 뿐이었다.
마카오에서 며칠을 지낸 후, 스타페리를 타고 홍콩으로 입성할 때 사달이 났다.
페리를 타고 홍콩 항구로 입국할 때, 나는 출입국 관리소에 억류되었다. 입국 심사를 하던 직원이 벨을 눌렀던 모양인지, 홍콩 경찰들이 여러 명 몰려와서는 나를 어딘가 취조실로 데리고 갔다.
취조실에 앉혀놓자마자 취조가 시작되었다. 홍콩영화에서나 보던 검은색 경찰복장을 입은 사람들 여러 명이 내 주변에 서 있었다. 영웅본색에서 장국영이 경찰관 옷을 입은 것은 참 멋있었는데, 실제로 만난 홍콩경찰들은 전혀 댄디하지도 않았고, 잘생기지도 않았더랬다.
여기서도 똑같은 질문이 되풀이되었다.
‘국적은?’
‘이름은?’
‘직업은?’
‘입국 목적은?’
‘어디를 여행했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가?’
등등이었다.
나를 취조하던 사람이 나가고, 다른 직원이 들어와서는 똑같은 질문을 영어로 되풀이했다.
거의 2시간쯤 흐른 듯 한 시간이 지난 후에, 어디서 불러왔는지 모르지만 홍콩 경찰들은 한국 아줌마를 한 명 데리고 왔다.
이역만리 취조실에 갇혀 있다가, 퍼펙트한 서울말씨를 쓰는 한국 아줌마를 만나니 너무나 반가웠다. 아주머니는 대충 내용을 듣고 온 모양이었는데, 나와 이런저런 일상적인 얘기를 나누었지만, 왜 내가 잡혀있는가는 말해주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나의 말투가 네이티브 한국인 인가를 파악하기 위한 것으로 생각된다.
대화를 시작한 지 십여분쯤 지났을까, 아줌마가 취조실 밖에 나갔다 오더니 다시 홍콩 직원들과 들어왔다. 홍콩 경찰 두 명이 나에게 다가오더니, 나의 턱과 옆얼굴을 이리저리 만져보았다. 그리고는 자기네끼리 한동안 대화를 했지만, 홍콩 말 이어서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대화를 마친 홍콩 직원들은 아주 커다란 파일철을 내 앞에 펴 놓더니, 그제야 뭔가 말을 하기 시작했다. 파일철은 단단하고 두꺼운 하드 표지였는데, 완전한 검은색이었다. 홍콩 직원들의 말을 아줌마가 통역해 주었는데, 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았다.
‘너는 일본 적군파 테러리스트로 오인받아서 여기 잡혀 있는 것이다. 적군파의 부두목 급에 해당하는 거물이 너와 아주 똑같이 생겼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네가 그 테러리스트로 생각되어 취조를 했는데, 한국인 통역을 데려다가 확인해 보니 일본인이 아니라는 것이 확인되었다.
그리고 너는 턱 옆에 구레나룻 수염이 나지 않는다. 일본 적군파 용의자는 구레나룻 수염이 짙게 나는 체질인데, 너는 수염이 없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수염은 위장할 수 없는 것이니까, 네가 수배자가 아니라는 것은 확인했고, 이제 석방한다’라는 내용이었다.
홍콩 경찰은 블랙리스트 파일철을 열어서 일본 적군파 수배자의 사진들을 보여주었는데, 내가 보아도 내 얼굴로 착각할 정도였다. 대부분 흐릿한 사진이었지만, 마치 나의 사진들을 보는 듯한 착시감까지 일었다. 그러니 홍콩 경찰들이 착각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나는 코밑과 턱 밑에만 수염이 날 뿐, 풍성한 구레나룻 턱수염이 나지 않는다. 우리 집안 유전이다. 나도 귀 밑까지 수염이 많이 나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지만, 그날 이후에 나는 절대로 풍성한 수염을 부러워하지 않게 되었다.
수염 없는 체질이 나를 살렸기 때문이다. 내가 장비나 관우처럼 수염이 많았더라면, 나는 홍콩 감옥에서 사실이 밝혀질 때까지 한동안 수감되었을 수도 있었다. 그날 이후부터수염을 깎을 때마다, 내가 수염이 별로 없음에 감사했다.
그러던 중 언젠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태국 방콕 공항으로 입국할 때였다. 방콕 공항의 출입국관리소에 앉아 있던 아줌마 여직원이 나를 보더니 시간을 지체하기 시작했다. 옆 창구에 사람들이 여럿 빠졌는데도 나는 계속 서 있어야 했다.
태국 직원이 뭔가 파일철을 찾아서 확인하더니, 미소를 지었다.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니, 그 직원이 깔깔대고 웃다가 나를 불러서는 직원 창구 안쪽을 가리킨다.
직원 데스크 안쪽 하단에는 수배자 명단 포스터가 붙어 있었는데, 어떤 사람의 흑백사진 위에 커다랗게 X자 표시가 되어 있었고, 나에게 그걸 보라고 가리킨 것이었다.
그 사진,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나를 홍콩에 억류시켰던 바로 그 일본인의 얼굴이었다. 흑백사진 위에 ‘검거됐음’을 알리는 X자 표시가 되어 있었다. 방콕 직원은 ‘너와 닮은 사람인데, 결국 체포되었단다. 너는 안심해도 좋다’라고 말하며 나를 순순히 보내주었다.
그때가 아마도 1996년경으로 기억된다. 나는 나와 똑 닮은 적군파 테러리스트가 궁금했고, 살아오면서 항상 그에 대한 생각을 했다. 그가 결국 잡혔다는데, 그 후에는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하곤 했다.
일본 적군파(赤軍派)는 1960년대 후반 일본의 학생운동(전공투)에서 파생된 신좌파(新左派) 무장 조직이다. 이들은 기존의 사회주의 운동 방식에서 벗어나 '무장 투쟁과 세계 혁명'을 주장하며 급진적인 활동을 전개했다. 쿠바 체게바라의 사상적 영향을 받았다는 말도 있었다. 인류의 1960년대는 그런 시대였었다.
적군파는 1) 공산주의자동맹 적군파, 2) 연합적군(連合赤軍), 3) 일본적군(日本赤軍)으로 크게 세 갈래로 나뉜다.
나와 관련 있던 자는 일본 적군 소속이었던 것 같은데, 이쪽 계파의 수장은 시게노부 후사코라는 여성이다. 시게노부 후사코는 테러리스트 같지 않은 청순한 미모로 유명하였고, 그녀의 사진들은 꽤 많이 돌아다녔다.
나와 인연이 된 수배자는 아마도 시로사키 츠토무(城崎勉)로 보이는데, 이 사람은 1996년 9월 23일에 은신처에서 체포되었고, 계속 형무소 생활을 하다가 2024년 7월 20일, 복역하고 있던 후추 형무소에서, 저녁 식사 때에 음식을 목에 채워 그대로 질식사했다. 1947년생 이어서, 자살 당시에 나이는 76세였다.
47년생이니까 나보다 나이가 한참 많은 사람인데도 꽤 동안이었었고, 말년의 사진을 봐도 70대로는 보이지 않을 만큼 인물이 준수하였다.
그는 일본 후추형무소에서 사망하였는데, 그의 죽음은 일본 뉴스에서 보도될 만큼 비중이 있었다.
나는 평생 동안 특정인물을 닮았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가장 많이 들었던 인물은 중국 모택동과 북한의 김일성이었다. 중국인들은 나를 만나면 ‘모 주석을 닮았다’라고 했고, 북한인들은 ‘돌아가신 장군님과 똑같습네다~' 라며 반가워했다.
한 번은 중국 샹그리라에 갔다가 모택동 동상 앞에서 같은 포즈로 사진을 찍는데, 지나가던 중국인들이 몰려와서는 웃기도 했었다.
하지만 나를 가장 닮았다는 사람은 모택동도 김일성도 아닌, 일본 적군파의 인물이었다. 만약 내가 유전적으로 턱수염이 풍성한 체질이었다면, 지금 이렇게 살고 있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스톡홀름 증후군은 피해자와 가해자의 정서적 유대감 형성을 가리키는 용어다. 일본 적군파 간부와 나는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는 아니었지만, 우리 사이에 뭔가 묘한 유대감이 생겼음은 부인할 수 없다. 그가 잡혔다던데, 이젠 죽었을까 하는 호기심은 항상 있었으며, 그가 2024년에 사망했다는 뉴스를 접했을 때, 나도 모르게 ‘이젠 영면에 들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으니 말이다.
캄보디아 범죄 사태로 인해 인터폴 적색수배라는 단어가 뉴스를 장식하는 요즈음, 내가 겪었던 인터폴 적색수배와 관련된 사건과 그 사건의 주인공이었던 어떤 테러리스트 남성을 생각한다.
공산주의 이념이 폐기 처분된 지 오래인 지금, 만약 내세가 있다면 그는 그가 꿈꿨던 공산주의 세상에 대해 저승에서 어떻게 회고하고 있을까? 한 남자가 변절하지 않고 평생을 신념을 가지고 살아갔다는 점에서는 인간적인 존중을 갖고 있다.
수없이 변절하고 조삼모사하는 한국의 정치판과 사회를 보면서, 비롯 그릇된 신념일지라도 평생 지조를 꺾지 않고 살다 죽은 사람을 보면, 일방적인 비난만 하게 되지 않았다.
츠토무 아저씨, 부디 저승에서는 당신이 원했던 공산주의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길 바랍니다. 저 세상의 공산주의 나라는, 지금 지구의 공산국가와는 달리 이상향 일 지도 모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