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통행의 역사와 가치
우리는 매일같이 안전한 길 위에서 살아간다. 스마트폰 앱으로 부른 택시를 타고, 주말에는 고속도로를 달려 여행을 떠나며, 바다 건너에서 온 상품을 클릭 한 번으로 주문한다. 이 모든 일상은 ‘길의 안전’이라는, 너무나 당연해서 오히려 인식하지 못하는 거대한 전제 위에 서 있다. 하지만 인류의 역사는 이 ‘길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피와 땀의 기록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그 길을 지배하고 보호하는 자가 곧 세계의 질서를 주도하는 패권국, 즉 ‘제국’으로 군림해왔다.
역사적으로 통행로, 교역로, 여행로의 보호는 제국의 가장 중요한 사명이자 존재 이유였다. 로마가 지중해의 해적을 소탕하고 잘 닦인 가도를 통해 제국의 평화를 유지했을 때, 몽골이 광활한 초원을 역참으로 연결하여 동서 교역의 동맥을 열었을 때, 그리고 대영제국이 막강한 해군력으로 7대양의 해상 무역로를 장악했을 때, 그들은 비로소 진정한 제국으로 추앙받을 수 있었다.
군소 국가들과 수많은 상인, 여행자들이 제국의 질서에 순응한 것은 단순히 그들의 군사력이 두려워서만은 아니었다. 제국이 제공하는 ‘안전한 길’이라는 공공재가 그 어떤 가치보다 중요했기 때문이다. 세계의 평화는 결국 자유로운 통행 권리의 확보라는 형태로 나타났고, 이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순간 제국의 영광은 쇠락의 길을 걸었다.
이제 21세기, 세계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다. 과거의 해적과 산적이 아닌, 디지털 네트워크와 허술한 국경을 넘나드는 신종 범죄 조직이 인류의 이동과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특히 동남아시아의 심장부 캄보디아에서 벌어지는 대규모 인신매매 및 온라인 사기 범죄는 단순한 치안 문제를 넘어, 현대판 ‘길의 파괴자’가 누구이며, 이를 막아낼 새로운 제국의 역할은 무엇인지 묻는 엄중한 시험대가 되고 있다.
인류 문명의 발전은 길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육로든 해로든, 이 길들이 안전하게 확보될 때 비로소 교역이 활성화되고 문화가 교류하며 부가 축적될 수 있었다. 제국의 역사는 바로 이 길을 확보하고 유지하기 위한 투쟁의 기록이다.
로마의 평화,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Pax Romana)
로마 제국은 ‘우리의 바다(Mare Nostrum)’라 불렀던 지중해의 절대 강자였다. 기원전 1세기, 폼페이우스는 대대적인 해적 소탕 작전을 통해 지중해의 해상권을 완벽히 장악했고, 지중해를 로마의 내해(內海)로 만들었다. 그의 성공은 이후 약 200년간 지속된 ‘팍스 로마나’ 시대의 초석을 다졌다. 안전해진 바닷길을 통해 제국 각지에서 로마로 향하는 곡물, 올리브유, 포도주 수송선이 끊임없이 이어졌고, 이는 로마의 번영을 뒷받침하는 생명줄이었다.
육로 역시 마찬가지였다. 로마는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 그대로 제국 전역을 잇는 정교한 도로망을 건설했다. 이 길은 단순히 군단의 신속한 이동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잘 포장되고 관리되는 도로를 따라 상인과 여행자들은 도적 떼의 위협으로부터 비교적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었고, 이는 제국 내 경제 통합과 문화 전파를 촉진하는 대동맥 역할을 했다. 로마가 보여준 것은 국가가 강력한 군사력과 인프라 투자를 통해 어떻게 이동의 자유를 보장하고, 그것이 어떻게 제국의 번영으로 이어지는지에 대한 역사상 최초의 완벽한 모델이었다.
몽골의 평화, 실크로드의 부활 (Pax Mongolica)
13세기, 칭기즈 칸과 그의 후예들이 유라시아 대륙을 석권하며 인류 역사상 가장 광대한 육상 제국을 건설했다. 몽골 제국이 가져온 ‘팍스 몽골리카’의 핵심은 바로 실크로드의 부활이었다. 사막과 산맥, 그리고 수많은 유목 민족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던 이 고대의 교역로는 몽골의 단일 지배권 아래 놓이면서 놀라울 정도로 안전해졌다.
몽골은 제국 전역에 ‘역참(Yam)’이라는 촘촘한 교통·통신망을 구축했다. 역참을 통해 사신, 상인, 종교인들은 신분과 안전을 보장받으며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 여행할 수 있었다. 마르코 폴로가 중국을 여행하고 그 경험을 『동방견문록』으로 남길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팍스 몽골리카 덕분이었다. 몽골은 교역로를 위협하는 도적을 가차없이 처벌했고, 이를 통해 동서양의 교류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는 해상뿐만 아니라 광대한 육로 교역로의 보호가 제국의 존립과 번영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십자군 전쟁의 또 다른 얼굴: 순례자와 상인의 길
흔히 종교 전쟁으로만 알려진 십자군 전쟁 역시 ‘길의 보호’라는 관점에서 재해석될 수 있다. 전쟁의 배경에는 셀주크 튀르크의 등장으로 성지로 향하는 기독교 순례자들의 길이 위협받게 된 것이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교황 우르바누스 2세가 클레르몽 공의회에서 원정을 호소한 핵심 명분 중 하나가 바로 성지 순례의 안전 확보였다.
하지만 여기에는 종교적 목적 외에 지중해 무역로를 확보하려는 경제적 동기도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다. 베네치아, 제노바 등 이탈리아의 해상 도시 국가들은 십자군 원정에 함대와 물자를 지원하는 대가로 동부 지중해의 항구 도시들에 대한 무역 독점권을 확보했다. 그들에게 십자군은 이슬람 세력으로부터 교역로를 보호하고 동방과의 무역을 통해 막대한 부를 쌓을 수 있는 기회였다. 기사단, 특히 성전 기사단(템플 기사단)은 순례자들을 보호할 목적으로 설립되었으며, 주요 길목에 요새를 짓고 심지어 예금 증서를 발행하는 원시적인 은행 업무까지 수행하며 여행자들의 안전을 책임졌다. 이는 특정 연합 세력이 군사적 행동을 통해 종교적 순례길과 상업적 교역로의 안전, 즉 이동의 자유를 확보하려 했던 복합적인 사례다. 템플 기사단이 당시에 발행했던 신용 어음 시스템은, 후일 근현대 은행제도의 기원이 되었다.
대영제국의 평화, 세계의 바다를 지배하다 (Pax Britannica)
19세기, 나폴레옹 전쟁 이후 세계의 패권은 영국으로 넘어갔다. 대영제국은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세계 최강의 해군력(Royal Navy)을 바탕으로 전 세계 해상 통상로를 장악했다. 영국 해군은 해적 행위를 인류 공동의 적으로 규정하고 대대적인 소탕에 나섰다. 카리브해의 해적부터 말라카 해협의 해적까지, 영국 군함이 출동하는 곳에서는 더 이상 상선들이 약탈당할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영국이 주도한 질서는 단순히 자국 상선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항행의 자유’라는 원칙 아래 다른 국가의 상선들도 비교적 자유롭게 무역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보장했다. 수에즈 운하, 말라카 해협 등 세계 교역의 핵심 길목은 영국의 함대 아래 안전하게 유지되었다. 이처럼 압도적인 해상 장악력을 통해 전 지구적 차원의 교역로 안전을 제공한 것이 바로 팍스 브리태니카의 핵심이었고, 이는 영국이 세계 경제의 중심지로 기능하며 패권을 유지할 수 있었던 근간이었다.
이 역사적 사례들은 명확한 공통점을 보여준다. 길의 안전을 보장하는 능력은 제국의 가장 중요한 책무이자 권력의 원천이었다. 제국이 그 책무를 다할 때 세계는 안정되고 번영했지만, 그 능력을 상실하는 순간 제국은 쇠락하고 세계는 혼란에 빠졌다.
역사 속 제국들이 맞서 싸운 위협이 칼과 대포로 무장한 해적과 산적이었다면, 21세기의 패권국은 훨씬 더 교활하고 잔인한 새로운 형태의 ‘야만’과 마주하고 있다. 그 야만의 현주소는 바로 캄보디아를 비롯한 동남아시아 일대에 독버섯처럼 퍼진 인신매매 및 온라인 사기(스캠) 범죄다.
지옥으로 변한 약속의 땅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높은 수입을 보장하는 일자리가 있다는 온라인 광고에 속아 수많은 젊은이가 캄보디아, 미얀마, 라오스 등지로 향한다. 하지만 꿈에 부풀어 도착한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약속된 일자리가 아닌, 삼엄한 경비와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범죄 단지’다. 여권을 빼앗기고 감금된 이들은 가족과 친구를 상대로 한 ‘돼지 도살(pig butchering)’과 같은 각종 온라인 사기 범죄에 강제로 동원된다.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구타와 전기고문, 심지어 살해까지 당하는 참혹한 인권 유린이 자행된다. 탈출을 시도하다 목숨을 잃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국제앰네스티의 보고서에 따르면, 생존자들은 건물에서 시체가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다고 증언할 정도다.
이곳에서 이뤄지는 사기 범죄의 규모는 상상을 초월한다. 한 연구에 따르면 메콩강 유역 국가에 기반을 둔 범죄 조직이 벌어들이는 수익은 연간 438억 달러를 넘어설 수 있으며, 이는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 세 나라의 공식 GDP를 합친 금액의 40%에 육박하는 수치다. 이들은 단순한 범죄 조직을 넘어, 현지 정부의 묵인과 부패한 관료들의 비호 아래 운영되는 거대한 ‘범죄 산업’ 생태계를 구축했다. 캄보디아 정부는 이러한 인권 침해에 사실상 공모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캄보디아 사태의 배후, 용의 그림자
이 끔찍한 범죄의 배후에는 누가 있는가? 수많은 증언과 보고서는 중국계 범죄 조직(Triads)을 핵심 배후로 지목하고 있다. 이들은 동남아시아의 법과 질서가 미치지 않는 회색지대(Gray Zone)에 자리를 잡고, 막대한 자본과 조직력을 바탕으로 이러한 범죄 단지를 운영한다. 국제앰네스티의 조사 결과는 중국계 조직의 우두머리들과 캄보디아 경찰 사이에 공모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하며, 최근 미국과 영국 정부가 제재를 가하고 150억 달러 상당의 비트코인을 압수한 사건의 주범 역시 중국 출신 사업가들이었다. 이 중국 사업가들의 배후에는 중국 태자당이 있다고도 하며, 그래서 캄보디아 최대 조직의 이름도 ‘프린스 그룹(태자집단)’이다. 프린스 그룹의 회장 진씨는 중국 고위층과 심지어 시진핑과의 친분도 과시해 왔다고 한다.
이 현상은 현대 국제 질서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다. 과거 제국들이 바다와 육지의 길을 열고 해적을 소탕하여 ‘공공의 안전’을 확보했다면, 이들 범죄 조직은 반대로 특정 지역을 외부와 차단하고 ‘사적인 지옥’을 만들어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한다. 이는 단순히 개인의 이동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을 넘어, 국가의 주권과 국제법의 근간을 흔드는 행위다. 피해자들은 국적을 가리지 않으며, 한국인 피해 사례 역시 보고되고 있다. 이는 더 이상 특정 국가의 문제가 아닌, 국제 사회 전체가 직면한 안보 위협이다.
역사의 데자뷰: 19세기 남중국해의 해적 여제
이러한 상황은 놀랍게도 19세기 초 남중국해의 역사와 닮아있다. 당시 청나라 정부의 통제력이 약화된 틈을 타, 광둥성 앞바다는 ‘정일수(鄭一嫂, Zheng Yi Sao)’라는 한 여성 해적이 이끄는 거대한 해적 연맹의 지배하에 있었다. 그녀의 ‘홍기방(紅旗幇, Red Flag Fleet)’은 수백 척의 함선과 수만 명의 해적을 거느리며 청나라 수군은 물론 포르투갈과 영국 함대까지 격파하는 막강한 세력을 자랑했다. 정일수의 중국인 해적단은 인류 역사상 최대의 해적그룹 이었으며, 대항해 시대에 활동했던 카리브해 해적들 보다도 막강했다.
정일수의 해적 연맹은 단순한 약탈 집단을 넘어, 자체적인 법률과 규율을 갖춘 해상 왕국이나 다름없었다. 그들은 남중국해를 지나는 모든 선박에 통행세를 걷었고, 이에 응하지 않으면 가차 없는 약탈과 파괴를 자행했다. 당시 청나라 정부는 이들을 통제할 능력을 완전히 상실했고, 결국 해적 연맹에 대한 사면을 제안하며 협상을 통해 해산시키는 길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정일수의 사례는 중앙 정부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 강력한 비국가 행위자(non-state actor)가 어떻게 특정 지역의 ‘길’을 사유화하고 자신들만의 무법지대를 구축하는지를 보여준다. 오늘날 캄보디아의 범죄 단지는 19세기 해적 연맹의 현대적 부활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은 바다 대신 인터넷과 국경을 장악했고, 함선 대신 고층 건물을 요새로 삼았으며, 통행세 대신 인간의 목숨과 존엄성을 담보로 돈을 갈취하고 있다.
현재 캄보디아 범죄집단의 뿌리는 생각보다 깊다. 근대에 중국 공산화 즈음하여, 와해되지 않고 살아남은 중국 군벌들 중에서 일부가 골든 트라이앵글로 이동했고, 이들이 골든 트라이앵글의 마약왕 쿤사(Khun Sa)의 군사 조직인 몽타이군(Mong Tai Army)을 형성한다. 마약왕 쿤사도 중국인 혈통이었으며, 그의 중국어 이름은 장치푸(張奇夫, Zhang Qifu) 였다.
이들이 오랫동안 마약 사업을 하다가 1996년 1월에 미얀마 정부군에 항복하면서 와해되었는데, 남은 잔당들이 캄보디아로 이동하여 지금의 범죄집단의 시초가 된 것이다.
삼합회, 국가의 통제를 벗어난 그림자 권력
중국 역사에서 이러한 ‘그림자 권력’은 낯선 존재가 아니다. 청나라를 무너뜨리는 것을 목표로 했던 비밀결사에서 출발한 삼합회는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범죄 조직으로 변모했다. 이들은 정부의 통제력이 약한 곳에 뿌리내려 매춘, 마약, 도박, 밀수 등 각종 이권에 개입하며 세력을 키웠다. 때로는 국민당 정부처럼 정치 권력과 결탁하여 정적을 제거하는 데 동원되기도 했고, 공산당 정권 수립 이후에는 홍콩, 대만 및 해외 화교 사회로 거점을 옮겨 국제적인 범죄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캄보디아 사태의 배후로 지목되는 중국계 범죄 조직은 바로 이러한 삼합회의 역사적 연장선상에 있다. 이들은 국가의 통제를 벗어나거나, 때로는 부패한 국가 권력과 유착하여 자신들의 왕국을 건설한다. 이는 오랫동안 중앙집권적 통제를 통해 질서를 유지하려 했던 중국 정부의 노력과는 정반대의 현상이다. 문제는 이들의 활동 무대가 이제 중국을 넘어 세계로 확장되고 있다는 점이다. 동남아시아는 그들의 새로운 활동 무대이자, 기존 국제 질서가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주는 시험장이 되고 있다.
며칠전 한국 국회의원들도 캄보디아에 대한 군사적 옵션을 거론하여 국민들의 환호를 받기도 했다. 그런데 캄보디아 사태에 군사적 행동은 사실상 불가능 하며, 일부 국회의원들의 발언은 명백히 포퓰리즘이다.
실제로 군사적 옵션이 가능하려면,
첫째, 캄보디아 정부의 동의 또는 요청이 있는 경우와 캄보디아 정부의 동의 없이 UN을 통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첫번째 캄보디아 정부의 동의는 이것이 가장 현실적이고 국제법적으로 문제가 없는 방법이지만, 현실적으로 일어나기 어렵다. 일대일로 자금을 받으며 중국 눈치를 보는 캄보디아가 스스로 서방의 군대를 불러들일 리가 없기 때문이다.
두번째 UN군 동원은 UN안보리의 만장일치 통과가 있어야 하는데, 중국과 러시아가 반대할 것이 거의 확실하므로 이 역시 일어나기 어렵다. 캄보디아 사태의 배후는 중국인데, 중국이 UN 다국적 평화유지군 파병을 찬성할 리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UN 평화유지군이 동남아에 주둔하게 되면, 중국의 일대일로와 동남아 장악은 위축되므로, 중국이 가장 피하고 싶은 선택지 일 것이다.
국제법상 가능한 현실적인 개입 방식과 구성은 다음과 같다.
첫째, 캄보디아 정부의 동의나 요청을 전제로, UN 평화유지활동(PKO)의 파견이 있을 수 있다.
군사적 성격보다는 치안 유지와 법 집행 지원에 초점을 맞춘 ‘UN경찰(UNPOL)’이 주를 이루게 되는데, 여기에는 각국에서 파견된 경찰관,사이버 범죄 수사 전문가,인신매매 대응 전문가,법률 자문가 등이 포함된다.
둘째는 다국적 경찰 태스크포스(Task Force) 구성 (상호 협정 기반)이다.
피해를 보는 국가들(예:한국,중국,아세안 국가 등)이 캄보디아 정부와 양자 또는 다자간 '형사사법공조조약'이나 ‘업무협약(MOU)’을 맺고 공동 대응팀을 구성하는 방식이며, 이는 UN을 통하지 않는 보다 신속하고 유연한 모델이다. 관련 국가들 간의 합의로 창설되며, 각국 경찰청 및 법무부에서 파견된 수사관,정보 분석가,연락관 등으로 구성된다.
하지만 이들이 캄보디아 영토 내에서 직접적인 수사권이나 체포권을 갖기는 어려우며, 주된 임무는 캄보디아 경찰과 합동수사팀을 운영하고,자국민 피해자 보호,정보 공유,범죄인 인도 요청,범죄 수익금 추적 등을 긴밀하게 공조하는 것이다. 현지 법 집행은 캄보디아 경찰이 주도하고,다국적 팀은 이를 지원하는 형태가 된다.
캄보디아에서 벌어지는 참극은 단순히 끔찍한 범죄 사건을 넘어, 21세기 국제 질서의 향방을 가늠하는 중대한 분수령이 될 수 있다. 역사적으로 제국의 몰락은 외부의 강력한 침략뿐만 아니라, 제국이 더 이상 ‘길의 안전’이라는 핵심적인 공공재를 제공하지 못할 때 시작되었다. 로마가 속주에서 벌어지는 약탈과 혼란을 방치했을 때, 청나라가 해안을 유린하는 해적들을 막지 못했을 때, 제국의 권위는 땅에 떨어지고 백성들의 신뢰를 잃었다.
패권국의 부재 또는 의지의 상실
현재 동아시아의 질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주도해 온 안보 체제에 기반을 두고 있다. 미국은 ‘항행의 자유 작전(FONOPs)’ 등을 통해 남중국해와 같은 주요 해상 교통로의 안정을 유지하는 데 힘써왔다. 소말리아 아덴만에서 기승을 부리던 해적을 퇴치하기 위해 다국적 연합함대(CTF-151)를 창설하고, 세계에서 가장 붐비는 해협 중 하나인 말라카 해협의 안전을 위해 연안국들과 협력하는 등 현대판 ‘팍스 아메리카나’의 역할을 수행해왔다.
하지만 캄보디아 사태는 이러한 전통적인 안보의 틀을 벗어난다. 적은 국가나 명확한 군사 집단이 아니라, 여러 국가에 거점을 둔 채 국경과 사이버 공간을 넘나드는 초국가적 범죄 네트워크다. 이들을 소탕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군사력뿐만 아니라, 해당 국가의 사법 주권을 존중하면서도 부패한 내부 세력과 싸워야 하는 복잡한 외교적, 정보적, 법률적 노력이 필요하다.
만약 미국을 위시한 기존의 질서 주도 세력이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거나 해결할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면, 그 파장은 엄청날 것이다.
첫째, 국제 질서에 대한 신뢰가 붕괴된다. 자국민이 해외에서 납치되어 노예처럼 착취당하는데도 이를 구출하지 못하는 정부와 국제 시스템을 누가 신뢰하겠는가? 이는 곧 미국이 주도하는 동맹 체제의 균열로 이어질 수 있다.
둘째, 무법지대의 확산을 초래한다. 캄보디아에서의 ‘성공 모델’은 다른 지역의 범죄 조직들에게 영감을 줄 것이다. 정부의 통제력이 약하고 부패가 만연한 제3세계 국가들이 속속 이들의 새로운 근거지로 변모할 수 있다. 이는 전 세계적인 안보 불안을 야기할 것이다.
셋째, 새로운 ‘그림자 제국’의 등장을 예고한다. 이들 범죄 네트워크는 막대한 부를 바탕으로 특정 국가의 정치, 경제에 깊숙이 개입하며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는 합법적인 정부 위에 군림하는 또 다른 형태의 제국, 즉 ‘범죄 제국’의 출현으로 이어질 수 있다.
팍스 아메리카나의 종말
2차대전이후에 대영제국이 몰락하면서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질서가 등장했다. 그것이 팍스 아메리카나이다.
팍스 아메리카나의 절정은 1990년의 걸프전부터 오바마정권까지로 보는것이 옳은 시각 일 것 같다. 레이건-부시-클린턴-오바마를 거치며 미국의 권위와 국제파워는 역사상 최대 절정을 보여주었다. 1991년도에 걸프전을 현지에서 직관했었는데, 미국의 엄청난 국력을 느끼게 되었던 흔치 않은 경험이었다.
그래서 미국의 국력은 소비에트가 해체되고 오바마 정권까지가 미국의 절정이라고 생각한다. 사실상 미국의 몰락은 2008년 금융위기때부터 이미 시작되었는데, 그때 미국이 몰락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인류가 느끼지 못했을 뿐이다. 트럼프 2기 정권에 들어와서 미국의 몰락은 급속도로 가시화 되었고, 이제 미국이 세계질서를 주도하는 패권국가로 유지될 거라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래서 문제는 지금이다.
큰형님이 노쇠해지면, 그 밑의 부하들은 서열 정리를 다시 하게 되듯이, 패권국 미국이 무너지면 세계질서는 새로운 패권국가가 탄생할 때 까지 혼란스러울 수 밖에 없다.
동아시아 질서의 재편과 새로운 선택
캄보디아 사태는 동아시아 국제 질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 지역의 많은 국가는 미중 경쟁 구도 속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자국민 보호라는 국가의 가장 기본적인 책무조차 위협받는 현실은 이들에게 새로운 선택을 강요할 수 있다.
기존의 미국 중심 질서가 이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한다면, 일부 국가는 자국민 보호와 경제적 이익을 위해 범죄 조직의 배후로 지목되는 중국에 더욱 의존하게 될 수도 있다. 이는 중국이 주장하는 ‘새로운 형태의 국제 관계’가 역내에 침투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한다. 반대로, 이번 사태를 계기로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인권과 법치라는 가치를 중심으로 강력한 공동 대응에 나선다면, 이는 기존 동맹의 결속을 다지고 역내에서 미국의 리더십을 재확인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결국, 캄보디아의 비명은 우리에게 묻고 있다. 우리는 과연 안전한 길 위에서 살아갈 자격이 있는가? 인류가 수천 년에 걸쳐 쌓아 올린 ‘이동의 자유’와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가치를 지켜낼 의지와 능력이 있는가? 이 질문에 어떻게 답하느냐에 따라 동아시아, 나아가 세계의 미래가 결정될 것이다. 길의 무게는 이토록 무겁고, 그 길을 지키는 것은 여전히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숙제로 남아있다.
이제 인류는 여행이 어려워지는 시기로 진입하고 있는 것 같다.
북미, 유럽도 점점 여행하기 어려워지고 있고, 서부 아프리카와 사하라 주변국가는 이미 위험지역이어서 혼자 여행하기는 안전하지 않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에 동유럽도 전운이 짙어지는 것 같다. 이제 덩달아 동남아시아도 위험해지는 추세다.
미국의 패권이 약화되는 지금, 한국 정부가 현명하게 대처한다면 세계질서를 주도하는 국가로의 위상을 만들 수도 있을것이다.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지 두고 볼 일이다.
이번 캄보디아 사태는 아직도 007 제임스본드가 필요함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
2021년에 ‘007 노타임 투다이’에서 제임스본드가 장렬하게 전사하지 않았더라면, 캄보디아 사태 같은 비극이 일어날 수 있었겠는가? 캄보디아 범죄의 뿌리라고 하는 프린스그룹은 21세기의 스펙터다. 캄보디아 범죄는 2021-2022년경에 본격적으로 심해졌다고 하지 않던가.
나는 제임스본드가 다시 돌아오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