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면의 기원을 찾아서

- 중국집 울면은 어디서 왔을까?

by 한병철 Mikhail Khan

울면을 찾아서


중국집에서 짜장과 짬뽕을 놓고 고민하는 것은 한국사람들 공통 인 것 같다. 그래서 짬짜면이라는 희대의 발명도 등장하였다. 그런데 막상 짬짜면을 주문하고 나면, 만족도가 떨어지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짜장을 먹으면서 짬뽕을 떠올려야, 얻지 못했던 만족에 대한 기대가 증가하면서 맛이 더 좋아진다고나 할까. 이미 충족된 욕망은 그 어떤 만족도 주지 못하기 마련이다. 짬짜면이 딱 그렇다.


짜장과 짬뽕을 놓고 고민하다가 때때로 우리는 울면을 주문하는 경우가 있다. 짜장, 짬뽕, 볶음밥에 질릴 때 즈음에 울면은 신선하고 훌륭한 대안이 된다. 그래서 중국집 점심식사에서 4대 천왕이라면, 짜장, 짬뽕, 볶음밥, 울면이겠다.

2025-12-15 19;58;49.PNG 짬짜면


울면은 왜 울면이라고 이름 붙었을까? 울면은 언제부터 나타난 면요리 일까? 짜장과 짬뽕의 기원에 대해서는 그동안 여러 가지 설 들이 등장했고, 관련 컬럼도 적지 않게 볼 수 있었지만, 울면에 대해서 말하는 글은 일찌기 본 적이 없다.

오늘은 수십년간 쌓아온 중국 내공을 총동원하여, 울면의 기원과 변천을 알아보려고 한다.


2025-12-15 19;55;56.PNG 한국 중화요리집의 울면


울면의 어원

울면의 이름은 중국 요리인 ‘원루몐(溫滷麵, wēnlŭmiàn)’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원루몐(溫滷麵)은 한자로는 '따뜻할 온(溫)', '소금물/장아찌 루(滷)', '국수 면(麵)'자를 쓴다. 이를 직역하면 '따뜻하면서 조금 짠 면발'혹은 '따뜻한 국수'정도의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어문 전문가들은 이 중국어 발음 '원루몐'이 한국에 들어와 '울면'으로 변화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원루(wēnlŭ)'의 발음이 자음동화와 단모음화 현상 등을 거쳐 '울'에 가까운 발음으로 바뀌었을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원루' → '울루' → '울'로 변화하였는데, 'wēn' 발음이 한국어의 'ㅜ' 모음으로 변용되어 '울'처럼 들리게 된 것이다.


중국어 원루몐溫滷麵(wēnlŭmiàn)이 한국 중화요리로 정착하며 울면으로 변화한 과정은 주로 음운 변화와 표준화과정을 통해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변화는 중국어 발음이 한국어 화자들에게 익숙한 소리로 자연스럽게 변용되는 과정에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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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산동지방에서 들어와 인천에 정착한 한국의 화교들은 지독하게 알아듣기 어려운 방언을 사용하였다. 중국에서도 산동방언은 난해하기로 이름이 높은데, 한국에 온 화교들은 그중에서도 래주(莱州) 사람이 대다수 였으며, 이곳 방언이 꽤 심했다. 산동 화교들의 방언에 의해 심하게 왜곡되어 정착된 발음이 ‘울면’ 인 것이다.


참고로, 울면은 한국식 중화요리의 하나로, 전분을 넣어 걸쭉하게 만든 맑은 국물에 해산물과 채소를 넣은 것이 특징이다. 중국 본토에는 '울면'이라는 이름의 음식이 그대로 존재하지는 않으며, 한국의 울면은 중국의 '원루몐'에서 기원하여 한국에서 정착된 형태로 알려져 있다.


루(滷)는 무엇인가?

‘원루몐(溫滷麵, wēnlŭmiàn)’에서 이 요리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단어는 ‘루(로/滷)’이다. 즉 울면은 ‘로면(滷麵)’인 것이며, 전분 등을 넣어 걸쭉하게 만든 국물에 말아먹는 국수요리를 뜻한다.

‘滷(로)’의 한자에는 소금밭, 개펄, 등등의 의미가 있고, 중식요리에서는 주로 소스를 의미하는 용어로 사용되며, 걸쭉하고 짭짤한 소스를 가리킨다.


· 루(滷)의 기본

루는 중국의 조리법으로, 식재료를 간장 기반의 향신료 국물에 조리하거나 숙성시켜 맛을 내는 방법이다. 한국의 장조림과 개념이 유사하다.


· 기본 재료와 방법

소스 베이스는 간장(노두유/생두유)이며, 소주/미림, 설탕이 핵심이다. 향신료는 팔각, 월계수 잎, 계피, 산초 등을 주머니(루백)에 넣어 사용하며, 마늘, 생강, 파는 기본이다.

조리법은 간단하다. 모든 재료를 끓여 소스를 만들며, 계란, 두부, 돼지고기, 소고기 등 재료를 데친 후 소스에 넣어 약한 불로 조린다. 조리 후 소스에 담가 숙성시켜 깊은 맛을 내는 것이다.


· 지역별 주요 차이


차오저우식 : 광동 동부 조주요리에서는 맑은 갈색, 향신료 사용이 절제되며, 오리, 두부 등등을 사용한다.


훙루(홍루) : 북부/중부식 루 이다. 진한 갈색, 간장과 향신료가 풍부한 것이 특징이며, 소고기, 내장 요리에도 사용한다.

LorMee.jpg 북경식 홍루


바이루(백루) : 광동식에서는 간장 대신 소금을 사용하여 맑은 소스가 특징이다. 닭고기 조리에 특화되어 있다. 광동식 바이루 스타일은 청말 민국초기 즈음에 일본 나가사키에서 짬뽕으로 진화하였다.


사천식 : 산초와 고추기름으로 맵고 얼얼한 맛이 특징이며, 고기가 많이 들어간다. 색은 주로 붉은색이다.

루 소스가 걸쭉해지는 주된 이유는 전분이 아닌 다음과 같은 자연적 요인 때문이다.

고기, 뼈, 가죽에 풍부한 콜라겐이 장시간 조리되며 젤라틴으로 분해되어 걸쭉함을 생성한다.

요리중에 들어가는 설탕, 맥아당 등이 끓으며 수분이 증발하고 농축되고, 향신료와 야채에서 나온 성분이 소스에 녹아 들어가면서 걸쭉해진다.


사천 卤肉面.jpg 사천식 로면


의도적으로 젤라틴이 많은 부위(돼지족, 닭발)를 사용하여 오래 조리하게 되면, 더욱 걸쭉해 진다.

최근에 일부 현대 요리에서는 전분이나 밀가루를 풀어 넣어서 빠르게 만드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루(滷)’를 가지고 만든 면요리가 한국의 울면이다.


‘루(滷)’의 변주


‘루(滷)’가 변화하여 나온 변형 음식은 다양하다.

‘루(滷)’를 면에 부으면 ‘루면(滷麵)’이 되고, 밥위에 부으면 ‘루육반(루러우판滷肉飯)’이 된다. 대만 여행에서 꼭 먹고 와야 한다고 알려진 ‘루러우판’이 바로 이 ‘로육반(滷肉飯)’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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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滷肉飯 2.png 대만식 루러우판(滷肉飯)


‘루(滷)’를 순두부에 부으면, 중국인들이 아침식사로 즐겨먹는 ‘두부뇌(豆腐脑)’가 되고, 내장 볶은것에 부으면 ‘차오간(炒肝)’이 된다.

IMG_9415.JPG 두부뇌(더우푸너/豆腐脑)


중국 북경 요리에서 돼지 내장에 루를 부어서 먹는 내장탕이 '차오간(炒肝)'인데, 이는 북경의 전통적인 아침 식사(早点) 중 하나이다.


차오간의 역사는 청나라 말기(1862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북경 첸먼(前门)앞에 있던 ‘회선관(会仙居)’이라는 식당에서 처음 만들어졌다고 한다. 처음에는 돼지의 간, 폐, 심장 등을 함께 볶아 ‘회선관 쌀죽(会仙居白水杂碎)’이라고 불렸으나, 점차 간과 작은창자만 사용하는 방식으로 변했다. 조리법이 정교해지고, 국물에 녹말을 넣어 걸쭉하게 만든 것이 현재의 형태로 자리 잡았다. 북경 사람들 사이에서는 ‘향기로운 묵직함은 기피할 수 없고, 국물은 걸쭉하며 간은 부드럽고 창자는 쫄깃하다(味浓不腻,汁厚肝嫩,肠韧爽口)’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현재 차오간 식당은 북경에서는 고루 옆에 있는 '야오지 차오간(姚记炒肝)'이 대표 주자인데, 한국인들의 입맛에도 잘 맞으며, 술 마신뒤에 해장음식으로는 단연 최고이다. 야오지 차오간의 사장은 북경시내에서도 맛있는 차오간이 보이지 않아서 직접 식당을 차렸다는 전설의 사나이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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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8697.JPG 베이징 야오지 차오간(姚记炒肝)


이렇듯 ‘루(滷)’는 오랜 변용과정을 거쳐서 다양한 요리로 발전하였으며, 한반도에 들어와서는 울면이 되었다.

앞의 글, ‘짜장면’에서도 말하였듯이 한국의 짜장면은 점점 퇴보의 길을 걷고 있다. 원가절감을 위해 짜장면을 만드는 식재료가 맛이 없어지고 있는 것이 주요 원인이며, 제대로 훈련받지 못한 사람들이 알바 수준의 요리를 하면서 더욱 망가졌다.


짜장면과 마찬가지로, 한국의 울면도 예전의 맛이 아니다. 제대로 ‘루(滷)’를 만들어 면에 부어야 하는데, 아무 생각없이 녹말을 끓이고 소금과 계란을 풀어 손쉽게 빨리 만들기 때문에, 제맛이 나지 않는다.


‘루(滷)’를 만들어 제대로 만든 울면을 원두커피에 비유한다면, 현재 한국의 울면들은 커피가루를 끓는물에 탄 인스턴트 커피에 불과하다. 다시다와 설탕 식초를 부어 만든 냉면육수와 하룻밤동안 수십가지 재료를 고아만든 우래옥의 냉면육수가 같을 리 없듯이, 과거의 원조 울면과 현재의 울면은 다르다.


3-14.jpg 베이징 루면(滷麵)


우리의 후손들은 정상적으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살 수 있을까? 제 맛을 아는 사람이 점점 줄어든다는 것은, 한민족 음식의 풀(POOL)이 작아지는 것을 의미한다.


이 글을 쓰는 목적도 여기에 있다. 원래 원조가 무엇이었는가를 밝혀서 아카이빙을 해 두기 위함이다. 그리고 우선 나부터 제맛이 나는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다. 우리 후손이 뭘 먹고 살던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겠는가. 내일은 태양이 안 뜰지도 모르고, 낼모레 난카이 대지진이 나서 동아시아가 물속에 들어갈 수도 있는데 말이다.


그저 오늘 하루, 즐겁고 행복하게 살면 그 뿐이다. 어제는 지나갔고, 내일은 오지 않았다. 나에게 있는 것은 오늘 뿐 인데, 그래서 오늘 현재를 선물(present)이라고 한다. 현재(present)는 선물(present)이다.


정말 맛있는 한그릇의 음식을 먹을 때, 그 순간 나는 ‘실존’과 ‘선물(present)’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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