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끝나지 않는 서부극의 신화
제임스 카메론의 <아바타> 사가(saga)는 단순한 SF 블록버스터가 아니다. 그것은 우주라는 캔버스 위에 다시 그려진 미국 서부 개척사(Western)이자, 미국 현대사의 트라우마와 이념을 투영하는 거대한 역사적 알레고리(Allegory)다.
2009년 제임스 카메론이 내놓은 <아바타>는 영화 기술의 특이점이었다. 혁신적인 3D 기술과 이모션 캡처는 관객들에게 전례 없는 시각적 체험을 선사했고, 판도라 행성은 실재하는 세계처럼 다가왔다. 그러나 기술적 경이로움이라는 화려한 외피를 한 꺼풀 벗겨내면, 그 안에는 가장 오래되고 익숙한 서사의 골격이 드러난다. 그것은 바로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미국 문화를 지배했던 ‘서부극(Western)’의 원형이다.
더 나아가 13년 만에 귀환했던 <아바타: 물의 길>과 오늘 개봉한 <아바타: 불과 재>는 이 서부극의 문법을 시대적 흐름에 맞춰 변주하며, 단순한 개척 서사를 넘어 전쟁과 가족, 그리고 내전(Civil War)의 양상으로 확장해 나간다. 본고에서는 <아바타> 시리즈가 어떻게 미국 건국 신화인 ‘프런티어(Frontier)’ 정신을 계승하고 변형시키는지, 그리고 그 속에 숨겨진 미국적 이데올로기의 심층을 3부작의 흐름에 따라 살펴보고자 한다.
영화의 시작점인 1편은 서부극의 가장 고전적인 설정을 우주적 스케일로 치환한 결과물이다. 22세기의 판도라 행성은 완벽한 19세기 서부의 ‘프런티어’다.
① 골드러시와 명백한 운명
지구인들이 결성한 RDA(자원개발청)가 판도라에 진출한 목적은 명확하다. ‘언옵테늄(Unobtainium)’이라는 희귀 광물을 채굴하기 위함이다. 이는 1848년 캘리포니아에서 시작된 ‘골드러시(Gold Rush)’를 그대로 SF적으로 번안한 설정이다. 황금을 좇아 서부로 몰려들었던 백인들과 마찬가지로, RDA는 자본의 논리에 따라 우주를 건넜다. 아바타2에서는 '암리타'까지 등장한다.
이 과정에서 작동하는 지배 논리는 19세기 미국의 팽창주의를 정당화했던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과 소름 끼치도록 닮아 있다. 문명화된 백인이 미개한 땅을 개척하고 자원을 활용하는 것이 신이 부여한 권리이자 의무라는 이 위험한 사상은, 영화 속 파커 셀프리지나 쿼리치 대령의 태도를 통해 재현된다. 그들에게 판도라의 숲은 공존의 대상이 아니라, 불도저로 밀어버리고 자원을 캐내야 할 장애물에 불과하다. 이는 철도 부설을 위해 인디언의 거주지를 파괴하고 들소를 학살했던 서부 개척사의 폭력성을 시각화한 것이다.
② 경계인으로서의 영웅과 ‘늑대와 춤을’
주인공 제이크 설리는 서부극의 전형적인 영웅상인 ‘상처 입은 참전 용사’다. 하반신 마비라는 신체적 결함과 전쟁의 트라우마를 안고 있는 그는 문명 세계에 환멸을 느낀 채 야생의 세계로 들어간다. 이 설정은 케빈 코스트너의 <늑대와 춤을>과 정확히 겹친다.
그는 처음에는 정복자의 첩자로 잠입하지만, 원주민 나비족(Na'vi)의 영적인 문화와 자연과의 교감에 매료되어 그들의 편으로 전향한다. 족장의 딸 네이티리와의 로맨스는 ‘포카혼타스’ 이야기의 변주이며, 그가 이크란을 길들이고 ‘토루크 막토’가 되어 부족을 이끄는 과정은 서부극에서 백인이 원주민 사회에 동화되어 그들보다 더 뛰어난 전사가 된다는 ‘백인 구세주(White Savior)’ 서사의 문법을 따른다.
③ 기병대 대 인디언 : 시각적 도상학의 차용
1편의 클라이맥스 전투는 서부극의 시각적 도상학(Iconography)을 노골적으로 차용한다. 나비족은 말을 닮은 ‘다이어호스’를 타거나 익룡을 닮은 ‘이크란’을 타고 활을 쏜다. 반면 RDA 용병들은 거대 로봇과 미사일, 기관총으로 무장하고 있다. 이 비대칭 전력의 충돌은 서부 영화 속 ‘미 기병대 vs 인디언’ 전투의 재현이다. 쿼리치 대령의 부대는 인디언 마을을 습격하는 기병대이며, 홈트리(Home tree)가 무너지는 장면은 인디언들의 삶의 터전이 불타는 역사의 비극적 시각화다. 제임스 카메론은 역사적 패배자였던 인디언(나비족)에게 영화적 승리를 안겨줌으로써, 서부극의 쾌감을 유지하면서도 제국주의를 비판하는 수정주의적 태도를 취한다.
13년의 시차를 두고 개봉한 2편 <아바타: 물의 길>에서 제임스 카메론은 장르의 문법을 미묘하게 비틀고 확장한다. 1편이 ‘개척과 침략’의 서사였다면, 2편은 ‘수호와 생존’의 서사로 이동하며 미국의 또 다른 역사적 기억을 소환한다.
① 프런티어의 종말과 베트남전의 악몽
2편에서 RDA의 침공은 더 이상 단순한 자원 채굴을 넘어선다. 그들은 지구의 환경 오염을 피해 인류가 이주할 새로운 터전을 마련하고자 판도라를 ‘테라포밍’하려 한다. 이 과정에서 묘사되는 전쟁의 양상은 고전 서부극보다는 ‘베트남 전쟁’ 영화의 이미지에 가깝다.
우주선이 착륙하며 거대한 화염으로 숲을 태워버리는 오프닝 시퀀스는 미군의 고엽제 살포나 네이팜탄 폭격을 연상시킨다. 또한 최첨단 무기로 무장한 헬기(건쉽)들이 원주민 마을을 습격하고 불태우는 장면은 <지옥의 묵시록>이나 <플래툰> 같은 전쟁 영화의 비극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제 판도라는 낭만적인 모험의 대상인 ‘와일드 웨스트’가 아니라, 압도적인 화력 앞에서도 끊임없이 게릴라전을 펼치는 정글(혹은 바다)이라는 처절한 전장으로 변모한다.
② 총잡이에서 아버지로 : ‘가족 서부극’의 도래
서사의 중심축 또한 변화했다. 제이크 설리는 이제 고독한 영웅이 아니라 다섯 아이를 둔 가장(家長)이다. “아버지는 지키는 존재다”라는 그의 독백은 영화의 테마가 ‘모험’에서 ‘가족의 보전’으로 이동했음을 선언한다.
이는 서부극의 역사에서 1950~60년대에 유행했던 ‘가족 서부극(Family Western)’의 흐름과 궤를 같이한다. 총잡이가 총을 내려놓고 정착하여 목장을 일구지만, 과거의 적들이 찾아오면서 다시 무기를 들 수밖에 없는 <셰인>이나 <용서받지 못한 자>의 클리셰가 적용된 것이다. 제이크 설리 가족이 숲을 떠나 바다의 부족에게 의탁하는 과정은 전란을 피해 떠나는 난민의 서사이자, 정착지를 찾아 헤매는 개척민 가족의 고난을 은유한다. 영웅은 이제 혼자가 아니기에 더 강력해졌지만, 동시에 잃을 것이 생겼기에 더욱 보수적이고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게 된다.
아바타 3편 ‘재의 부족(Ash People)’의 등장은 <아바타> 시리즈가 그리고 있는 미국적 알레고리의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중요한 전환점이다.
① ‘고귀한 야만’의 해체와 복합적 갈등
지금까지 <아바타>는 ‘선량하고 자연 친화적인 나비족’ 대 ‘탐욕스럽고 파괴적인 인간’이라는 선명한 선악 이분법 위에서 작동했다. 이는 서부극의 ‘고귀한 야만(Noble Savage)’ 신화를 충실히 따른 것이다. 그러나 제임스 카메론은 3편에서 공격적이고 호전적인 ‘불의 나비족’을 등장시킴으로써 이 도식을 스스로 파괴하였다.
나비족 내부에도 악(惡)이나 탐욕이 존재할 수 있다는 설정은 서부 개척사에서 백인과 결탁하거나 다른 부족을 약탈했던 인디언 부족 간의 갈등을 상기시킨다. 이는 영화가 단순한 환경 우화를 넘어, 현실 정치의 복잡성을 반영하는 단계로 진입함을 의미한다.
② 내전(Civil War)과 정치 드라마로의 확장
제이크 설리는 이제 외부의 적(지구인)뿐만 아니라, 나비족 내부의 적대 세력과도 마주해야 한다. 이는 미국 역사의 가장 큰 비극인 ‘남북 전쟁(Civil War)’의 은유로 확장될 가능성을 내포한다. 같은 종족끼리의 이념과 생존 방식을 둔 투쟁은 1편의 단순한 침략 전쟁보다 훨씬 복잡한 도덕적 딜레마를 영웅에게 부과했다.
‘나쁜 인간’과 ‘좋은 나비족’의 경계가 흐려지자, 인간 출신의 나비족 지도자인 제이크 설리의 정통성은 시험대에 오르게 되었다. 그는 숲의 부족과 바다의 부족, 그리고 적대적인 불의 부족 사이에서 정치적 중재자이자 군사적 리더로서의 역량을 증명해야만 했다. 이는 서부극이 후기에 이르러 단순한 권선징악을 넘어 법과 질서, 정치적 타협을 다루는 복합 장르로 진화했던 과정과 유사하다.
영화 <아바타> 시리즈의 마일즈 쿼리치 대령(스티븐 랭 분)은 단순히 '악당'이라기보다는, 할리우드 영화사가 오랫동안 축적해 온 '전쟁광(War Monger)', '제국주의적 군인', '집착하는 추격자'의 이미지를 집대성한 캐릭터이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자신의 과거 작품인 터미네이터 뿐 아니라 고전 영화들의 상징적인 캐릭터들을 쿼리치에게 투영했다.
① 베트남전의 광기 : 빌 킬고어 중령 (<지옥의 묵시록>)
쿼리치 대령의 직접적인 조상이라고 할 수 있는 캐릭터이다. 영화 지옥의 묵시록에서 빌 킬고어 중령으로 나온 로버트 듀발은 그 유명한 명대사를 남긴다.
"나는 아침에 맡는 네이팜 냄새가 좋아(I love the smell of napalm in the morning)"는 쿼리치 대령이 모닝커피를 마시며 판도라의 폭격을 느긋하게 지켜보는 장면에서 그대로 오마주 된다.
그리고 바그너의 '발퀴레의 기행'을 틀어놓고 헬기 부대로 베트콩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킬고어의 모습은, 건쉽을 타고 홈트리(Home Tree)를 무너뜨리는 쿼리치의 모습과 판박이다.
②집착과 복수의 화신 : 에이허브 선장 (<모비 딕>)
특히 <아바타: 물의 길>(2편)에 이르러 쿼리치는 단순한 군인을 넘어 개인적인 복수에 미친 존재로 변모한다.
에이허브가 모비딕에게 다리를 잃고 복수에 미쳐 배를 파멸로 몰고 가듯, 쿼리치 역시 제이크 설리에게 한 번 죽임을 당한 후 부활하여(Recombinant), 임무보다 '설리 사냥' 자체에 집착한다.
2편에서 쿼리치가 툴쿤(아바타의 고래)을 사냥하는 작전선에 탑승한 것은 그가 우주의 에이허브 선장임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메타포였다.
③ 무자비한 하트만 상사 (<풀 메탈 자켓>)
쿼리치의 외형과 말투, 병사들을 다루는 방식에서 가장 먼저 연상되는 캐릭터이다.
하트만 상사는 마초적 카리스마를 가지고 신병들을 거칠게 몰아붙이며 모욕과 훈육을 동시에 하는 전형적인 '해병대 교관(Drill Instructor)'의 이미지이다. 쿼리치가 1편 초반 브리핑 룸에서 "너희는 더 이상 캔자스에 있지 않다"며 위압감을 주는 장면은 하트만 상사의 연장선에 있었다.
실제로 스티븐 랭(쿼리치 역)은 이 배역을 위해 해병대 장교의 태도를 깊이 연구했다고 한다.
④ 서부극의 인디언 사냥꾼, 이선 에드워즈 (<수색자>)
앞서 논의한 서부극 맥락에서 보자면, 쿼리치는 존 웨인이 연기한 서부극 영웅의 뒤틀린 거울이다.
영화 <수색자 (The Searchers, 1956)>에서, 이선 에드워즈(존웨인)는 인디언(코만치족)에게 가족을 잃고 그들을 극도로 증오하며 추격하는 인물이다. 존 웨인은 주인공이었지만, 그의 내면에는 쿼리치와 같은 지독한 인종차별과 폭력성이 내재해 있었다. 쿼리치는 존 웨인이 가졌던 '개척자로서의 당당함'과 '원주민에 대한 멸시'를 그대로 이어받되, 관객이 그를 악역으로 인지하도록 설계된 캐릭터이다.
마일즈 쿼리치 대령은 "서부극의 인디언 사냥꾼이 베트남전의 화력을 갖추고, 터미네이터의 끈질김으로 무장하여, 에이허브 선장의 광기를 뿜어내는 캐릭터"라고 정의할 수 있다.
결국 <아바타> 시리즈를 관통하는 핵심은 ‘미국적인, 너무나 미국적인’ 역사의 재현이다. 제임스 카메론은 광활한 우주라는 캔버스 위에, 미국인들의 집단 무의식 속에 가장 깊이 박혀 있는 프런티어 신화를 끊임없이 다시 쓰고 있다.
1편이 서부 개척 시대의 팽창주의와 자원 수탈을 반성적으로 재현했다면, 2편은 베트남전의 상처와 가족주의로의 회귀를 그렸고, 3편은 내부 분열과 도덕적 모호성이라는 현대적 딜레마를 다루었다. 카우보이는 이크란을 타고, 기병대는 엑소슈트를 입었을 뿐, 본질은 낯선 땅에 도착한 이방인이 겪는 갈등과 동화, 그리고 전쟁이라는 서부극의 문법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역설적인 것은, 제국주의와 환경 파괴를 비판하는 이 영화조차 문제 해결의 열쇠를 ‘깨어있는 백인 남성(혹은 지구인 출신)’에게 쥐어준다는 점이다. 나비족은 신비롭고 영적이지만 스스로를 구원하기엔 역부족인 존재로 그려지며, 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닌 제이크 설리의 지휘 아래에서만 승리할 수 있다. 이는 할리우드 영화가 오랫동안 답습해온 ‘백인 구세주’ 이데올로기의 한계이자, 미국이 스스로를 ‘세계의 경찰’이자 ‘수호자’로 인식하는 자기중심적 세계관의 반영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바타>는 매혹적이다. 인류는 더 이상 지구상에 물리적인 서부를 남겨두지 않았지만, 영화는 스크린 위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프런티어를 찾아내고 그곳에서 또다시 역사를 시뮬레이션한다. 우리가 판도라를 보며 느끼는 압도적인 몰입감과 기시감의 정체는 바로 그곳, 황야의 서부에서부터 이어져 온 미국의 오래된 유령에 있다. 이 거대한 우주 서부극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미국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 될 것이다.
Additionally :
재의 부족의 추장인 '바랑(Varang)'은 우나채플린(Oona Castilla Chaplin)이 연기했는데, 찰리 채플린의 손녀라고 한다. 아바타3에서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였다. 빌런도 매력적 일 수 있으니까. 영화 엑스멘에서 미스틱(Mystique)에 비교할 만 했다.
One more thing :
나는 개봉날 첫시간에 4DX로 보고 올 정도로 아바타에 진심이다. 아바타1도 극장에서 3번 보았듯이, 아바타3도 2D로 또 한번 보게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