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짝사랑의 추억
나에게도 지독한 짝사랑의 추억이 있다.
사랑의 감정은 번개처럼 찾아왔다. 번개를 맞은 순간부터 나는 그 아이에 대한 호기심과 열망의 감정에 감전되고 말았다.
그 아이와 나는 학과 소모임 동기였다. 그 아이는 입학 초부터 08학번 미남 대열에 이름을 올렸지만 그때는 큰 관심이 없었다.
번개를 맞은 건 그 아이와 내가 댄스 파트너가 된 순간부터다. 가까이서 본 그 아이는 생각보다 훨씬 미남이었고, 사람의 마음을 당길 줄 아는 매력이 있었다. 우리는 차츰 친해졌고 싸이월드 일촌이 됐다. 그 아이가 내게 설정한 일촌명은 '꽃사슴'이었다. 그 순간 나는 교과서와 수능 문제집에서 숱하게 접했던 김춘수의 시 꽃을 떠올렸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이 시를 구닥다리 사랑 노래로 치부했던 20살의 나는, 그 아이와 나의 접점이 커지는 순간 이 시가 함유한 사랑의 본질을 새삼 깨달았다. 구질구질한 사랑 따윈 하지 않을거라 선언했던 쿨병걸린 스무살 꽃사슴은 그 순간부터 구질구질한 짝사랑의 덫에 빠지고 말았다.
그 아이와 나의 첫 데이트는 대학로에서 이뤄졌다. 대학 입학 후 처음으로 데이트다운 데이트를 한 날이기도 하다.
일주일전부터 코디에 신경을 곤두세웠던 나는 신상 원피스에 반짝이 스타킹을 매치했다. (지금은 촌스러울지 몰라도 그 당시 반짝이 스타킹은 핫템이었다.)
우리는 마로니에 공원 근처의 양식당에서 파스타를 먹고, 영화를 봤다. 우리가 고른 영화는 하필 암울하기 짝이 없는 눈먼 자들의 도시였다. 시종일관 음울하고 희망이라곤 없는 영화였지만 내 가슴은 서사와 무관하게 벌렁벌렁 뛰었다.
영화가 끝난 후부터 걱정이 시작됐다. 일찍 헤어지자고 하면 어쩌지.
걱정이 무색하게 영화가 끝난 후에 카페에서 차를 마셨다. 그 시간이 영원이 멈추지 않길 바랐다. 카페 문을 나선 순간부터 걱정이 또 솟구쳤다. 함께 있고 싶은데, 이제 집에 가자고 하겠지. 그때의 나는 좋아하는 마음을 숨길줄 모르면서도, 내 욕구를 직관적으로 표현할 줄 모르는 바보였다. 그 아이의 판단에 운명을 맡겨버리는 햄릿이자 주어진 상황에 나를 내놓아버린 오필리아였다.
혜화역이 눈에 들어온 순간 나의 불안은 극에 달했다. 첫 데이트가 마지막 데이트가 될까봐 조마조마했다. 그때 그 아이는 내게 걷자고 권했다.
우리는 혜화역을 등지고 마로니에 공원을 지나 이화 사거리로 향했다. 그리고 종로 5가역이 나올때까지 무작정 걸었다. 그 30분 남짓한 시간이 영원처럼 느껴졌다.
종로5가에 도달하고 우리는 작별 인사를 했다. 아쉬웠지만 내 예상보다는 오래 함께해서 안도했다. 273번 버스에 몸을 맡기고 집에 돌아가는 그 시간 내내 그날의 순간을 하나하나 곱씹었다.
그 아이와 나는 결론적으로 잘 되지 못했다. 사이가 어그러지고 나는 꽤나 오래 가슴 앓이를 했다. 그 충격으로 나를 좋아하는 사람만 선택하는 연애 습관도 생겼다. 다행스럽게도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할 이를 만나 결혼까지 했지만 그 이전까지의 나의 연애사는 시종일관 수동적이었다.
그 아이와 나는 첫 데이트 이후로도 여러번 만남을 가졌다. 하지만 그 이후의 만남에 대한 기억은 희미하다. 유일하게 선명한 기억은 혜화역에서 종로5가까지 걸었던 그 순간이다.
남편에게도 그런 아픈 사랑이 있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듣지 못했지만, 아마 그에게도 혜화역에서 종로5가까지 걸었던 그런 순간의 추억이 있을 것이다. 너무 소중해서 놓치지 싶지 않은 그런 마음을 가져봤기에 지금의 우리의 유대감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나는 결과를 따지는 냉혈인간이 되었지만, 나의 첫 짝사랑에서 만큼은 과정에 의미를 둔다. 누군가를 열렬히 갈망하고, 함께한 모든 순간을 나의 보석함에 묻어두는 그 마음. 그 관계가 끝난 후 상심이 컸지만 상심은 강한 욕구를 전제하기에 나는 지금 가진 것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사람이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