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의 이재용에겐 이런 거 안 묻지 않나요?

가장 황당했던 되물음

by 작은손

종종 겸손이 꼭 필요한 미덕일까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실력자가 말대신 실전으로 내공을 보여줄 때 카타르시스 같은 걸 느끼긴 하다만 모든 실력자가 그런 의례를 치르고 존경을 살 필요는 없다고 본다. 하지만 사람간의 예의, 특히 다른 업을 존중하는 태도는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현 직장에서 인터뷰로 대면한 사람의 수가 어느덧 330명을 돌파했다. 취재 현장에서 직간접적으로 만난 이들까지 포함하면 일을 통해 스치기라도 한 인연이 600명은 족히 될 것 같다. 대부분 따뜻한 응원을 보내고 싶을 정도로 일에 진심이었고, 일부는 사적으로 친분을 맺고 싶을 정도로 사랑스러운 인격을 지녔었다. 대부분이 훌륭한 사람이라 일을 통해 이런 이들을 만날 수 있음에 감사했다.


하지만 1년에 한 번 꼴로 두번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부류를 만난다. 어쩔 수 없다. 이건 통계다. 상종하고 싶지 않은 이유는 제각각이지만, 유난히 기억에 남는 이가 하나 있다. 기본적인 이력을 묻는 질문에 “대학생 창업가에게나 물을 말”이라며 ”삼성전자의 이재용에겐 이런 거 안 묻지 않냐“ 되묻던 사람. 성명 뒤 괄호를 채우기 위해 나이를 물었는데, 끝끝내 함구. (검색하면 쉽게 나오는 정보였지만, 인터뷰이의 입으로 직접 듣는게 맞다고 생각해 물었는데...) 인터뷰 내내 이런 식이었다.


화룡점정은 사진 촬영 시간이었다. 이미 미운 오리였지만 백조처럼 담아주려, 더운 여름 땀을 뻘뻘 흘리며 셔터를 누르는데 그가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냐고. 대체 얼마나 해야하냐고. 결국 나도 폭발했다. 내가 당신을 망가뜨리려 이렇게 땀 흘리며 서있는 줄 아냐. 독자들에게 새로운 걸 알리는게 내 일이고 당신은 이 기회를 통해 기술과 비즈니스를 홍보할 수 있다. 잘 이용하면 서로에게 이득일 이 시간을 왜 고통과 짜증으로 채우냐. 그리고 왜 내 시간은 귀하게 여기지 않냐. 조곤조곤 말했다만 꽤 많이 정색했더니 그가 비로소 사과의 말을 전했다.


나는 일단 일을 마무리하고 회사에 상황을 공유했다. 기사를 쓰지 말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녹록지 않은 시간에 쏟은 내 에너지가 아까워 기사는 쓰겠다고 주장할까 잠깐 고민했지만 절실한 이에게 더 많은 에너지를 쏟기로 마음 먹었다.


최근 CES 관련 뉴스를 보다가 그 기업의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검색해보니 순항 중인 듯하다. 솔직히 세상에 필요한 좋은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 기자와 인터뷰이로서의 인연은 별로였지만 그들의 기술이 산업 현장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기여했으면 하는 마음은 진심이다. 다만 그때 왜 인터뷰를 하고도 기사가 안 나갔는지 이유를 한번은 생각했으면 한다. 또한, 이재용에겐 이런 거 안 묻지 않냐 되묻기 전에 층위에 맞춰서 비유하는 법도 훈련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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